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보호사의 길

등 좀 밀어주세요

눈님* 2023. 7. 28. 22:09

"등 좀 밀어주세요"

예?

"조금 있다 등 좀 밀어주세요"

잘못 들었나 싶었는데 정확한 표현이었다.

얼마나 기다렸던 소리였던가.

 

LSH님이 이곳에 오신 지 계절이 몇 번이나 바뀌었다.

처음 오셨을 때는 대화가 전혀 되지 않았다.

종일 구부린 자세로 땅바닥만 처다 보고 계셨다.

아무것도 드시지 않겠다고 해서 애를 태웠고 가끔은 엘리베이터 앞이나 비상구 문 앞에 앉아서 가시겠다고 문을 열어달라고 호통이셨다.

"내가 나가면 신문에 큰 기사가 날 것이다." 라며 위협을 하셔서 보호사들은 밤만 되면 무섭다고 두려워했다.

환청이 심하셔서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웠다.

서로가 힘든 나날을 보내다가 도저히 감당이 되지 않아서 퇴원을 하셨다.

 

얼마가 지나서 다시 이곳에 오셨다.

지난번처럼 심하지는 않았지만 꼼짝도 않고 방바닥만 뚫어져라 보며 앉아만 계셨다.

식사를 드려도 거부하시고 입을 꽉 다문 채 묵묵부답이었다.

이것저것 음식을 나열해도 드시지 않겠다고 고개만 저으셨다.

"그럼 라면에 계란 넣고 파 송송 썰어 넣어 끓여 올까요?'

"시원하게 끓이면 맛있는데....." 옆에서 계속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한참을 생각 더니 "그럼 좀 주세요."

너무 불리지도 꼬들하지도 않게 정성 들여 끓여서 드렸더니 맛있게 뚝딱 다 드셨다.

 

다음 날에는 집에 있는 작고 예쁜 휴지통을 준비하고

비품 창고에서 작은 교자상도 준비를 해서 식판을 놓아 드렸다.

오후에 보니 한쪽 벽면에 상을 붙여 놓고 그 위에 물통을 얹어 놓으셨다.

원래 깔끔한 성격임을 알 것 같았다.

너저분하게 어지럽게 놓여있던 물건들을 손도 대지 못하게 하셔서 당분간 지켜보고 있는데

희망도 잠시 또 소통의 길은 멀고 험함을 되새기고 있었다.

좋은 보호사가 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요건이 참 많지만 그중 하나가 지치지 말고 끊임없이 애정을 가져야 된다는 것이다.

지치고 힘들어 욱하고 화가 치밀 때도 근본적으로 애정이 있어야 됨은 가장 중요하다.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어요? "

"안녕히 계세요. 저 집에 다녀올게요."

출퇴근 때는 듣거나 말거나 문 조금 열고 부지런히 인사를 했다.

 

식탁을 마다하고 굳이 바닥에서 식사를 하시는데 편한 자세가 아니고 쪼그린 상태로 불편해 보인다.

방석을 마련해서 드렸더니 낮아서 필요 없다고 하셔서 작은 이불을 접어서 드렸더니 침대에 깔고 계신다.

생각 끝에 목욕탕의 작고 예쁜 의자를 드렸더니 "조금 높긴 한데 됐어요." 하시며 잘 사용하신다.

이동이 불편해 보여서 워커를 마련해 드렸지만 소리가 나서 싫다고 하신다.

깔끔하신 성격에 시끄러운 소리는 남에게 피해를 준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

그래서 필요시에는 휠체어를 재빠르게 갖다 드리면 무척 만족해하신다.

밖으로 나가서 햇볕을 쬐자고 하면 싫다고 하시는데 나름 창으로 들어오는 햇볕을 침대에서 쬐는 모습도 보인다.

몇 달이 지나자 어느 날

"왔어요?"

먼저 인사를 하시는 게 아닌가. 

작은 목소리로.

그리고 가끔 멋 적게 웃기도 하시는데 갈수록 잦으시는 것 같다.

그런 날은 종일 나도 실없이 히죽히죽 웃고 다닌다.

나의 아기가 첫걸음마를 떼었을 때도 많이 웃고 다녔는 것 같다.

 

"상훈님!

언제든지 목욕하고 싶을 때 마음대로 하세요."

도움받기를 거부하시고 혼자 하거나 보호자가 와서 해주는데 날짜를 정하지를 않았다.

오후에 속옷과 바지를 준비해 놓고도 초저녁까지 전혀 움직임이 없었다.

일과를 대충 마무리를 하고 퍼즐 맞추기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였다.

그때 샤워실로 들어가시더니 등을 밀어달라며 부탁을 하시는 거다.

"마음을 열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목욕하는 일이 즐겁고 기다려지는 연속성이 되어야 한다.

편한 마음을 갖도록 최대한 노력을 한 탓인지 성공적이다.

"물기가 있을 때 손발톱도 정리를 해요."

"예, 그런데 발톱이 두꺼워서~"

"목욕하실 때마다 조금씩 깎아 내면 얇아질 겁니다."

다시 한번 마음을 열어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렸더니

미안해서 그랬다며 "내가 더 고맙습니더."  목소리도 조금 커진 것 같다.

 

2014.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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