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사이 한 줄기 비가 내린 탓인지 아침 공기가 상쾌하다.
멀리 보이는 앞산이 한결 또렷하다.
텃밭과 테라스가 한눈에 들어오는데 우와 나팔꽃이 피었네, 한 송이 두 송이...... 우물가에 나팔꽃 곱기도 하지 흥얼흥얼~~
"계량 어르신
어젯밤엔 이도 갈지 않고 잘 주무셨는데 아침밥도 잘 드시겠지요?"
아기처럼 쳐다만 보고 계신다.
"눈곱도 닦고 입도 닦고 손도 닦아요.
자세도 바르게 해 드릴게요."
거실의 TV와 필요 없는 불을 끄고 라디오를 켰다.
혼자 드실 수 있는 다른 어르신들께 맛있게 드시라는 인사를 드리고 잡숫기 싫다는 성조 어르신께는 어르고 달래 드시게 했다.
계량 어르신을 먹여드리는데 아침에 보았던 나팔꽃 생각이 났다.
"어르신 꽃밭에 나팔꽃이 피었어요. 작년에는 1층에 계시면서 매일 보았는데 올 해는 2층에 계시니.... 그래도 매일 휠체어 태워서 구경시켜 드릴게요."
주파수가 잘 맞지 않는 라디오를 껐다.
오늘은 몇 월 며칠이고 날씨는 어떻고 찬은 무엇이고 등등의 얘기 대신 작은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우물가에 나팔꽃 곱기도 하지 아침마다 첫인사 방긋 웃어요
점심때에 우물가에 다시 와 보니 방긋방긋 반가워 놀다 가래요.
친구하고 놀다가 늦게 와 보니 노여워 입 다물고 말도 말래요.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 채송화도 봉숭아도 한창입니다.
아빠가 매어놓은 새끼줄 따라 나팔꽃도 어울리게 피었습니다.
작은 소리로 흥얼거리던 노랫소리가 식사시간 내내 연속으로 부르는 사이에 커졌다.
다른 방 어르신들께도 들렸을 거라 생각하니 그냥 기분이 좋다.
밤새우고 퇴근하는 길이지만 활짝 핀 나팔꽃 같은 웃음을 다른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겠지.
나만의 비밀스러운 작은 행복이 내가 살아가는 원동력임을.
2014.05.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