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동네 한바퀴

눈님* 2010. 10. 8. 02:48

가을!

날씨도 활동하기에 딱 좋은 계절

특별히 바쁜 일도 없지만 사소한 일로 며칠 신경을 쓰다 보니 날짜 가는 줄도 몰랐다.

매달 6일이면 붓는 적금 날짜를 깜빡 잊어버렸다.

 

나이 들어 적금 붓는 여자

손자 손녀 보아주는 여자

넓은 집으로 이사 가는 여자를 XX 여자라는 농담이 있다.

그래도 작은 계획도 세우고 통장에 쌓이는 금액을 보면 얼마나 재미있는데...

 

차를 갖고 가면 잠시 다녀오는 거리지만 날씨가 너무 좋아 걷기로 마음먹었다.

간편한 차림에 편한 신을 신고~

모자도 쓰지 않고 양산도 들지 않은 채 이렇게 걸어 보는 일은 거의 없다.

덕분에 시야가 넓어졌다.

하늘을 보니 하얀 구름이 너무 아름답다.

~~저 구름 흘러가는 곳 아득히 먼 그곳, 꽃들은 곱게 피어 날 오라 부르네 행복이 깃든 그곳에 그리움도 흘러가라 ~~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곡을 작은 소리로 부르며 걸었다.

중학생들의 하교 시간이라 많은 학생들 틈을 걸으며 아이들을 보니 너무 예쁘다.

뚱뚱한 아이, 날씬한 아이, 키가 크고 작고 풋풋한 웃음이 바람에 날린다.

 

시간에 맞추어 볼 일을 보고 돌아오는 길은 평소에 잘 다니지 않는 길을 걸어 보기로 했다.

큰길을 피하고 작은 골목길을 찾았다.

길 가의 자투리 땅들은 구청에서 환경미화 차원에서 각양각색 꽃들을 심어 놓았다.

사람 손이 가지 않아도 스스로 잘 자라는 야생화들이 많았다.

나팔꽃 맨드라미 금송화 채송화 분꽃 등

내년이면 떨어진 씨앗들이 또다시 예쁘게 피어날 것이다.

 

좁은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오래된 집들이 오늘따라 정겨워 보인다.

한 뼘 땅만 있어도 작은 꽃을 심어 놓았는데 하얀 수선화가 청초하다.

우리 집 베란다의 수선화는 몇 년째 꽃이 피지 않는 것은 햇빛을 많이 받지 않아서인가 보다. 

어떤 곳은 화분에 고추랑 상추 케일 실파를 심어 놓은 집도 보인다.

빨갛게 익어가는 고추가 얼마나 예쁜지 멈춰 서서 조심스레 만져보았다.

채솟값이 금값인데 얼마나 뿌듯할까.

 

다시 또 조금 걸으니 세상에~

어릴 때에 불며 놀던 꽈리를 심은 화분이 있었다.

주황색의 열매가 주렁주렁 달렸다.

겉껍질을 벗기면 구슬 같은 열매가 나오는데 이빨로 살짝 누르고 씨를 빼고 불면 소리가 난다.

또 조금 걸으니 학교의 뒤뜰에 피마자(아주까리) 나무가 있었다.

꽃이 진 자리에 별사탕 같은 열매가 조롱조롱 달렸다.

옛날에는 씨는 기름(아주까리기름)을 짜고 잎은 말려서 보관하여 정월 대보름에 나물로 먹었다.

어릴 때 들에서 갑자기 비를 만나면 피마자의 넓은 잎을 머리에 쓰고 달리던 추억도 예쁘다.

 

한 시간 정도 걸으면서 이렇게 귀한 것들을 보게 될 줄이야.

마음이 잔잔해지고 착해지는 것 같다.

많은 계획을 세워 먼 곳으로 오랜 시간 여행을 한 것보다 더 좋은 시간이었다.

작고 보잘것없는 것들도 애정을 갖고 보면 보석처럼 아름답다.

오늘 눈에 담은 작은 것들로 한동안 행복할 것이다. 

 


김용호 시, 김동진 곡 / Soprano 조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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