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할 일을 남기지 말자.
사람이 한평생 살아가면서 후회하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노력해서 안 될 일은 없다고 하지만 노력한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죽으라고 노력하다 보면 조금은 나아질 것이라고 믿는다.
난 혼자 놀기를 너무 좋아하고 잘한다.
무조건 내 마음 속속들이 알아주고 이해해 주고 공감해 주는 사람 만나기 쉽지 않고 설사 만났더라도 집으로 돌아오면 시간이 아까웠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함께 어우러져서 살아야 된다는 말을 하지만 어떤 핑계라도 만들어 거절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 나의 상황이 예전과 너무 달라진 게 원인이긴 하다.
혼자 노는 걸 좋아한다는 걸 바꾸어 생각하면 외롭다는 것일 수도 있다.
다른 사람들도 나를 만나면 심심하고 재미없어서 시간이 아까왔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마음을 열고 가까운 사람 만나는 일부터 시작해 보자.
셋째 언니가 사는 곳은 우리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다. 이곳으로 이사를 오도록 내가 앞장섰다.
나이가 들어서 자매들이 가까이 살면서 서로 의지하는 모습을 보면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사 온 처음에는 모든 게 필요해서 함께 쇼핑을 하고 신협에서 1달에 한 번씩 가는 테마 여행도 즐겁게 다녔다.
언니는 복지관에서 컴퓨터, 장고, 스포츠 댄스, 노래 부르기 반에 등록을 해서 노후 생활을 슬기롭게 보냈다.
처음 걱정과는 달리 학구열에 불타서 모범을 보이니 컴퓨터 반에서는 회장을 맡았고 역할도 훌륭히 해 내는 열정을 보였다.
그런데 코로나 19가 대구에 창궐하면서 모든 외부 생활을 접게 되었다.
가끔 맛있는 음식을 해서 함께 먹는 일은 있었지만 왕래 없이 매일 전화로 수다만 떨었다.
결혼을 하기 전 까지는 자매들이 희로애락을 함께 했지만 결혼을 하고 나니 완전히 다른 삶을 사는 게 항상 아쉬웠다.
몇 달만 있으면 언니는 이사를 간다. 가까이 있어도 자주 보지를 못하는데 차를 타고 가야 되는 곳이라면 더 어려울 것 같다.
언니와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언니는 73세인데도 다리를 180도 찢을 수 있을 만큼 몸이 유연하다. 수십 년간 꾸준히 운동을 한 결과다.
매일 산으로 방천으로 걸으며 운동 기구에서 규칙적인 운동을 하면서 건강에 신경을 쓴다.
동생이 운동을 싫어하고 집에만 있는 걸 걱정했는데 함께 하자고 하니 너무 좋아했다.
상동교 아래의 돌다리를 건너면서 작은 물고기를 찾아내고 원앙을 닮은 청둥오리와 왜가리, 굵은 팔뚝만 한 물고기들의 떼를 보면 어머나! 탄성이 저절로 나온다.
개천가 자갈밭에는 수많은 돌들이 반짝인다. 돌들을 관찰하며 신비하게 생긴 돌에는 각각의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고 다음에 왔을 때에도 그 자리에 있어주기를 바랐다.
개천 물이 줄어든 곳곳에는 크고 널찍한 바위들이 수려한 자태를 드러내고 작은 삼각지에는 어린 풀들이 나풀거린다.
지면이 낮은 곳곳에는 자갈이 떠내려 가는 걸 방지하기도 하고 가뭄 때는 물을 가두어 고기가 살 수 있도록 사각형의 큰 돌을 넓게 펴서 군데군데 낮은 둑을 만들어 놓았다. 돌 위에 앉아서 노래를 부르는데 언니는 어린아이로 돌아간 듯한 표정과 목소리를 내었다.
하얀 왜가리 한 마리가 우아한 날갯짓을 하는 모습이 너무 아름답다.
물 위에 떠있는 청둥오리의 두 발이 잔망스럽게 움직이는 건 너무 웃겨.
늦가을 햇살 받으며 여유롭게 걷는데 멀리 가창이 보인다.
수성못으로 갈려면 왼쪽으로 계단을 올라가야 하고 가창으로 갈려면 직진이다.
수성못은 대구의 자랑이다. 유원지가 별로 없던 시절 동촌 유원지, 화원 유원지, 수성못 유원지는 우열을 가리지 못할 정도로 시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공통점은 물이 있다는 것이다. 물이 귀한 대구라서 그랬나?
동촌 유원지는 금호강 지류고 화원 유원지는 낙동강 지류인데 수성못은 인공 호수다.
