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예부터 먹는 것에 진심이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의식주가 기본임을 볼 때는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식의주가 순서가 될 것 같다.
'아침 드셨습니까' 인사로 하루의 인간관계가 시작되는 시절을 기억하고 있다.
지금은 생소하지만 먹을 게 없어서 굶던 시절에는 그보다 더 큰 안부가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음식에 관한 얘기를 할 때 빠지지 않고 나오는 게 보릿고개다.
'보릿고개'는 시에서 노랫말에서, 어르신들의 대화 속에서도 많이 나오지만 野史에도 보릿고개는 빠지지 않는다.
정순왕후 김 씨가 영조(조선 21대) 눈에 든 것은 간택령에 뽑힌 규수들에게 "세상에서 제일 높은 고개가 무슨 고개인가?" 물었을 때 다른 규수들은 높은 고개 이름을 대었는데 정순왕후 김 씨는 보릿고개가 제일 높은 고개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한때는 특별한 음식이거나 맛이 있는 음식을 먹으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다.
다음에는 꼭 함께 먹어야지.
주로 가족이나 가까이 사는 언니였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마음보다는 살아오면서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사람에게 꼭 한 번은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
이번에는 언니가 식당을 운영할 때 오랫동안 주방에서 일을 하신 분들이다.
근본적으로 온화하고 부지런하시고 남의 일도 나의 일처럼 성심껏 하셔서 언니가 믿었고 늘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었다.
가끔 언니랑 연락도 하고 식사 대접도 했다고 한다.
"이번에는 내가 한번 모실까?"
언니에게 물었더니 그러면 얼마나 좋아하시겠냐고 기뻐했다.
90세 어르신은 경산에서, 82세 어르신은 아양교에서 버스와 전철을 이용해서 오셨다.
그 연세에 대중교통을 이용하실 수 있다니 용기와 기력이 대단하시다.
만나는 장소에 대해서 소통이 되지 않아서 애를 태웠지만 아무튼 만나기는 했다.
10년이 훨씬 넘었지만 단번에 얼굴을 알아볼 수 있었다.
만남에 세대 차이가 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한 살이라도 젊은 층에서 인내심을 가져야 됨을 절실히 느꼈다.
미리 와서 기다리던 언니는 좋은 자리를 마련해 놓았다.
어르신들께는 조금 낯설지만 새로운 경험을 해드리는 게 좋겠다며 로봇이 서빙을 하는 레스토랑을 택했다.
특별한 일이 없는 일상의 어르신께 작은 추억이 될 수가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이모가 우리를 잊지 않고 이런 자리를 마련했다니 믿을 수가 없다며 좋아하셨다.
음식이 마음에 들지 않을까 염려했는데 지금껏 먹어본 돈가스 중에 최고의 맛이라며 좋아하셨다. 왕년에 일류 주방장이셨던 전문가가 맛있다면 진짜 맛있는 게 맞다고 장단을 맞추며 모두 웃었다.
90세 어르신은 小食이라 반은 저녁으로 먹었으면 좋겠다고 하신다.
"연세가 많은 어르신께 로봇이 서빙 하는 걸 보여드리려고 왔는데 小食 하시는 분이라 남은 음식 어떻게 포장 좀 안될까요? "
손님으로서 당연한 일이지만 용기가 필요했다.
사장님께 부탁드렸더니 플라스틱 그릇을 바로 가져다주신다.
언니가 꼼꼼하게 싸서 드리니 가방에 소중하게 넣으신다.
우리 어머니들의 모습이다.
경산 어르신은 수제 비누를 가지고 오셨고 아양교 어르신은 마차와 율무차를 가지고 오셨다.
몸만 다녀도 힘드실 텐데 무거운 걸 가지고 오셨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우리 어머니들은 그러셨다.
자식들이 무겁게 들고 다닌다고 짜증을 부려도 늘 그러셨다.
"옛날 어르신들은 가난하고 힘들게 살아도 체면이 있었다, 지금은 모두 편안하게 잘 사시니 받아도 괜찮다."는 언니의 귀띔이다.
"우리 진숙이 오늘 너무 잘했어요." 언니가 너무 좋아한다.
"언니가 좋으면 나도 좋아."
하루도 빠짐없이 쓰는 언니의 일기장에는 옛 추억이 소환될 것이고 오늘의 얘기가 기록될 것이다.
좋은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