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보호사의 길

행복을 드릴게요

눈님* 2023. 7. 28. 21:14

정원의 목련은 쌩쌩 부는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두텁고 단단한 털옷을 벗을 준비를 하고 있다.

언젠가 올봄을 기다리며......

계절은 어김없이 찾아오고 얼었던 땅에서는 새싹이 힘차게 솟아나고 죽은 듯 겨울잠을 자던 나무는 물이 올라 푸르름과 온갖 꽃들로 새로운 세상을 노래하겠지.

여기 우리 어르신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지내실까? 

대부분 인지능력이 없고 있더라도 의사표시를 하실 수가 없으니 최대한 마음을 읽으려고 노력할 뿐이다.

다행히 조금의 소통이 되는 분이 몇 계신다.

박혜숙 어르신

파킨슨으로 몸의 움직임이 둔하고 많이 경직된 상태다. 

이분은 한 번도 웃는 얼굴을 보지 못했다.

눈을 감고 계실 때나 주무실 때도 항상 얼굴을 찡그리고 계신다.  

자식도 없고 가까운 사람도 없고 가끔 질녀라는 분이 찾아올 뿐이다.

다른 어르신들의 가족이 찾아오시면 그냥 눈을 감고 꼼짝도 않고 계신다.

"선생님, 내가 돈이 조금 있어. 밤에 기침을 많이 하던데 십만 원을 줄 테니 약이라도 사서 먹어"

"말씀은 고마운데 괜찮아요."

"대충대충 하고 앉아서 좀 쉬어."

"일하는 게 재미있어서 하니 괜찮아요."

청력이 좋지 않지만 귀에 대고 큰 소리로 말하면 이렇게 대화도 가능하다.

오늘도 우울한 모습으로 눈을 감고 계신다.

"어르신 눈 좀 떠보세요.

지금껏 살면서 제일 행복했을 때 얘기 좀 해주세요."

"없어!"

"한 번도 없어요?"

"없어!"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하면 행복하겠어요?"

"그럴 것도 없어!"

"큰 일 났네. 그래도 생각해 보세요. 행복하게 사셔야지요."

한참 생각하시더니 "몸이 가렵지 않으면 행복하겠어."라고 하신다.

"네에."

그러고 보니 자주 가렵다고 하시면 로션을 발라드 리는 게 전부였다.

 

잠자리에 들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행복과는 관계가 없다고 하시는 어르신... 너무 가엾다.

행복을 안겨드리자

내가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일이라 참으로 고맙고 다행이다.

다음 날 바로 실천에 들어갔다.

대형 목욕타월에 물을 적셔 침대 머리에 걸쳐놓고 유분이 많이 함유되고 질이 좋은 로션을 준비했다.

로션으로도 해결이 되지 않으면 오일을 함께 사용할 생각이다.

바쁜 시간을 피하기 위해 조금 일찍 출근하기로 했다.

미지근한 물수건으로 먼저 몸을 닦고 로션을 듬뿍 발라 잠시 마사지를 해드리는 일이다.

상체와 다리를 하는데 십 분이면 가능하지만 등에서는 땀이 베인다.

하루 한 번이면 가렵다 소리를 하지 않고 자주 부르지도 않으니 오히려 더 편하고 마음도 뿌듯하다.

나 역시 건성 체질이고 고치려고 노력하지 않은 탓에 건조증이 심하다.

탕 목욕을 하고 나면 가려움에 여간 고통이 따르지 않는다.

그래서 가려움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 이해를 한다.

가려워도 로션의 끈적임이 싫고 귀찮아서 상처가 나도록 긁기가 일쑤다.

이런 내가 어르신께 해드리는 일은 정말 큰 마음을 먹은 것이다.

잘했어, 스스로 깨알 같은 칭찬을 하면 기분이 좋다.

어르신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2014.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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