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보호사의 길

반달

눈님* 2023. 7. 28. 20:58

낮에 나온 반달은 하얀 반달은

해님이 놀다 버린 쪽박인가요

꼬부랑 할머니가 물 길러 올 때

치마 끝에 달랑달랑 채워줬으면

 

요양원 테라스에서 빨래를 널다 우연히 쳐다본 하늘에는 하얀 반달이 떴다.

자연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어릴 때 본 반달은 지금도 반달이다.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는 반달의 노랫가락에 잠시 동심에 젖었는데 그런 자신이 싫지는 않다.      

 

권 어르신이 병원에서 다시 요양원으로 돌아오셨다.

너무나 반가움에 눈이 뜨끔하다.

마음은 통하는 게 인지상정

어르신의 눈도 촉촉하다.

"아침에 마음먹은 게 맞았다." 고 하신다.

무슨 뜻인지는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병원에 계시지 않고 이곳에 오신 게 마음이 편하시다는 표시임에 틀림없다.

잘 오셨어요.

정해년생도 2층에 있고 주방을 보던 XXX도 있고요 작은 임진년생도 여기 있잖아요.

예전처럼 우리 잘 지내요.^^

준수하던 얼굴이 반쪽이 되고 담즙을 걸러내는 주머니를 차고 오셨다.

등 뒤의 꼬리뼈는 욕창의 전조를 보이고 소변 관리가 힘이 들었는지 보기가 민망할 정도다. 

최선을 다 해 정성껏 모시리라 다짐을 해 본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모든 게 낯설어 다른 세계에 왔는 느낌이었다.

주름 진 얼굴에 은발 머리, 느린 걸음, 굽은 허리, 새로 온 사람이 신기한 듯 보시는 표정 등 돌아가신 부모님을 만났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치매 증상이 있는 분들이라 거부감 없도록 무조건 좋은 인상을 보여드리려고 미소를 짓고

공손한 태도로 다가갔다.

그런데 권 어르신은 정신이 맑아 보였다.

할머니가 돌아가시니 혼자 사는 게 어려워 이곳에 모셨다고 한다.

물론 아들과 딸들이 있지만 모시기는 여건이 맞지 않았는 모양이다.

 막내딸이 주말마다 간식을 많이 사서 아버지를 찾아오고 가끔은 모시고 나가는 일도 있었다.

저녁 근무를 할 때는 보호사들을 불러 간식을 나누어 주시는 친절도 베푸신다.

일이 끝나고  베란다 한 편의 텃밭에 잡풀을 뽑을 때나 잠시 자리를 빌 때에는 어르신께 부탁을 드린다.

"누가 현관의 벨을 누르면 큰 소리로 저를 불러주세요~~ "

"알았다."

아버지처럼 믿고 의지했던 어르신이 어떻게 저렇게 되었을까, 너무 안타깝다.

어르신 우리 모두 잘 모실게요.

마음 편안하게 잘 지내세요.

 

 

 

 

 

반달

 

반달을 노래하던 꿈 많던 어린 시절 

달변에 정의로움 세상을 품었던 나

 

반쪽을 찾아 나선 내 발길 머무는 곳

달콤한 속삭임이 내 귀에 맴을 돈다

 

반평생 살아온 길 되돌아 구비구비

달라진 삶의 의미 오늘도 되새긴다

 

2013.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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