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빛 하늘
비는 오지 않는데 아침부터 찌푸리고 있다.
하늘을 바라보니 처음으로 '회색'의 진가를 확인한 것이 '타월'이라는 생각에 꼬리를 문다.
이전에는 '회색분자'라는 부정적인 느낌이 강해서 조금은 비밀스러운, 어두운 듯하여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사람도, 일도 분명한 걸 좋아한다.
하늘 보기를 좋아하지만 회색빛 하늘은 싫었다.
어느 날 화장실의 타월 걸이에 회색과 다른 색의 타월이 나란히 걸려 있는데 씩 웃었다. 너무 잘 어울린다는 걸 알았다.
천연색의 어떤 타월과도 무난하다.
남편과 타월을 따로 사용하는데 가능한 색상은 어울리도록 걸어둔다. 가끔 생각 없이 걸어둔 총천연색의 타월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회색은 모든 색을 아우르고 품는구나.
나는 혼자만의 시간에 늘 목마르다.
남편 퇴직 후 거의 함께 있으니 더더욱 그런 것 같다.
"나리 아빠랑 매일 근처 좋은 곳 많은데 걸으면 되겠네."
"너도 하루 종일 함께 있어봐라 그런 말 나오는지. "
모임에서 친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격하게 틔어 나온 말에 친구들 모두 "맞다" 라며 폭소가 터진 일이 있었다.
어제도 오늘도 혼자다.
어제는 늦잠 자고 종일 어슬렁거렸다. 매트 깔아놓고 짐볼과 놀기, 리모컨으로 TV채널 산책, 컴퓨터, 전화 몇 통화
아침은 시리얼과 과일 몇 조각, 점심은 갈비찜과 깻순멸치볶음, 커피, 저녁은 컵라면과 샐러드, 편한 대로였지만 한 끼도 굶지는 않았다.
들판에 평화롭게 놀고 있는 토끼들도 이런 기분일까.
오늘도 또 나간다는 남편, 서울의 후배가 김천에 사는 후배 집에 자고 어제는 의성, 오늘은 예천으로 가서 함께 보내자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나야 땡큐지, 너무 기쁜 표정은 감추는 게 예의.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을 때가 좋지요." 맞는 말이지만 속내를 감추고 앙큼을 떨었다.
"미안하다. 잘 챙겨 먹어라."
혼자 있으면 특별한 일이 있을 것만 같았다.
밖을 보니 하늘은 짙은 회색빛이다.
잠옷을 입은 체 어슬렁거리다가 곧 반성.
아침은 시리얼과 어제 먹다 남은 과일 조각, 점심은 더 간단한 걸 찾다가 남은 피자 두 조각과 콜라, 냉장고 안쪽에 있는 피클은 내기가 귀찮아서 앞에 보이는 밀폐용기의 김치로 대체.(통째로)
거실에서 혼자 먹는 피자, 회색빛 하늘, 겨울 산, 시간을 사이에 두고 새들이 오간다. 까치, 까마귀, 왜가리, 백로들일 거다. 신천이 근처에 있고 산이 가까우니 먹잇감 구하기가 쉬운 탓에 새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화분에 물을 주는데 화려하게 한바탕 꽃이 피고 진 제라늄에 다시 또 꽃봉오리가 여기저기 솟아오른다. 쓰담쓰담~~
까마득 아파트 아래에는 사람들의 오고 가는 모습이 개미처럼 작아 보인다.
날아가는 새도 오늘은 특별하지를 않다. 특별한 일도 생각도 없이 종일 덤덤하다. 본능처럼 저녁에는 무얼 먹을까, 생각 중이다.
회색빛 하늘과 나의 하루 생활이 겹친다.
분명한 걸 좋아하던 성격도 회색빛으로 물들어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회색타월처럼~~~ 괜찮은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