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통찰
“H 씨! 기저귀 손대면 안 돼요. “
“어어 시X ~ ”
“또 욕 하네요, 아니~~~ ” “자꾸 그러시면 간식 없어요.” “
@#&%~~~”
기저귀 빼어서 옷이랑 침대 시트 몽땅 다 젖게 하고 욕하고 거짓말까지 하니 오늘 간식은 주지 않겠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매일 먹을 것만 생각하는 게 하루 일과인 H 씨에게 먹는 것을 주지 않겠다는 말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없을 것이다.
아무리 정성을 다해도 도저히 감당을 할 수가 없어 생각해 낸 것이 먹을 것을 가지고 겁을 주면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잔꾀였다.
2년이 훨씬 지난 지금 생각하면 좋은 요양보호사로서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아들 딸 결혼시키고 나니 부모로서 큰일을 다 했구나 하는 홀가분한 기분도 잠시 세상에 관해서 관심도 재미도 없고 마음은 허전했다.
의욕상실과 우울함에 애꿎은 남편만 흘겨보기도 하고 컴퓨터 게임에 빠져 밤을 새우기가 일쑤, 자판기를 너무 두들겨 손목 관절에 이상이 생겨 정형외과 치료를 받기까지 했다.
그러던 중 친구의 권유로 요양보호사 일을 하게 된 것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이 이곳에 널려 있으니 이보다 더 다행일 수는 없었다.
공동생활가정이란 말이 딱 어울리는 아담한 집. (지금은 요양원)
작은 텃밭에는 열무 새순이 파릇이 줄을 서 있고 상추와 고추 모종이 어우러져 있고 살구꽃 석류꽃이 눈이 부셨다.
앉아 쉴 수 있는 테라스가 있는 아담한 집에는 9명의 어르신이 계셨다.
각기 모습도 건강상태도 틀려 개인적인 맞춤식 보호를 받아야 할 분들이다.
대부분 70~90대 연세인데 유일하게 젊은 환자가 눈에 띄었다.
와상 상태로 누워있었는데 눈은 노려보는 것 같기도 하고 관찰하는 것처럼 뚫어지게 바라보니 솔직히 조금 무서웠다.
얼굴도 크고 몸집도 있는, 건강한 사람이라면 기골장대하다고 할 체격에 침대가 작아 보였다.
나도 모르게 왜소한 나의 몸을 훑어보며 과연 해 낼 수 있을까 조금 염려가 되기도 했다.
치매라고 하면 일단 성격이 괴팍스럽고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고 횡설수설하여 전혀 소통이 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단단한 각오를 하고 한 분 한분께 정성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생각보다는 훨씬 부드럽고 잘 웃으신다.
작은 스킨십에도 고마워하시며 시선은 나의 뒤를 따르고 또 눈이 마주치면 좋아하신다.
지나다닐 때 누워계시는 분께는 다리나 팔을 잠시 가볍게 주물러 드리고 앉거나 서서 계시는 어르신께는 어깨를 안거나 얼굴을 손으로 비벼드리면 너무 좋아하신다.
그런데 유일하게 H님 만 예외다.
약간의 두려움이 있어 선뜻 다가가기가 쉽지가 않았다.
잘 웃지도 않고 알 수 없는 언어로 무언가 계속 요구를 하지만 알아들을 수가 없으니 욕구를 충족시킬 수가 없었다.
다소 불안하고 걱정이 되어 다른 보호사에게 그에 대해서 물었더니 “종일 먹는 것 외에는 별생각 없이 지내는 사람이다.
교통사고로 반신마비가 되고 뇌를 다쳐 4~5세 아이의 지능밖에 되지 않으니 걱정할 것 없다. “고 했다.
아, 그렇구나. 너무 가엾다.
가족을 돌보아야 할 젊은 나이에 저러고 있으니 가족은 또 얼마나 기가 막히겠는가?
H님을 위한 특별한 관심과 재활을 위해 함께 최선을 다 해 보기로 하고 실천에 들어갔다.
내 아이를 키울 때의 정성을 그대로 보인다면 언젠가 소통이 되리라 희망을 걸며. 당장 행동으로 옮기는 일은 변비를 없애주는 것이다.
식습관과 운동부족으로 지독한 변비로 고생이 말이 아니다.
