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학력

눈님* 2024. 9. 25. 02:43

"너는 학부형 제출 서류 최종 학력란에 어떻게 적었어?"

단짝인 친구가 첫아이 입학하고 학교에 갔을 때 학부형이 제출하는 서류에 최종 학력을 적을 때 속상했다고 하소연했다.

"나는 고등학교 적었다"

그런데 대학교 나온 사람이 많은데 아무래도 학력을 속이는 것 같더라는 것이다.

우리가 상업고등학교를 나왔으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 거라며 서로 다독였다.

남편에게 얘기를 했더니 대학 졸업이라고 적지, 확인할 것도 아닌데.

 

딸이 유치원 다닐 때 집에서 피아노 레슨을 받을 때이다. 그때 나도 레슨을 받았다. 중급의 고비를 넘지 못하고 대신 아들이 이어받았다.

살면서 두고두고 후회되는 일이다.

피아노 배우기를 포기하고 방송통신대학에 입학을 했다. 대학 나오지 못한 걸 아쉬워하니 남편도 그러라고 했다.

그런데 잠꾸러기인 나에게는 너무 힘든 일이었다.

"일류 대학 몇 군데 외에는 줄만 서면 들어가는 대학, 별것 아니다, 대학 나온 사람보다 당신이 더 낫다."

"무엇하려고 잠도 못 자고 힘들게 살려고 그러나."  맞는 말 같아 포기했다. 

얇은 귀는 아닌데 지나고 생각하니 철이 없었든 것 같다. 당시에 서울에 있는 친구 둘이는 끝까지 마치고 편입을 해서 최종학력 대졸이 되었다. 한 친구는 70이 넘어서 사이버 대학원에서 복지학을 재미있게 공부를 하고 있다.

남편은 그때나 지금이나 가족들이 편하게 사는 걸 좋아하니 편하긴 한데 발전이 없다.

 

아동심리상담사 자격증 공부하자는 앞집 아주머니, 울도 담도 없는 전원주택 단지니 문만 열면 마주 보며 사는 이웃이다. 

적성에도 맞고 문제 청소년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아 기분이 들떴다. 그런데 학력이 대졸이어야 자격이 되는 조건이다. 울컥했다.

대구 최고의 타운하우스, 대학교수, 의사, 사장... 앞뒷집 모두 의사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다. 나의 학력이 고졸이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는 것 같다.

학력이 이렇게 중요한 줄은 몰랐다.

육아에서 벗어나 최초로 시도해 보려던 작은 꿈이 무참히 짓밟혀버렸다.

 

볼링이 유행할 당시 햇볕을 피할 수 있는 실내 운동이라 취향에 맞아서 10년간 빠져있을 때다.

습득 능력은 느려도 기본에 충실하고 성실함의 덕분에 에버리지가 꽤 높았다. 화려한 파워는 없지만 이승엽이 힘 빼고 홈런을 치듯이 교과서적인 볼링을 구사했다. 지금도 몸의 균형 잡기는 중년에 지지 않는 것은 볼링의 효과라고 자부한다.

종합스포츠 센터, 20개가 넘는 볼링 동아리 중에 우리 동아리가 눈에 띄었다. 공을 최고로 잘 치는 팀은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학력이 좋았고 화려한 미인들이 많았는데 알고 보니 하나같이 살림꾼들이었다.

이화여대, 숙대, 경대 출신이 있었는데 이 정도 학력이면 대구에서는 괜찮은 편이었고 15명 중 나머지도 대졸이 많았다.

이대 출신, 얼굴도 예쁘고 공도 잘 치고 이름도 예쁜 '인애'라는 회원이 하는 말, "js 씨는 지성과 미모와 부를 다 가졌어요."

내가 부러워하는 회원에게 그런 말을 듣고, 볼링 전체 회장을 맡아서 하면서 학력에 관한 나의 불편함은 잊고 살았다.

 

실버체조 지도사 마무리 단계다.

자격증 취득을 위한 형식적인 지문 시험을 치렀다. 자격증을 취득한다고 지금 어디에 사용할 일도 없다. 배운 걸 집에서 활용하면 노후 건강에 많은 도움이 되리라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함께 하는 친구가 자격증 취득 가부를 묻는다. 우리가 배운 것만 해도 고마운 일이니 자격증 취득 비용을 부치자고 했다.

다음 주 마지막 시간 각자의 프로필을 적어오라고 한다.

다른 사람의 프로필을 예를 들어 큰 화면으로 보여주는데 화려하다. 국문학 박사인데 실버 복지에 관한 일을 하고 싶어 한다는 전직 교사다.

자부심을 가지라는 뜻에서 보여주었겠지만 잘못 생각하면 움츠려들 수도 있겠다.

친구가 "학력을 사실대로 적어야 하나?" 걱정스럽게 묻는다.

그냥 웃었다.

살면서 학력 때문에 불편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에 친구의 마음, 충분히 이해가 간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적을 것이다.

학력;00 여자 상업 고등학교 졸업

 

 

학식과 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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