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니 부자
1남 6녀 중에 여섯째 딸이다.
언니 하나는 자라지 못하였고 제일 위 오빠와 큰 언니는 돌아가셨지만 올케언니가 살아계시니 아직 4명의 언니가 있다.
모두 컴퓨터를 다루지 못하고 휴대폰으로 유튜브를 보기도 하고 아예 관심도 없는 노인이다.
언니들은 아버지 살아계실 때 역사 얘기를 재미있게 들은 기억을 좋은 추억으로 간직하며 늘 아버지를 그리워한다.
그런 언니들을 위해 가끔 책이나 인터넷에서 재미난 얘기가 있으면 저장해 둔다. 화잿거리가 부족할 때나 사는 게 재미없어할 때 조금 더 양념을 쳐서 얘기해 주면 너무 좋아한다.
그중에서 갈처사와 숙종대왕에 관한 얘기는 내가 좋아하는 편이다.
청와대는 명당이지만 관저가 음습해서 좋지 않다는 설이 있고 그런 중에 국민과 소통한다며 대통령실을 용산으로 이전을 하고 도사가 기사에 수시로 나타나는 등 어수선할 때 과연 풍수지리설이나 명당을 믿어야 하는지 생각을 하게 된다.
오늘은 명당에 얽힌 얘기를 재미로 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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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숙종대왕이 수원성 고개 아래쪽 냇가(지금 수원천 부근)를 지날 무렵 허름한 시골 총각이 관 하나를 옆에 놔두고 슬피 울면서 땅을 파고 있는 게 아닌가.
상을 당해 묘를 쓰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파는 족족 물이 스며 나오는 냇가에 묏자리를 파고 있는 더벅머리 총각의 처량한 모습에 '아무리 가난하고 땅이 없어도 유분수지 어찌 송장을 물속에 넣으려고 하는지 희한도 하다' 그래도 무슨 사연이 있겠지 하며 다가갔다.
"여보게 총각, 여기 관은 누구 것인고?"
"제 어머님 시신입니다."
"여기는 왜 파고 있는고?" (짐짓 알면서 딴청으로 묻는다)
"묘를 쓰려고 합니다." (짐작은 했지만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여보게, 이렇게 물이 솟아나고 있는데 어찌 어머니 묘를 쓰려고 하는가?"
"저도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오늘 아침에 어머니께서 갑자기 돌아가셨는데 갈처사란 노인이 찾아와 저더러 불쌍타 하면서 이리로 데려와 이 자리에 묘를 꼭 쓰라고 일러주었습니다. 그분은 유명한 지관인데 저기 저 언덕 위 오막살이에서 혼자 살고 있습니다."
총각은 옷소매로 연신 눈물을 훔치며 자신의 곤혹스러운 처지를 처음 보는 양반 나리에게 하소연하듯 아뢰었다.
숙종이 가만히 듣자 하니 갈처사라는 지관이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 궁리 끝에 가지고 다니던 지필묵을 꺼내어 몇 자 적었다.
"여기 일은 내가 보고 있을 터이니 이 서찰을 수원부로 가지고 가게. 수문장들이 성문을 가로막거든 이 서찰을 보여주게."
총각은 또 한 번 황당했다.
아침에는 어머님이 돌아가셨지. 유명한 지관이 냇가에 묘를 쓰라고 했지.
이번에는 웬 선비가 갑자기 나타나 수원부에 서찰을 전하라 하지.
도무지 어느 장단에 발을 맞추어야 할지 모를 지경이었다. 그러나 급한 발걸음으로 수원부로 가서 수원부사를 만나게 되었다.
서찰에 적힌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어명!
수원부사는 이 사람에게 당장 쌀 삼백 가마를 하사하고 좋은 터를 정해서 묘를 쓸 수 있도록 급히 조치하라.
수원부가 갑자기 발칵 뒤집혔다.
허름한 시골 총각에게 유명한 지관이 동행되지 않나, 창고의 쌀을 바리바리 수레에 싣지를 않나.
"아! 상감마마, 그분이 상감마마였다니!"
총각은 하늘이 노래졌다.
다리가 사시나무 떨리듯 떨렸다.
냇가에서 자기 어머니 시신을 지키고 서 있을 임금을 생각하니 황송하옵기가 말할 수 없었다. 기쁨보다는 두려움과 놀라움에 몸 둘 바를 몰랐다.
한편 숙종은
총각이 수원부로 떠난 뒤 갈처사를 단단히 혼을 내주려고 그가 산다는 가파른 산마루를 향해 올라갔다.
단단히 벼르고 올라간 산마루에 찌그러져가는 단칸 초막은 그야말로 볼품이 없었다.