10~12일 만에 변을 볼 때는 임산부가 아기를 낳을 때처럼 요란하다.
변이 너무 크고 딱딱해서 항문이 찢어지니 피까지 보인다.
일단 싫어하는 물을 자주 마시게 하고 매끼 식사에는 섬유질이 많은 야채를 풍부하게 준비하고 먹기 좋도록 손질도 잊지 않았다.
꾸준히 정성을 들였더니 변 보는 간격이 7일로 당겨지니 너무 기뻐 주방을 드나드는 발길도 더욱 가벼워졌다.
뿌린 만큼 거둔다는 말처럼 정성을 들인 결과는 4일로 당겨지고 이제는 1~2일로 변비는 말끔히 없어졌다.
변비 처치를 하면서 함께 한 것이 팔다리 운동과 누운 채로 체위변경을 자주하여 몸을 많이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마비되어 자꾸 구부러지는 팔과 다리 손가락을 펴고 마사지를 하며 당기고 들어 올리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목을 가누지 못하고 다리에 힘이 없어 침상에 누워있는 시간이 너무 많았다.
무표정한 얼굴에 웃음을 찾아주고 싶었다.
기분전환을 위해 휠체어로 테라스를 산책시키고 해 바라기를 하는데 햇볕을 너무 싫어해 고함을 지르기도 하고 심하면 욕도 하지만 어르고 달래며 계속했다.
그런데 몸에 비해 작은 휠체어는 너무 불편해 보였다.
더구나 목에 힘이 없는데 큰 머리는 앞으로 구부러지니 목이 얼마나 아플까?
아무리 연구를 해도 특별한 방법이 없어서 원장님께 상의를 드렸다.
어려운 재정임에도 불구하고 목 보호대가 있어 H님의 큰 머리를 감싸 안을 수 있으며 몸을 뒤로 뉘일 수 있는 대형 휠체어를 마련해 주셨다.
아마 가격도 꽤 비싸지 싶다.
마음으로 깊은 감사를 드린다.
이곳에서 가장 힘든 일이 H 씨 목욕을 시키는 일이다.
한쪽 팔과 다리에는 힘이 조금 있는데 전혀 쓰지를 않는다.
축 늘어진 큰 체격 때문에 세 사람이 온 힘을 합쳐도, 혹여 다칠까 조심까지 하려니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아무리 다리에 힘을 주고 한쪽 팔로 어깨를 잡으라고 해도 소용이 없다.
그래서 머리를 썼다.
매일 휠체어를 태우고 내릴 때는 여러 사람이 하는데 내릴 때는 혼자서 시도해 보기로 했다.
휠체어만 태우면 침대에 눕고 싶어 계속 칭얼거리는 것을 이용한 것이다.
"H 씨! 눕혀주고 싶어도 나 혼자 뿐이고 체격이 이렇게 작은데 어떻게 눕힐 수 있겠어?
만약 H 씨가 내 어깨 위에 손을 얹고 한쪽 다리에 힘을 주고 일어설 수만 있으면 되는데 할 수 있겠어요? "
"어어~"
"정말?, 조금만 실수해도 다쳐서 피가 날 수도 있는데요?"
"어어"
애절한 눈빛과 어리광이지만 할 수 있다는 의지는 분명하다.
배운 대로 자세는 최대한 안정되게 해서 시도해 보았다.
입에서 흐르는 미끈미끈한 침은 나의 어깨에 흘렀고 팔과 다리는 생각보다 심각하게 힘이 없었다.
다리에 힘을 주고 일어서지 않으면 어떻게 할 수가 없다며 포기를 한 것이 몇 번인가?
그러나 인내심을 갖고 끊임없이 시도를 한 결과 드디어 성공이다.
다리는 투덜거리며 떨렸지만 틀림없이 힘이 들어갔고 팔도 어깨에 걸쳐져 있었다.
하루 이틀 반복하다 보니 이제는 팔과 다리에 제법 힘이 생겼다.
“어깨 손, 다리 힘 알지요?”
휠체어에 태우고 내릴 때 짧은 언어, 이마에 주름이 잡히도록 눈을 크게 뜨고 웃는 눈빛 교환만으로 이제는 손발이 척척 맞는다.
