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두 번째는 쉽다.
서울역에서 친구들과 쉽게 만날 수가 있었다.
처음 남편 혼자 남겨두고 혼자 나들이 시도를 했을 때가 어려웠지 이제는 마음만 먹으니 단숨에 결정을 할 수 있다.
옥수는 현직에 있으면서도 시간을 내었고, 만났을 때 시간 낭비를 막기 위해서 미리 식당을 답사해 두었다.
옥순이는 신장 투석 날짜를 피하고,
종숙이는 불편한 남편 주간보호 오후 반에 보내고 조금 늦게 왔다.
향숙이는 도움을 주어야 할 남편과 딸이 불편하지 않도록 식사 준비를 하고 나왔다고 한다.
사는 환경은 제각각 다르지만 다들 성실하고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좋다.
모두 꾸밈없는 자신의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옛 친구 들이다.
만나면 주로 지금의 얘기를 많이 하지만 옛이야기도 꽤 많이 나온다.
나와의 추억담이 많다.
옥순이와 향숙이는 대구에서 결혼 생활을 하다가 서울로 이사를 간 경우다.
옥수, 종숙이는 서울에 취직하고 자취생활을 한 친구이고 주말에는 우리 집에 자주 왔는 얘기를 들려준다.
내가 친구들 중에서 제일 일찍 결혼을 했고 결혼 후 1년이 조금 지난 후 남편의 서울 발령으로 거기서 살았는 탓이다.
나는 기억도 나지 않는데 그들은 생생하다고 한다.
지금은 연락이 되지 않는 임순이라는 친구와 셋이서 번갈아 가면서 왔다고 한다.
한 번은 크리스마스이브인데 남편을 밖으로 내어보내고 우리끼리 밤새도록 놀았다고 한다.
휴일이면 객지니 갈 곳이 없었고, 가족끼리 오붓하게 지낼 주말에 주로 갔는데도 전혀 눈치를 주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 생각하니 모두 너무 철이 없었는데 너네 남편이 너무 좋은 사람이라고 침이 마른다.
그랬던가, 나는 별다른 생각을 못했는데 아무튼 좋은 추억이 많아서 다행이다.
그 시절 함께 했던 모두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든다.
2
딸의 새 아파트를 보니 지난날 생각에 잠시 울컥해진다.
꽃길과 사랑 속에서만 자랐던 딸의 결혼생활은 부모 눈에는 넉넉하지 못했다.
"하루 종일 도시락을 싸서 다녀도 그렇게 어려운 집 찾기 힘들 것이다. "라는 남편의 말이다.
그래도 시부모님 좋으시고 순수예술에 몸담고 있는 사위가 멋있었다.
사람이 최우선이라는 엄마의 가르침에 어긋나지 않았고 행복의 기준도 다르니 스스로 선택한 딸의 길이었다.
집값이 하락할 것이라며 몇 번의 집 마련 기회를 미뤘는데 예상은 빗나갔고 폭등 직전에 가까스로 막차에 당첨이 되었다.
마지막 걱정거리가 해결되었다.
손녀는 피로가 겹쳤는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전체 불을 껐다.
한강이 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서 셋이서 야경을 즐기며 딸 부부의 생애 첫 내 집 마련 축배를 들었다.
천정에 매단 줄의 조명등에 명암을 조절해 가며 분위기를 살렸다.
대형화면에 영상을 띄우고 듣고 싶은 노래를 찾았다.
최백호의 '부산에 가면'
사이먼과 가펑클의 노래 모음~~ perhaps love를 제일 좋아한다.
"나가사키에 오늘도 비가 내린다."
오랜만에 듣고 싶었던 음악을, 좋은 날, 좋은 분위기에서 좋은 사람과 공감하며 들을 수 있는 밤이었다.
"장모님, 너무 행복합니다."
사위는 그동안의 무수한 사연들이 담겨있는 자기 고백일 것이다.
