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목 : 그날이 오면
□ 내 용
내 나이 59세. 환갑을 몇 달 앞두고 있다.
이제는 자신을 돌아보고, 더 나이가 들기 전에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 생각도 하게 되었다.
부모형제나 주위, 사회로부터 과분하게 받았던 혜택과 사랑을 이제는 조금이라도 베풀고 가야 할 때라는 생각을 한다.
눈에 보이고 듣고 배운 만큼 세상을 알았는데 의외로 세상은 넓고 복잡하고 다양하다.
보이지 않는 음지에서 그들만의 작은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에서 시작하게 된 노인요양 봉사활동.
처음으로 일을 하게 된 곳은 노인요양공동생활가정이다.
대형 방 두 개와 작은 방 하나 욕실 3개 면담장소 비품창고 거실과 부엌 등을 갖춘 60평 규모의 가정집이다.
깨끗한 테라스와 작은 텃밭이 유난히 눈에 들어온다.
SJH 어르신. 83세.
병세는 치매 와상 상태.
이곳에서 처음으로 만나게 된 어르신이다.
작은 체구에 숱이 많은 하얀 머리. 이빨이 없이 꽉 다문 입, 무심한 듯 바라보는 시선.
처음 어르신을 만났을 때는 움직이지 않는 폐기된 로봇 같았다.
온 몸은 뻣뻣하게 굳어 있고 표정도 말씀도 없이 보호사의 손이 가는 대로 온몸을 맡기셨다.
그러면서도 순간적으로 공격성을 띄는 것도 볼 수 있었다.
몸에 손이 닿으면 경계의 눈빛으로 거부를 하신다.
이유를 물었더니 이곳으로 오시기 전 다른 곳에서 신체를 구속당하셨기 때문이란다.
어떠한 사연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와 맺어진 인연인데 아픔을 치유하고 새로운 삶을 찾는 길을 함께 걸어가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어르신께 인사를 건네고 웃었다.
아무런 반응이 없다.
경계를 풀고 친밀감을 갖기 위해 온화한 표정, 부드러운 말, 진실한 마음을 갖고 다가가기로 했다.
많은 문제가 있지만 첫 번째 실천으로 기저귀를 갈 때 마다 가볍게 팔다리를 주물어드려 거부감을 없애기로 했다.
하루 종일 꽉 조여진 기저귀 착용으로 사타구니와 배는 발갛게 눌린 자욱이 선명하다.
말도 못하시고 움직이지도 못하시는데 얼마나 가렵고 답답할까?
차라리 시트가 젖어 자주 교환하더라도 느슨하게 해 드리자..
초보자라 기저귀를 잘 못 채운다는 말을 들어도 좋다.
어르신을 위한 나만의 세심한 마음이다.
교체 시마다 물수건으로 주위를 깨끗이 닦아드리고 가끔은 등도 긁어드린다.
경직된 몸을 완화시키기 위해 오며 가며 가벼운 팔다리 마사지를 해 드린다.
일직선으로 된 뻣뻣한 몸은 그대로이나 경계심은 많이 누그러진 듯하다.
다음으로 굽혀진 손을 펴기 위해 손을 잡으니 엄청난 힘으로 되레 잡아 위협을 주셨다.
처음에는 놀랐지만 "이렇게 연습을 하시면 손을 사용하실 수 있으니 저랑 연습해요." 부드럽게 말씀드려 본다..
차츰 도움을 주려는 마음을 아셨는지 하는 대로 맡기신다.
손바닥을 맞추며 비비기도 하고 손가락 마디마디 관절을 풀어드리기도 한다.
두 손을 폈다 구부렸다 아기처럼 잼잼을 시키니 천천히 따라 하신다..
"우와! 됐어요. 너무 잘하시네요."."
"뭘 이것쯤이야~ 더 어려운 것도 할 수 있어."
눈으로 말씀하시는 것을 마음으로 들을 수 있었다.
손의 경직이 조금 풀린 후 이번에는 팔을 위로 들어 올리는 연습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낮은 자세에서 점점 높이 올리다 차츰 횟수를 늘리고 회전하는 연습까지 가능하니 너무 기뻐하시는 눈치다.
