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장점 살리기

눈님* 2024. 10. 19. 00:13

느림의 미학이란 말을 종종 듣게 되는데 공감이 간다. 

나에게 느림의 미학이란, 아직은 노화로 인한 느릴 수밖에 없는 노년의 삶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심리적인 문제이며 생활의 여백을 만들자는 것이다.

천천히, 여유를 즐기며 살자고 마음을 먹으니 또 거기에 익숙해진다. 보이지 않던 작은 것까지 보고 느낄 수 있으니 그대로 즐기면 된다.

뇌는 참 착하다. 가끔 방향을 잃고 헤매는 것은 자신이 문제일 뿐이다.

이런 나의 생활에 여러 가지의 일이 겹치는 바쁜 시간이 계속되고 있다.

 

건강검진을 마치고 바로 칠성시장으로 갔다. 17시간 공복에 시장기가 돌지만 시간 절약을 위한 선택이다.

칠성시장 육류도매상은 찜갈비가 필요할 때만 가는 곳이다.

3호선에서 1호선으로 갈아타야 하는 코스는 처음이지만 정신 차렸기 때문에  실수가 없었다. 

가끔 타는 전철은 빠르고 편리하지만 아차 잘못하면 엉뚱한 방향이 나와 놀란다. 

찜갈비 4kg , 큼직한 오이 4개~제법 묵직하다. 무거운 걸 들 때는 근력운동을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않고 전철을 이용했다.

그런데 탈 때부터 반대 방향으로 잘못 내려갔고, 목적지에 내려서도 제대로 나오지를 못하고 오르락내리락~~~ 허기가 져서 집중력이 떨어졌나?

1호선은 대구에서 처음으로 만들면서 오르는 곳만 에스컬레이트가 설치되어 있다.  방향감각을 잃고 헤매는 모습을 보신 도우미 할아버지가 오셔서 바로 나가는 길을 가르쳐 주셨다.

남편이 함께 가자고 하는 걸 혼자 가겠다고 고집부린 게 후회막심.

4kg, 4개? 죽을 4자가 2개가 겹쳐서 낭패를 본 게 아닌지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집에 누구든지 오면 갈비찜이 주 메뉴다.

손녀는 대구 할머니 갈비찜이 최고라고 하니 자신감이 더 솟는다.

손녀만 그러는 게 아니고 누구나 먹어본 사람은 모두 그러는데 이유는 간단하다. 말랑말랑 연해서 먹기 좋도록 조리하기 때문이다.

뼈와 살이 분리가 될 정도니 모양이야 볼품없지만 아이나 노약자에겐 특히 더 좋다.

'갈비는 뜯는 맛', '고기는 씹는 맛'이라는 말이 있지만 그건 청춘일 때고, 먹을 게 귀하던 시절 손가락으로 질긴 갈비를 잡고 시간을 들여 뜯으며 맛을 즐기는 행복함에 좋았을 수도 있겠다. 지금은 대부분 부드러운 식감을 좋아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젊을 때는 음식의 모양이나 고명에 많은 신경을 썼는 편이지만 이젠 맛과 부담 없이 먹기 좋도록 조리하는 데 중점을 둔다.

기름기를 완전히 굳혀서 제거를 하기 때문에 넉넉하게 먹어도 부담이 없다. 더 많은 양을 하고 싶어도 찜통에는 3kg이 정량이고  4kg 이 최대량이다.

함께 하지 못한 가족을 위해서 조금씩 싸 주려면 찜통을 하나 더 늘여야 할까 고민이다.

 

이번 아들 생일은 아들, 딸과 손녀가 함께 하게 되었다.

'부모님께 감사드리고, 남매 사이가 너무 좋으니 동생과 원이가 대구에 있을 때이니 혼자 내려가면 좋겠다'는 배려심 많은 며느리다.

"혹시 미역국 끓이기 싫어서 엄마에게 보내는 게 아니야!" 시누이 값을 하는 딸의 유머에 웃음 폭발이다.

이런 구성으로 모이기는 처음인데 만나는 자체만으로 웃음꽃,행복꽃이 핀다.

손녀는 태블릿으로 혼자 잘 놀고 우리는 주제 없이 자유롭게 많은 얘기를 나눴다. 내년의 가족여행에 대한 얘기가 핵심이었다.

이런저런 아들의 얘기 중에 ~~

'중장년이나 특히 노인들의 생각과 습관은 잘 바뀌지 않는다. 누구나 장단점이 있기 마련인데 타인에게서는 장점을 보고 대하면 좋고 자신도 단점을 고치려고 애를 쓰는 것보다 장점을 살리도록 하는 게 좋다'는 말이 너무 가슴에 와닿는다.

간접 경험이나 책에서 보고 배우는 것보다 자녀들을 통해서 듣는 좋은 말은 실천과 직접 연결이 된다는 걸 경험하기 때문이다.

이런 말을 들을 때면 가까이 살지 못하는 게 아쉽다. 전화로 통화하는 것과는 또 다른 대화를 할 수 있다.

 

오늘 친구들 만나려 가는 길에 나의 장점을 실천에 옮겼다.

셔틀버스에 급하게 오른 손님이 팔걸이에 얹은 할아버지의 팔을 스치고 지나갔는데 할아버지가 화가 많이 나셨다. '내 나이가 92살인데 나를 치고 갔다'라며 고함을 지르시며 계속 화를 내셨다.

주위는 조용, 무관심~

"어르신, 저분이 빨리 가다가 실수로 스쳤을 겁니다. 화를 푸세요." 활짝 웃으며 눈으로 인사를 드렸더니 조용해지셨다.

통로 옆자리니 작은 소리로 말을 해도 알아들으셨는 것 같다. 청력이 약하거나 치매가 있는 어르신들도 눈을 보면 나에게 호의적인지 적대적인지 단번에 알아차린다. 온화한 눈빛만으로도 얼마든지 좋은 대화가 가능하다 걸 많은 경험을 통해서 안다.

할아버지 왈~"현대백화점에서 내려요! "

"저도 여기서 내려요."  

할아버지 왈~"먼저 내리소."

"제가 급해서 먼저 내릴게요. 여기 내리고 타는 사람 많으니 천천히 내리시고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이럴 때 발걸음 가볍고 콧노래 흥얼거려지는 습관이 있다.

잔뜩 찌푸린 날씨지만 기분은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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