3
큰댁이 있는 과천에 모였다.
형님의 건강이 좋지 않고 코로나로 조카 결혼식도 참석 못하셨고 통화만 했었지 왕래가 거의 없었다.
아주버님과 형님은 조카며느리를 많이 보고 싶어 하셨고 형님은 죽은 뒤 상가에서 사촌들 얼굴도 서로 모르면 어쩌냐고 걱정이셨다.
조카며느리가 한겨레에 주기적으로 글을 올리니 우리보다 더 열성적으로 체크하시며 스크랩을 하시는 것 같다.
아주버님은 한겨레 신문 설립 때 기부를 하셨고 경영이 어려울 때는 수시로 꽤 많은 돈을 기부하시는 찐 한겨레맨이다.
모두 모이면 인원이 너무 많아 큰집 조카들 부부와 이웃에 사는 시동생 부부로 한정했다.
이번에 명문대 입학한 형님의 둘째 손자 '한결'이와 우리 손녀 '원'이는 양념으로 참석했다.
남편은 전날 서울 친구들과 대전과 세종시를 구경하고 늦게 도착해서 우리와 함께 했고
아들은 전날 대전으로 내려가서 아내와 함께 왔다.
큰 조카는 미국 출장에 차질이 생겨서 빠지게 되어 서운했다. 우리 집안에서 제일 자랑스러운 조카다.
결혼식 외에는 이렇게 보기가 쉽지 않은데 만나니 너무 좋아서 이손 저손을 잡고 자꾸만 웃었다.
조금 소원했던 아래 동서도 보는 순간, 다시 친동생처럼 잘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창 시절 후배였고, 중매를 했다.
서운했던 기억은 잊고 좋았던 일만 기억하니 더없이 소중한 인연이다.
모두 장성해서 사회의 중추 역할을 하는 걸 보니 믿음직스럽다.
코흘리개 조카들이 자라서 이제는 그들에게 섬김을 받으니 세대가 바뀜을 절감하게 된다.
언젠가 기억이 흐려져도 잊지 않도록 조카 이름을 적어둔다.
(영아, 창석, 경석----- 성아, 동석, 대일----- 훈석, 나리----- 경미, 태석----- 현석)
4
모닝커피 대신 레모네이드
손녀가 아빠의 도움을 받아 만들었다.
이걸 만들기 위해서 전날 할아버지와 사이다를 사러가기도 하고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
좋아하는 외삼촌 주스에 레몬액 다량 함유로 짓궂은 장난~ 삼촌도 과한 표정으로 조카 사랑 눈높이에 흠뻑
며칠간의 바쁜 시간이었지만 참 잘 보냈다는 생각이다.
친구들에게 다음에는 너희들 만나는 목적으로 오겠다고 약속했다.
아래 동서에 마음을 열게 된 것도 가뿐하다.
남편이 내려올 차를 미리 예약을 해두었다. 항상 아이들이 끊어서 보내주는데 이번에는 예측을 할 수가 없고, 나이가 들어도 자꾸 예매하는 연습을 해야 된다는 남편의 좋은 생각에 칭찬 아끼지 않았다.
시간 차이를 두고 3가지를 예매했는데 가장 빠른 차를 타기로 했다.
모두 바쁘고 피로가 쌓였는데 부모가 해줄 수 있는 일이다.
아들 부부는 먼저 보내고 열차시간이 되도록 손녀랑 한강 유원지에서 시간을 보냈다.
***손녀랑 비밀 약속***
기차가 떠나기 직전 할머니만 열차에서 내린다.
잠시의 오차가 생기면 할아버지도 내릴 수 있으니 재빠르게~~
할머니는 하루 더 자고 내일 내려가시라고..
새콤, 달콤, 앙큼한 개구쟁이 손녀와 약속을 깨버리고 할아버지를 따라와 버렸다는 노부부의 사랑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