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길목이란 말이 아직은 이른 듯한 2월 중순
테라스 옆 텃밭에는 파릇파릇 실파들이 줄을 지어 싱그럽다.
담벼락 옆 홍매화는 줄기마다 봉긋봉긋한 아기 꽃망울들이 다투어 햇살 받는 모습이 앙증스럽다.
눈 속에서도 찬란하게 꽃을 피우는 그의 의지에 사람들의 예찬은 예나 지금이나 끊이지 않는다.
수천 개의 꽃망울 속에 피어난 한송이 홍매화!
꽃은 이렇게 다시 피어나는데......
얼마 전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돌아가신 어르신 생각에 잠시 눈을 감아 본다.
살아계실 때 따뜻한 물 한 모금 정성껏 드리고
눈으로 볼 수 있을 때 예쁘게 피어난 꽃구경시켜 드리자.
병풍처럼 바람을 막아주는 이웃집들, 정남향의 요양원, 따뜻한 햇살, 잠시 어르신을 모시기에 좋은 날이다.
"어르신 매화꽃이 피었어요~"
"꽃구경해요."
"뭐 한다고?"
"꽃구경요~"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시지만 무언가 특별한 일이 있는 것 같다는 건 알아들으시는 것 같다.
두꺼운 옷을 한 겹 덮어 입고 무릎담요로 완전 무장
"홍대 씨가 먼저 나가요."
"으으으으 싫다 싫다."
대형 휠체어에 온몸을 맡긴 홍대 씨는 눈을 찌푸리고 밖에 나가는 걸 극구 싫어하지만 햇볕을 많이 쬐어줘야 하는 환자다.
겨울 내내 실내에서만 계시던 어르신들이 순순히 나가시려고 하지 않는다.
귀에 대고 "테라스에 나가셔서 맛있는 것 함께 먹어요! " 소리를 높였다.
휠체어나 부축으로 모셔놓고 마지막으로 가장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을 모셨다.
99세인 어르신은 양손을 잡고 아기처럼 걸음마 걷는 걸 좋아하셔서 워커 대신 하나 둘,셋,넷 구령 맞춰 모셨다.
생각보다 따뜻한 햇살이 좋으신지 어르신들의 얼굴에 미소가 보인다.
"저기 매화꽃이 피었네요. 참 예쁘지요?"
어허허~~
꽃보다 접시에 담긴 과자에 손이 먼저 가는 본능을 보이셨지만 그럼에도 마음은 뿌듯하다.
세월의 풍파 속에 감정은 무뎌지고 그저 꽃은 꽃이고 물은 물일 뿐 다른 무슨 생각이 있을까만
오늘 밤 꿈속에서라도 사랑하는 여인의 머리에 꽃을 꽂아 주던 젊은 날의 멋진 총각으로
꽃과 내가 누가 더 예쁜가 시샘하던 처녀시절로 돌아가는 길잡이가 된 꽃구경이 되었기를 간절히 빈다.
2015.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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