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해서 가끔 생각을 하게 된다.
나이 탓만은 아니다.
유년기 시절에는 죽는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그때는 부모님의 죽음이었지만 지금은 자신의 죽음에 대한 생각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나는 어떻게 살아요?"
"그래도 다 살아간다."
"부모님이 없는데 어떻게 살아요."
도저히 이해가 되지를 않아 정말 슬프게 울었던 일이 여러 번 있었다.
아버지와 엄마의 똑같은 대답처럼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슬픔의 기간은 있었지만 정말 잘 살았다.
"엄마 만약에 지진이 일어나면 어떻게 할 것 같아요?"
포항 지진이 있고 얼마 지난 후 딸의 물음이었다.
"커피를 마시고 있을 때,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마지막 커피를 우아하게 먹겠다." ㅎ
농담 반 진담 반의 대답을 가볍게 했다.
"우와, 우리 엄마 멘탈 갑이다."
누구에게나 피할 수 없는 게 죽음이다.
사고로 죽는 건 너무 끔찍하고 싫지만 천재지변이나 수명대로 자연사하는 것은 초연히 받아들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미련이 남지 않도록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자, 실천 중이다.
남편의 친구 부고를 받았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5~6년 제주도에서 살았고 2년 전부터는 병원 이동이 편하도록 서울에서 보냈다.
부모님이나 가족의 부고를 제외한 타인의 부고 소식에는 조금의 안타까움과 영면을 빌었을 뿐인데 이분은 그렇지를 않다.
남편은 처남이나 동서 부고를 받았을 때보다 더 마음이 이상하다고 한다. 나 역시 순간순간 울컥한 마음이 든다.
저녁에 정성 들여 예복을 갖춰 입고 문상을 했다.
영정 사진은 머플러를 두르고 멋을 부리던 때의 건강한 모습의 얼굴이 웃고 있었다.
남편 친구 문상에 눈물을 많이 흘리면 이상해 보일 것 같아 꾹꾹 참으며 손수건, 휴지로 몰래 닦아냈다.
부인과는 지금도 모임을 하고 있다.
가족끼리도 아는 사이다.
부인은 나리를 너무 예뻐하며 며느리 하자고 졸랐다. 손에 물도 묻히지 않게 도우미도 붙여주고 공주처럼 해주겠다고.
돌아가신 분은 D,K 골프협회 회장을 역임했고 싱글을 치는 골프광이셨다. 초보인 나에게 머리를 얹어준 분이다.
고수와 왕초보의 라운딩은 흔한 일이 아니란 걸 세월이 지나서 알게 되었다. 미안하고 고마웠다.
우리가 갑자기 어려움을 겪을 때도 진심으로 큰 위로를 해주셨다. 그 고마움을 늘 잊지 않고 있다.
지지난 겨울에 마음에 간직했던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식사 대접을 한 게 얼마나 다행이었나.
수십 년의 일들이 간간이 떠오르고 좋았던 추억들에 엷은 미소도 지어보지만......
죽음과의 이별은 참 슬프다.
산울림님의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