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은 뉴스를 보기가 많이 불편하다.
정치권 뉴스를 보면 그냥 울화가 터지지만 미국의 대통령 선거 전후를 보면서 위안을 받는다.
코로나 19의 하루 변화에 안도와 걱정을 하다가도 세계의 현실을 보면서 '우리나라 좋은 나라' 어린이 때 즐겨 부르던 동요의 노랫말이 생각난다.
무심코 연예계 뉴스를 보니 '온라인이 어떻게 공연을 대체'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공연은 사위가 관계되는 분야기 때문이다.
코로나 19로 수많은 업종이 심각한 타격을 입지만 공연업계도 비켜갈 수 없었다. 무관중 소규모로 가끔 공연이 있기도 하고 규모가 큰 업체에서는 또 다른 시스템을 개발하여 랜선으로 공연을 하지만 현장감이 없다는 걸 안다.
온라인 공연은 "회를 통조림에 넣어서 파는 것과 같다."며 대체 불가를 외치는 송승환 씨
클릭을 했더니 송승환이 시력의 일부를 제외하고 거의 잃었다는 소식이 함께 들어있었다.
머리가 띵 하다.
내 기억 속의 그는 부정적인 남자였다.
1990년대 난타를 제작하여 미국의 브로드웨이의 공연을 비롯해서 세계에 알린 게 그였다.
2015년 평창 동계올림픽 개폐회식에 총감독을 맡아서 멋지게 올림픽을 빛내었던 그였고 난생처음 밤하늘에 반짝이는 드론 쇼는 너무 감동적이었다.
아역으로 영화계에 발을 들여서 성장하는 그를 보았다.
고교 얄개시리즈로 익숙한 그는 귀여웠다.
그런데 성인이 되어 홈드라마로 돌아와 출연한 '창 밖에는 태양이 빛났다'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1992년 작)
가수 권인하, 청춘스타 이미연, 송승환이 나온 불륜 드라마였다.
정확한 기억은 없는데 권인하가 젊은 여자(이미연)에 빠져서 부인과 이혼을 하고 시력을 잃은 재력가 중년으로 나온다.
그런 남편을 두고 이미연은 젊은 송승환과 연인관계를 맺는데 여기까지는 인과응보로 여길 수도 있다.
그런데 둘이는 눈먼 남편의 등 뒤에서 손가락 질을 하며 시시덕거리며 비웃던 모습이 너무 사악하게 느껴졌다.
어떤 이는 조강지처 버리고 젊은 여자랑 재혼해서 사는 게 미웠는데 속이 시원하다고 느꼈을 수도 있었을 테지만 나는 그랬다.
아마도 김현식 씨의 '내 사랑 내 곁에' 노래를 좋아했고 즐겨 불렀는데 그 곡을 애절하게 절규하던 권인하 씨의 모습에 흠뻑 빠져있었고 학창 시절 때 감명 깊게 읽었던 '제인 에어'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젊고 가련하지만 헌신적인 여주인공(제인 에어)과 실명에 부호인 괴팍스러운 중년 남자(로체스트)와의 아프면서 따뜻한 사랑 이야기의 남자 주인공과 권인하 씨가 겹쳤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40살이었던 나에게는 앞이 안 보이는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배우는 맡은 역할을 잘했을 뿐인데 그때 그 장면을 내내 잊을 수 없었다.
1957년 생인 송승환 씨
모든 사물이 흐릿하여 사계절의 아름다움을 볼 수도 없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도 잘 볼 수 없지만 절망에서 벗어나 다시 무대에 선다고 한다. 행복한 마음으로.
정동극장
더 드레서
2020 11 28~2021 01 03
눈이 나빠진 후 많이 겸손해지고 고마운 게 많아졌다고 한다.
잘 보이지 않으니 남의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하고 들을 수 있는 청력이 있으니 고맙고 감사하게 되고 그 감사는 또 다른 축복으로 느끼는 마음이 생긴다는 것이다.
시력 감소는 모든 인간이 겪어야 할 노화의 한 부분이기도 하다. 시력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다 보면 예기치 못한 일들로
어려움과 절망으로 인생을 망가뜨리는 일이 많은데 이럴 때는 송승환 씨가 힘을 얻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인생 명언을 떠올리면 좋을 것 같다.
__인생의 한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린다.__
송승환 씨!
당신을 응원합니다.
한국 최초 비언어극 '난타' 제작자 송승환 뮤지컬협회 이사장 2012.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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