늘 식탐이 많아 큰 체격에 비만이 될까 봐 걱정했는데 요즘은 식욕이 떨어져 걱정이다.
서툴러도 한 손으로 식사를 하게 하는데 이제는 먹여주지 않으면 아예 입을 꽉 다물고 있다.
가지나물 호박나물 버섯무침 소고기 볶음 가루 김에 특별히 고추장을 곁들인 비빔밥과 된장국이 저녁 식단이다.
"비빔밥에 H 씨가 좋아하는 고추장을 넣었네요."
그래도 시큰둥하다.
고개가 마비된 쪽으로 기운다.
바로 세우니 이번에는 반대쪽으로 기운다.
숟가락을 기우는 쪽으로 각도를 맞춰 겨우 넣어주면 주르르 반은 흘러내린다.
한 손으로 무거운 머리를 고정시키고 반복을 하려니 팔목이 아프고 욱하고 화가 치민다.
두상이 크고 목에 힘이 없으니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한 템포 늦추자.
심호흡을 한다.
몸을 굽혀 내 머리의 방향을 H 씨의 기운 방향으로 기울였다.
두 머리가 평행선을 이룬다. "이렇게 하니 H씨 얼굴이 바로 보이네, 어~숟가락도 바르게 들어가네."
음식물은 계속 흘러내렸지만 기우는 쪽으로 이쪽저쪽 머리 돌리기를 반복을 하다 보니 웃음이 나왔고 내 얼굴만 보고 있던 H씨도 밝아졌다.
오후 간식 시간이 되어 침대를 올리는데 왜 그렇게 무겁고 뻣뻣한지.
지친 표정으로 식판을 당기는데 갑자기 으으 소리를 내면서 한 팔로 내 팔을 쓸어주고 반대편 팔도 쓸어주는 게 아닌가.
너무 놀라운 광경에 "H 씨 지금 내 팔 아프다고 마사지해 주는 거예요?"
"으으 고 (마워)! "
얼굴에는 지금껏 보지 못한 웃음을 웃고 분명히 ‘고’ 자가 들어가 있었다.
"어머나 세상에~ H 씨와 이제 소통이 되나 봐. “
“다행이다. 정말 고마워요!"
"기념으로 하이 파이브 한 번 해요."
짝!
“한 번 더”
짝!
“삼 세 번이니 한 번 더~”
짝!
정말 눈이 촉촉해진다.
오후 내내 기저귀를 빼어버리는 일 없이 한 번의 소변 실수도 하지 않았다.
부지런히 벨을 눌렀고 나는 눈썹이 휘날리도록 달려갔다.
그럴 때마다 소통이 된 즐거움으로 두 손은 짝! 파이팅을 외쳤고 H 씨는 즐거워했다.
사소한 일도 하나하나 소통을 하고 눈높이를 맞추어 가다 보니 H씨도 1등급에서 2등급으로 호전이 되었다.
기쁨에 요양보호사로서의 자부심을 가지며 더 좋은 요양보호사가 되겠다 스스로에게 다짐을 한다.
H씨도, 다른 환자들도 내가 돌보고 있지만 조금 더 생각하면 이는 나라에서 돌보고 있는 셈이다.
좋은 제도 덕분에 이 분들이 보호받고 치료받을 기회가 생긴 것이니 말이다.
노인 장기요양보험제도는 최고의 사회보장제도라 생각한다.
핵가족 제도도 위협을 받고 결혼도 선택이라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효’ 사상도 낡은 문화로 퇴보하는 현실이다.
종일 보살펴야 될 부모님이 계시면 부부간, 자녀 간에도 많은 문제점이 생길 테고 가정 파탄 또한 사회문제가 될 것이다.
자식을 위해 국가를 위해 한평생 일하신 우리 부모님의 노후를 최소한이라도 안락하게 보내시게 해 드릴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국민이 국가를 믿고 열린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고 안심하고 자기 일을 할 수 있는 사회를 대다수 국민들은 원하기 때문이다.
이 제도에 관계하시는 많은 분, 박봉에도 묵묵히 동참하시는 여러분들께 감사를 드린다.
이 제도의 취지에 누가 되지 않도록, 또 환자들과 어르신들이 편안히 지내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한다.
2014.
노인 장기요양보험제도 요양보호사 실천 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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