나의 이야기 448

한국 시리즈

1982년프로 야구단이 생겼을 때의 기쁨이어제 같은데 벌써 28주년이 되었다.고교 야구의 인기 자리를 정말 빼앗아 버렸다.지금은 지역색이 엷어졌지만 초창기에는 대단했다.아무리 잉꼬부부라도 출생 지역이 다르면 야구 응원 때 만은 완전 적이던 시절이다. 승패에 따라 저녁 반찬이 차이가 났을 정도니얼마나 살벌했는지 모른다. 아이들이 어리던 시절삼성 야구단 옷을 입고 야구장을 다녔는데이제 결혼을 하였으니 나만 나이를 먹은 게 아니구나. 명문 야구단이란 호칭을 받으며 출발한 삼성 야구단단연 재계 최고의 삼성이 후원을 하니화려한 연봉의 선수들을 보유할 수밖에 없었다.거기에 대구가 고교 야구의 명문들의 연고지이기도 하다.명문 야구단이란 호칭이 부끄럽게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다.겨우 두 번을 했을 뿐이다. 4년 전 우승..

나의 이야기 2010.10.13

동네 한바퀴

가을!날씨도 활동하기에 딱 좋은 계절특별히 바쁜 일도 없지만 사소한 일로 며칠 신경을 쓰다 보니 날짜 가는 줄도 몰랐다.매달 6일이면 붓는 적금 날짜를 깜빡 잊어버렸다. 나이 들어 적금 붓는 여자손자 손녀 보아주는 여자넓은 집으로 이사 가는 여자를 XX 여자라는 농담이 있다.그래도 작은 계획도 세우고 통장에 쌓이는 금액을 보면 얼마나 재미있는데... 차를 갖고 가면 잠시 다녀오는 거리지만 날씨가 너무 좋아 걷기로 마음먹었다.간편한 차림에 편한 신을 신고~모자도 쓰지 않고 양산도 들지 않은 채 이렇게 걸어 보는 일은 거의 없다.덕분에 시야가 넓어졌다.하늘을 보니 하얀 구름이 너무 아름답다.~~저 구름 흘러가는 곳 아득히 먼 그곳, 꽃들은 곱게 피어 날 오라 부르네 행복이 깃든 그곳에 그리움도 흘러가라 ~~..

나의 이야기 2010.10.08

푸른 피가 흐르는 사나이 양준혁 은퇴

우리나라 프로야구가 시작이 된 지가 29년이 되었다.야구의 본 고장인 미국에 비하면 짧은 역사지만 유치원 다니던 아이들이 시집 장가를 갔으니 꽤 오래전이다. 실력도 꾸준히 향상되어 삼성의 이만수가 9경기 연속 홈런 세계 기록도 탄생되었다.초창기의 멤버들이 각기 지도자의 길을 걷기도 하고 잊히기도 하지만 그래도 당시의 선수들이 기억에 많이 남아 있다. 야구에 관한 재미있고 남기고 싶은 얘기들이 많지만 오늘은 양준혁 선수의 은퇴식 이야기를 남기고 싶다. 야신!방망이를 거꾸로 잡고 쳐도 3할은 친다.야구계의 통산 최다 기록 보유자로 계산상으로는 웬만해서는 기록이 깨어지기 힘들겠다는 전망이다. 타율은 백인천 선수의 꿈의 4할 대와는 비교가 되지 않지만 도루를 제외한 공격 전 부분을 석권했으니 야구의 신이라 불러..

나의 이야기 2010.09.19

공원의 로맨스

영원한 내 사랑 마리아불꽃이 타는 내 가슴어두운 공원에서 그대와 마주 앉아 한동안 말이 없이빛나는 눈 속에 행복을 그리며 샛별 같은 참사랑을 서로가 그리면서영원을 다짐하는 이 밤아공원의 로맨스야 40여 년 전 즐겨 부르던 노랫말이다.정확하지는 않지만 샹송을 번안한 것으로 기억된다.오래되어도 가사는 전혀 잊혀지지를 않고 가끔 흥얼거리면 젊음의 그 시절로 잠시 돌아가는 기쁨이 있다. 금요일 밤은 일주일 중에서 가장 편한 시간주 5일제 근무로 예전의 토요일 기분이 나는 날이기도 하다.TV도 별 재미있는 게 없으니 공연히 허전하고 심심하다.밤 열 시가 조금 지났는데 갑자기 밤 산책이 하고 싶어 졌다. 아파트를 나가서 2동을 지나면 대로가 있고 대로를 바로 건너면 앞산공원의 입구가 있다.주거지로서는 자연의 혜택을..

나의 이야기 2010.09.18

신문지 벽에 어린 추억

신문지 벽에 어린 추억 추억은 아름답다.정말 아름답다.특히 유년기의 일들을 떠 올리면 그냥 깨물어 주고 싶도록 예쁜 추억들이 많다. 며칠 전 닭백숙을 먹으러 갔다.가창에서 유명한 곳이다.가창은 전형적인 한국의 작은 지형에 어울리는 좁고 예쁜 길이 많지만 계곡이 깊고 산세가 아름다워 드라이브를 즐기는 곳이다.대구에서 팔공산 쪽이 남성적인 멋이 있는 곳이라면 가창골은 여성적인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 찾은 곳은 자연의 혜택을 많이 받은 곳이다.아담한 집과 정원, 주변에는 맨드라미 봉숭아 방울꽃들이 내리는 비를 맞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비스듬히 오르막 땅에는 담쟁이가 타고 오르는 돌담이 성처럼 길게 둘러있고 돌담 아래는 정리된 장독대가  눈에 들어온다.방사해서 키우는 수많은 암탉과 몸집이 큰 수탉의 늠름한 모습..