"어르신~ 오늘은 저 혼자서 목욕을 시켜드려야 해요. 제가 이렇게 체격이 작으니 어르신께서 도와주실 수 있지요?"
눈을 깜빡이신다.
"휠체어를 꽉 잡고 다리에 힘을 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미끄러져요."
드디어 조금씩 움직이게 된 손의 위력이 발휘될 순간이다.
"두 팔로 저의 어깨를 꽉 잡아주세요, 등을 밀어드릴게요."
긴장한 어르신의 눈빛.
한껏 기대를 하고 어깨를 잡았지만 힘이 미치지 못해 풀썩 놓고 말았다.
그 순간 나도 넘어지는 모습으로 할리우드 액션을 취하며 놀라는 척했더니‘어허, 허허’ 소리를 내셨다.
틀림없이 웃는 모습과 웃음소리다.
‘좋아~ 됐어! 소통이 되고 있구나.’
“어르신, 다시 한번 힘껏 잡고 저를 안아보세요.”
입까지 힘을 주시고 너무 힘껏 잡으셔서 꼬집히는 아픔을 느꼈지만 이렇게 기쁠 수가 없다.
이곳저곳 씻을 때마다 필요한 자세의 설명과 도움을 청하고 눈으로 답하는 과정을 거치며 성공적인 목욕을 끝냈다.
내가 여기에서 일하는 보람과 이유이기도 하다.
조금씩 몸의 경직이 풀리고 손도 부드러워졌다.
서툴지만 오른손으로 식사를 하시게 했다.
엄지와 검지 사이의 수저의 떨림.
새 생명을 탄생시키기 위해 엄마가 마지막 몸부림치며 주는 힘이 저러하겠지..
수저와 입의 위치가 잘 맞지를 않는다.
겨우 맞추어도 대부분 음식물은 밑으로 흘러버린다.
안타까운 마음은 감추고 옆에서 용기를 북돋우며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많이 힘들고 외로워도 그건 연습일 뿐이야. 넘어지진 않을 거야 나는 문제없어~~ 어르신! 힘내세요!”
저절로 콧노래가 흥얼거려진다.
지켜보는 과정을 거치며 눈에 띄게 좋아지는 모습에 자꾸만 욕심이 생긴다.
그런데 손과 팔의 경직이 풀리면서 작은 문제가 생겼다.
손이 유연해지니 자꾸만 기저귀를 만지고 미처 발견하지 못한 변을 옷 이불 등에 묻히고 난리가 아니다.
기저귀를 다시 조이고 바지 끈을 단단히 두 겹 세 겹으로 묶는 등 대처를 하면서도 마음이 편하지가 않다.
"어르신~ 이렇게 하면 답답하시지요? 다시 편하게 해 드릴 테니 제발 기저귀는 손대지 마세요."
다시 느슨하게 해 드렸지만 크게 달라지진 않았고 평소보다 훨씬 자주 드나들며 관찰하는 수밖에 없다.
다음은 휠체어에 오르고 내리실 때 스스로 다리에 힘을 주는 연습을 하기로 했다.
"어르신~ 이제부터 저 혼자 어르신을 부축해야 하니까 다리에 힘을 주고 바닥에 설 수 있도록 연습해 봐요."
어르신의 다리 사이에 오른쪽 다리를 넣고 무게중심을 잡고 양쪽 허리의 옷을 잡았다.
"양쪽 팔을 저의 어깨에 얹고 목을 안으세요. 그리고 다리에 힘을 주고 바닥을 밟으세요."
매일 두 사람이 부축하다 한 사람으로 바뀌니 많이 불안하신 듯 두리번거리시며 시도를 않으신다.
몇 번의 설득 끝에 용기가 나셨는지 목을 꽉 잡고 비틀비틀 다리를 세우신다.
됐어.
이마에 땀이 나고 힘이 들지만 가능할 것 같다.
너무 기뻐 테라스에서 해바라기를 하며 팔과 다리를 닦고 마사지를 해 드리고 로션을 듬뿍 발라 각질관리도 해 드렸다.
