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나!
낯선 남자, 아닌 남편 얼굴이다.
추석 준비에 꼭 필요한 이부자리 준비, 구석진 곳 청소하기, 음식은 필수
땀 흘리며 베란다 물청소를 하는데 현관 벨 소리에 고개를 들었더니 웬 이런 일이.
너무 낯설다.
가발 쓴 남편이 멋쩍게 웃는데 내 얼굴은 찡그러졌다.
"나랑은 절대 함께 다닐 생각 마세욧!"
예전에도 가발을 맞추어 한두 번 착용하다가 보이지도 않더니만 또 저질렀다.
나더러 머리 파마도 꼬불하게 하지 말고 미장원에서 드라이도 하고 피부과 관리도 하라고 부추기더니,
속 보인다, 속 보여.
젊게 보이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다. 가능하면 나이 들수록 자기 관리를 하는 게 좋다고 하지만 과하면 곤란하다는 생각이다.
외모만 젊게 보인다고 젊은 게 아니다. 생각과 말과 행동, 자세 등 모든 게 자연스럽게 어울리면 좋은데 물과 기름처럼 어울리지 않으면 아니함만 못하다.
탈모예방약이나 모발재생 약품을 개발하는 사람은 노벨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머리숱이 적거나 모발이 가는 사람, 탈모로 고민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세계적으로 어마어마할 것이다.
수많은 약과 샴푸들이 탈모예방, 모발재생의 해결사처럼 선전하지만 만족도는 절대적으로 낮다.
나 역시 가장 큰 고민이 머리 굵기가 가늘고 숱도 적은데 탈모까지 진행 중인 것이다. 그러니 가발을 쓰는 사람 이해도 하고 아주 가끔 유혹에 솔깃할 때도 있다. 의외로 가발이 잘 어울리는 사람도 많이 본다.
사회생활을 하는 젊은 사람들에게는 권하고 싶을 정도로 가발 기술력도 좋아진 것 같다. 그래도 남편은 어울리지를 않을뿐더러 불편해서 몇 번 하다 말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가끔 머리에 너무 신경을 쓰는 남편에게 '편안하게 웃는 모습이 너무 좋다. 성질부리지 않고 이대로의 모습이면 멋지게 나이 들어가는 노신사 같다.' 진심이었다.
그런데 또 사고를 쳤다.
아들과 남편, 문간방에서 둘이서 속닥여서 인기척을 했더니 맙소사, 가발 착용
며느리도 흠칫! 하며 나와 눈빛 교환~
욱하는 나와 달리 "아버지, 하시고 싶으면 다 하세요."
아들과 며느리의 우군을 만나 신이 난 남편, 하이모 10% 할인권도 사용했고 한 달마다 관리를 ~~~
"그런데 아빠, 50% 정도는 흰색으로 염색을 하는 게 자연스러워 보여요." 아들의 조언에 "알았어!" 엄마의 위협에서 구해준 고마움이 묻어나는 소리다.
알긴 뭘 알아! 속으로만 부글부글~~~
나만 입틀막 당했다.
"모자를 쓸까, 두건을 할까?"
두건에 질겁을 하는 남편과 달리 "어머니 오늘은 햇빛이 없으니 두건을 하세요. 잘 어울려요." 나의 생각과 같은 며느리의 선택에 엄지 척!
"아빠는 엄마 두건 싫다 하고 엄마는 아빠가발 싫다고 하니 쌤쌤이네요." 아들이 놀린다.
우리는 안 맞아. 너무 안 맞아, 하나도 안 맞아, 정말 로또야 하는 숏폼이 생각나는 순간이다.
어제저녁을 너무 많이 먹은 탓에 수성못 근처 브런치 카페로 가기로 하고 나섰다. 나서는데 자꾸 웃음이 났다.
"엄마 왜 웃어요?"
"아빠 가발, 엄마 두건, 다른 사람들이 보면 웃기는 부부로 보이겠다."
(웃기는 한쌍의 바퀴벌레라고 말하려다가 참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