"이리 오너라."
........
"이리 오너라"
.......
한참 뒤 안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게 뉘시오?"
방문을 열며 시큰둥하게 손님을 맞는 주인은 영락없는 꼬질꼬질한 촌 노인네 행색이다.
콧구멍만 한 초라한 방이라 들어갈 자리도 없다.
숙종은 그대로 문밖에서 묻는다.
"나는 한양 사는 선비인데 그대가 갈처사 맞소?"
"그렇소만 무슨 연유로 예까지 와서 나를 찾소?"
"오늘 아침 저 아래 상을 당한 총각더러 냇가에 묘를 쓰라했소?"
"그렇소."
"듣자니 당신이 묏자리를 좀 본다는데 물이 펑펑 솟아나는 냇가에 묘를 쓰라니 가당치나 한 일이요?"
"골탕을 먹이는 것도 유분수지 어찌 그럴 수가 있단 말이요?"
숙종은 참았던 감정에 어느새 격해져 목소리가 커졌다. 갈 씨 또한 촌노이지만 낯선 손님이 찾아와 다짜고짜 목소리를 높이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선비란 양반이 개 코도 모르면서 참견이야. 당신이 그 땅이 얼마나 좋은 명당 터 인 줄 알기나 해?"
버럭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숙종은 기가 막혔다.
(속으로 이놈이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어디 잠시 두고 보자, 감정을 억누르며)
"저기가 어떻게 명당이란 말이요?"
"모르면 가만히나 있지, 이 양반아 저기는 시체가 들어가기도 전에 쌀 삼백 가마를 받고 명당으로 들어가는 땅이야."
"시체가 들어가기도 전에 발복을 받는 자리인데 물이 있으면 어떻고 불이 있으면 어때? 개 코도 모르면 잠자코 나 있으시오."
숙종의 얼굴은 그만 새파랗게 질려버렸다.
갈처사 말대로 시체가 들어가기도 전에 총각은 쌀 3백 가마를 받았으며 명당으로 옮겨 장사를 지낼 상황이 아닌가!
숙종은 갈처사의 대갈일성에 얼마나 놀랬던지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겸손해진다.
"영감님이 그렇게 잘 알면 저 아래 고래 등 같은 집에서 떵떵거리며 살지 왜 이런 산마루 오두막에서 산단 말이오?"
"이 양반이 아무것도 모르면 가만있을 것이지 귀찮게 떠들기만 하네."
"아니 무슨 말씀인지?"
숙종은 이제 주눅이 들어있었다.
"저 아래 것들은 남 속이고 도둑질이나 해 가지고 고래등 같은 기와집 가져봐야 아무 송용이 없어. 그래도 여기는 바로 임금이 찾아올 자리여. 지금 비록 초라하지만 나라님이 찾아올 명당이란 말일세."
숙종은 그만 정신을 잃을 뻔했다. 이런 신통한 사람을 일찍이 만나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왕이 언제 찾아옵니까?"
"거 꽤나 귀찮게 물어 오시네. 잠시 기다려 보오. 내가 재작년에 이 집을 지을 때에 날 받아놓은 것이 있는데,
가만...... 어디에 있더라?" 하면서 방 귀퉁이 보자기를 풀어서 종이 한 장을 꺼내어 먼지를 털면서 들여다보더니~~
그만 대경실색을 하고 만다.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가 큰 절을 올리는 것이었다. 종이에 적힌 시간이 바로 지금 이 시간이었다.
임금을 알아본 것이다.
"여보게 갈처사, 괜찮소이다. 대신 누구에게도 결코 말하지 마시오. 그리고 내가 죽은 뒤에 묻힐 자리 하나 잡아주지 않겠소?"
"대왕님의 덕이 높으신데 제가 신하로서 자리 잡아 드리는 것은 무한한 영광이옵니다. 어느 분의 하명이신데 거역하겠사옵니까?"
그리하여 갈처사가 잡아준 숙종의 왕릉이 지금 서울 서북쪽의 서오릉에 자리한 '영릉'이다.
그 후 숙종대왕은 갈처사에게 3천 냥을 하사하였으나 노자로 30냥만 받아 들고 홀연히 어디론가 떠나갔다는 이야기입니다.
신묘하다 갈처사여
냇가에 묘를 쓰고 산마루 언덕에 초막을 지으니
음택 명당이 냇가에 있고
양택 명당은 산마루에도 있구나
임금을 호통치면서도 죄가 되지 않으니
풍수의 조화는 국법도 넘어가네
볼품없는 초라한 몸이라도
가난한 이웃에게 적선하고
나라님께 충성하노니
그 이름 역사에 길이길이 남으리라.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