그런데 기쁨도 잠시.
저녁에 기저귀를 갈려고 하니 또 거부를 하신다.
가장 힘든 일 중의 하나다.
다음 날 아침도 또 기저귀를 거부하신다.
아예 주먹을 날려 손목을 쳤다.
그럴 때마다 손과 손목에는 시퍼런 멍이 여러 번 들었다.
평소에는 시간이 걸려도 끝까지 설득을 하지만 오늘은 그럴 기분이 아니다.
바쁜 아침 시간이기도 하지만 너무나 잘 보살펴드리고 정성을 들이는데 몰라주시니 속이 상한다.
1회용 비닐장갑을 꼈다.
평소에는 조금 더 인간적이고 애정을 갖는 마음으로 맨손으로 처리를 한다.
가끔은 일부러 온기를 느끼게 피부 접촉도 해드리는데 오늘은 전혀 그러고 싶지를 않다.
조금은 난폭하게 바지를 꽉 진 손을 제지하고 일을 끝냈다.
그러나 이내 원망하는 마음과 난폭하게 다룬 행동에 대해 심한 우울함과 이런 마음으로 이곳에서 일을 할 수 있을까 회의가 밀려온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어르신들의 인격은 존중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저버린 것이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정말로 잘해 드리고 싶은데 너무 통하지 않으니 화가 나서 이제는 이 일을 못하겠다며 동료에게 하소연했다..
일을 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 당근과 채찍이 필요하다는 동료들의 위로를 받지만 그냥 힘이 쭉 빠진다.
"어르신 그저께는 화를 내어서 죄송해요. 제 마음을 너무 몰라주시니 정말 속이 상해요. 혼자 힘이 드니 조금만 협조를 해 주시면 큰 도움이 된답니다."
진심으로 마음을 전해드리고 전보다 더 정성으로 보살펴 드렸다.
그런데 알아들으셨는지 거짓말처럼 거부감 없이 기저귀 교체에 순순히 응하신다.
고맙습니다. 어르신.
“어르신~ 오늘은 양쪽에서 부축을 해드릴 테니 한번 걸어 보실래요?”
눈이 깜빡인다.
부축이라기보다는 양쪽에서 들어 올리는 자세와 힘으로 걸음마를 시켰더니 아기가 첫걸음을 뗄 때의 반응과 똑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상체는 앞서고 다리는 투덜거리며 아찔아찔 발자국을 끌면서 얼굴은 비장한 결심이라도 한 듯 심각하다.
차츰 발걸음도 부드러워지고 얼굴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환해지셨다.
"됐어요! 이렇게 매일 연습하시면 멀지 않아 혼자서도 얼마든지 걸을 수 있겠어요."
자신감이 생기셨는지 휠체어로 거실에서 아주 짧은 거리를 이동하시는 모습이 종종 보인다.
스스로 의지를 보이시니 생각보다 빨리 걸으실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곳의 환자들은 대부분 연세가 많으신 분이다.
모든 상태가 잠시 호전되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악화되기가 일쑤다.
SJH 어르신은 하루가 다르게 좋은 반응을 보이니 피곤함도 기쁨에 묻혀버린다.
걸음마 단계를 지나면 닫혀버린 말문을 열게 해 드려야지.
기분이 아주 좋으실 때 웃어보시라고 조르면 가끔 단음으로 소리를 내신다.
그럴 때는 당연히 눈도 웃고 있다.
잃어버린 언어를 찾아 소통이 되면 얼마나 하시고 싶은 말이 많을까?
가장 먼저 무슨 말을 하실까 궁금하지만 기다리는 기쁨으로 남겨두자.
불편한 기저귀도 얼른 치워드려야지.
그날이 오면 얼싸안고 못 추는 춤이라도 덩실덩실 추어야지.
70여일 만에 변화된 어르신으로 인해 나의 하루는 피곤함 속에서도 웃을 수 있고 남다른 행복을 느낀다.
조바심 갖지 말고 천천히 더 많은 어르신께 행복을 전해드려야겠다.
2012.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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