호수 둑을 산책하기도 하고 놀이기구를 타기도 하지만 가장 하고 싶은 것은 오리배를 타는 것이다. 가족 단위로 타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젊은 남녀들의 데이트 코스가 되기도 한다.
고3 여름 방학 때 수성못 놀이터에서 빠르게 돌아가는 회전 그네를 탔다. 내리지 않고 계속 타면 돈을 내지 않아도 된다고 해서 여러 번 타고 내렸더니 너무 어지러워 토하며 기절 아닌 기절을 한 웃픈 추억이 있는 곳이다.
지금도 놀이기구 타는 걸 좋아한다.
언니는 이곳에서 선을 본 추억이 있는 곳이다.
가창이 저 멀리 보이니 갑자기 옛날 찐빵과 왕만두 생각으로 입에 침이 고인다.
가창하면 찐빵이다.
원조, 진짜 원조 외에도 많은 상호가 붙은 찐빵 집들이 여러 곳이 있다. 그런데도 유난히 붐비는 집이 있다. 차가 길을 막아 교통경찰이 정리를 할 정도로 줄을 서서 기다려야 살 수 있는 집. 오며 가며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집.
언니야, 오늘 찐빵과 왕만두 먹자, 직진이다.
가창교를 지나 소담스럽게 번화한 작은 면 마을을 지나 우측으로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가창댐의 둑이 높이 보인다. 수성구와 남구의 식수를 제공한다. 그러니 이 골짜기는 청정지역이다.
청정 미나리 밭이 있고 수백 년 자란 왕버들 숲의 개울가 식당에서는 백숙을 팔고 나무 평상에서 청양고추를 넣은 미나리 전에 막걸리를 먹으면 세상 걱정이 없어지는 것 같다.
강원도 집이란 식당에는 불닭에 매끈매끈 쫀득쫀득 100% 감자 수제비의 맛은 먹어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표현할 길이 없다. 사장님이 강원도 사람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지붕에서 물줄기가 내리는 인테리어를 한 '국시 한 그릇' 이란 집의 녹두전, 도토리 묵무침에 동동주는 다시 또 찾게 하는 중독성이 있다. 좋아하는 추어탕 집도 있고......
사람들은 자연을 해친다, 식수원을 오염시킨다고 민원을 넣지만 단속이 잘 되지를 않고 걱정을 하면서도 즐긴다.
좁고 구불구불한 길을 달리는 한쪽으로는 산이 차에 닿을 것 같고 한쪽으로는 작은 돌과 바위를 감고 흐르는 자연 계곡이 있는 아기자기한 예쁜 드라이브 코스다. 팔공산 코스가 남성적이라면 이곳은 여성스러운 곳이라 생각된다.
재를 넘어 10여분 달리면 각북이란 곳이 나온다. 사방이 논인데 개천을 끼고 개인이 소유한 야외 식물원이 있다. 각양각색의 희귀 식물과 분재들이 키보다 더 큰 자연석들과 잘 어우러져 있다. 팔각형의 정자 아래에는 작은 연못이 있고 수초들 사이로 비단잉어들의 유영(遊泳)이 아름답다. 누구나 무료로 커피를 먹을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는데 눈 호강하고 그냥 가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금은 한옥으로 집을 지어 전통차를 파는데 원하는 사람에게는 커피도 판다.)
가창교에서 직진을 하면 청도로 가는 옛길이 있다. 이쪽은 집들이 많고 사람들이 불쑥불쑥 예고 없이 나타나 드라이브 코스로는 별로지만 역시 정겹다.
한 때는 이곳에 댐을 만들기 위한 수몰 예정 지역으로 지정이 되어 주민과 환경단체들의 시위가 끊이지 않았다.
거주 주민들도 생활터전을 잃는 아픔을 겪겠지만 아름다운 자연이 수몰되는 것은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 것이라 나도 극구 반대했다. 다행히 수몰되지 않고 보존되고 있다.
걸음걸음 내내 가창의 곳곳을 떠올리며 진짜 원조 찐빵집을 찾았다.
찐빵과 왕만두 3인분을 샀다.
해가 짧아 서둘러 오면서 방천 변두리 잔디 위의 의자에서 따끈한 찐빵과 왕만두를 먹었다.
여기저기 가로등이 켜지고 시커멓게 변해지는 앞산은 음침해지지만 상동교와 높은 아파트 단지, 낮은 주택들의 불빛이 조화를 이루고 도깨비불처럼 움직이는 차들의 불빛으로 입체적인 아름다움을 발산한다.
부담 없이 즐기기로 한 산책인데 시작부터 너무 많이 걸었는지 발바닥이 조금 아프다.
내일은 수성못으로 가자고 약속하고 남편 몫의 만두가 덜 식도록 걸음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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