나의 이야기 2010.09.14

별이 흐른다

가을비가 그쳤다.하루 종일 집 안에서만 맴돌았더니 조금은 답답하다.깨끗하게 정리되고 컴퓨터만 있으면 하루가 지루하지를 않는데 어수선한 집안이 마음의 편안함을 주지 못함일 것이다. 아파트지만 답답하다고 느끼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가 옆집이 없고 그 자리가 옥상으로 되어있기 때문이다.아마 일조권 때문에 공간으로 비워둔 것 같다. 넓은 옥상을 자유로 이용할 수 있으니 정원이 하나 있는 셈이다.밤에 나가 야경을 한 눈에 볼 수 있고 가벼운 운동도 한다.고추, 무우말랭이 토란줄기를 말리고 곶감을 말리기도 했다.미국 독립기념일 날은 미군부대에서 축제의 폭죽놀이를 구경하는 곳이기도 하다. 저녁을 먹고 옥상으로 나갔다.하얀 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있다.그때 구름 사이로 반짝이는 파란 물체 하나가 나타났다.움직인다.아! ..

나의 이야기 2010.09.13

좋은 일과 나쁜 일

딩동~누구세요?13층입니다.이곳으로 이사 온 지가 5년이 넘었지만 아직 이웃과 정식으로 인사를 하고 지내지를 않는다.예전에는 국민 대부분 1달에 한 번씩 반상회를 의무적으로 하게 되었지만 자율화가 된 후로는 특별한 일이 아니면 하지를 않는다.육십은 족히 넘어 보이는 아주머니였다.천정에 물이 새는데 위의 층에서 문제가 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죄송하기도 하지만 기가 막힌다.전체도 아닌 일부이지만 어떻게 하나~ 설비업체를 찾아 새는 곳을 찾았지만 오리무중간단히 찾을 수 있다는 말은 헛말이고 온 방을 다 헤집고 팠다.어수선한 집도 속상하고 아랫집에도 미안하여 내려가 보았더니 의외로 아주머니께서 위로를 해 주신다.누구 잘못도 아니니 너무 미안해하지 말라고 하신다.두 집 모두 자다가 날벼락 맞았다며 이런저런 얘기..

나의 이야기 2010.09.12

방황

방황글/눈님 걸었다다리가 아프도록 걸었다.은행도 다녀오고 병원도 다녀왔다상념에 젖어 계속 걸었다어둠이 내리는 거리는 하나 둘 불빛이 뽐낸다저녁밥 준비에 바쁠 시간이지만 멍 때렸다나 술 먹고 싶어!그래~ 돈 때문에 장사하는 게 아니라는 아주머니육십 후반은 된 것 같다칠십이 넘은 아저씨는 연탄불 피우기의 선수식당은 북적인다이곳의 갈매기살과 항정살의 맛을 누가 따르랴.곁들인 상치 파재래기는 완전 짱!야채와 마늘 값이 너무 비싸 아껴 먹었다주부인 나는 안다고고~ 참 좋다.남편이 아니면 누가 나의 말 무조건 들어주랴눈물이 나지만 웃음 띤 수다로 소주잔 기울인다모든 게 잠시 잊어진다아주머니의 특미 된장찌개와 공깃밥맛있다 그죠!거짓 없는 참이 배가 부르다. 가사를 잊어버린 흘러간 유행가 손 잡고 흥얼흥얼 바보처럼 걷..

나의 이야기 2010.09.03

큰언니

우리 부모님은 슬하에 1남 6녀를 두셨다.첫아들 오빠를 낳으시고 내리 딸만 여섯을 낳으셨다.요즈음 하나 둘만 낳아도 키우기 힘들어하는데 어떻게 키웠을까..그러나 어머니는 한 번도 큰 소리 내지 않아도 잘 자랐다고 흐뭇해하셨다. 여섯 딸 중 셋째는 태어나자 바로 세상을 떴고 오빠는 3년 전에 세상을 떠나셨다.이제 큰 언니가 75세로 가장 어른이다.부모님이나 다름없고 실지로 동생들에게나 집안, 친척의 대소사는 어른답게 모범을 보인다.큰언니에 대한 좋은 추억이 많지만 동생들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잘 드러나는 한 가지만 남겨야겠다.셋째 동생이 '영남예술제'에 학교 대표로 참석하게 되었는데 시집갈 혼수로 준비해 두었던 옷감을 잘라서 동생에게 옷을 만들어 입혔다는 일이다.반백 년 전의 일이지만 들었을 때도 지금도 생..

나의 이야기 2010.08.31

우리 가족만의 문화

뿌연 연기가 피어오른다.스르르 기차 바퀴가 움직인다.저마다 아쉬움의 손을 흔들며 눈시울을 붉히는 사람도 있다.떠나는 사람도 보내는 사람도 끈끈한 정을 나누는 플랫폼예전에 많이 보았던 추억의 광경이다. 자동차로 하는 여행을 좋아하지만 가끔은 기차를 이용할 때가 있다.주로 아이들이 있는 서울 나들이가 유일한 여행이자 즐거움지방에서 서울에 가면 갈 때마다 달라진 광경들이 조금은 위축됨을 느끼지만 아직은 전철을 탈 수도 있고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찾아갈 수도 있다.웬만한 일은 자식들 불편하지 않게 배려하지만 부모가 갔을 때에는 역으로 나오게 하고 아이들이 집으로 올 때는 모든 일  제치고 역으로 마중을 간다.모르는 사람들은 어린이나 노인도 아닌데 무얼 그렇게 극성스럽게 구느냐고 하지만 오래전부터 행하여 오는 우..

나의 이야기 2010.0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