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우리 집엔 자가용이 없다

눈님* 2020. 11. 4. 01:44

넘쳐난다.

어디를 가나 자동차가 넘쳐난다.

출퇴근 시간이나 연휴가 겹치면 고속도로나 정체 구간은 아예 넓은 주차장이 되어버린다. 어린이나 아주 연로하신 분이나 지체장애가 심한 분을 제외하면 일상에서 자가용은 몸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우리 집엔 자가용이 없다.

 

아이들이 어릴 때 놀이동산에서 장난감 차를 탈 때면 내가 더 신이 났다.

동전을 한 움큼 바꾸어서 없어질 때까지 타고 놀았다. 처음엔 아이들 차와 부딪치기도 했지만 금방 익숙해지니 더 신이 났고 지치 지를 않는다. 남편은 그냥 서서 지켜보는 게 지루한지 묘한 눈길을 주면 하는 수없이 차에서 내려왔다.  

덕분에 자동차 운전면허 시험에서는 실기는 물론 필기까지 퍼펙트에 가깝게 실력 발휘를 했다.

처음 탔는 자동차는 르망이었다.

새하얀 색상에 시트 카바도 옅은 미색으로 바꾸니 너무 깨끗하고 예쁜 자태가 아침 이슬처럼 눈이 부셨다.

너무 깨끗해서 신발을 신고 타기가 부담스러웠다.

'당신도 초보였지요' 다소 건방져 보이는 문구 같지만 미숙해도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다는 숨은 진심이 들어있다. 소형차에 어울리는 초보 딱지를 부치고 안전벨트는 기본이고 교본대로 운전을 했다. 등에 땀이 날 정도로 긴장해서 연습을 하고 집에 도착해서 주차를 하고 나면 안도의 한숨이 소리가 날 정도였지만 그래도 행복했다.

아이들과 함께 나들이를 했을 때의 일이다. 신호등이 주황색으로 바뀌자 멈추었다. 조금 있으니 뒤에 따라오던 버스기사분이 가까이 오시더니 무슨 말인지 고함을 지르시길래 무서워서 창문을 열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뒤에 생각하니 지나갈 줄 알았는데 브레이크를 더불로 밟지 않고 급하게 서버리니 놀라셨나 보다.

아이들도 아저씨가 무서웠는지 차라리 차가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두 번째  에스페로

바람처럼 빠르게 지나가는 게 너무 멋졌다.

카키색도 마음에 들었고 출발도 빠르고 오르막도 가뿐히 힘이 좋았다는 생각이다.

  세 번째는 듀크

이름도 가물가물하다.

차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는 터라 자동차 판매원이 집으로 오셔서 이것저것 상담을 해주셨다.

생각해서 결정하겠다고 했더니 어린 아들이 "그렇게 많이 물어놓고 사지 않으면 어떡해요." 그 말에 모두 웃음이 터지고 바로 계약해 버렸다.  신중하지 못한 결정이었고 차체만 컸지 별로 남는 기억이 없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단종이 되었다.

  네 번째 엔터프라이즈

대백플라자 전시관에서 시승식을 해보고 너무 놀랐다.

지금껏 타던 차와는 크기도 다르지만 놀랄만한 기능에 오 마이 갓!

운전석 문을 열면 운전대는 위로 올라가고 의자는 뒤로 물러나 운전자의 탑승을 최대한 편하게  설계되었고 앉으면 최적의 위치고 되돌아온다. 기억 장치까지 장착되어 있었다.

창 유리는 문틀 아래까지 통째로 완전히 내릴 수 있어 타고 내릴 때 편하다.

차체가 낮아 승차감 또한 최고다.

내비게이션이 없던 시절 TV 시설이 되어 기다릴 때 지루함 덜어줌.

전 좌석이 열선이 들어가고 앞 좌석은 등받이에도 열선이 있어서 추운 겨울에 바로 타도 따뜻했다. 

지금이야 더 많은 첨단의 기능들이 장착되어 있겠지만 당시에는 정말 신기했다.

앨란이란 스포츠카도 함께 있었는데 남편은 빨간 스포츠카가 더 예쁘고 잘 어울릴 것 같다고 했다.

여기는 대한민국,

외국에는 나이 많은 노인들도 빨간 스포츠카를 타고 다니는데 우리나라 정서는 괜히 이상한 눈으로 보기 때문에 포기.

이 차를 타고부터는 좀 더 언행에 조심을 하고 배려심을 가지려 노력했다.

더 배운자 가진 자 누리는 자는 그에 맞는 인격을 갖추어야 한다는 평소의 생각이다.

가정에 어려운 일이 생겨서 이 차를 처분할 때 많이 울었다.

종일 팔공산 곳곳을 돌아다니고 다음날 이별했다.

검소한 편이지만 차를 너무 좋아하고 드라이브를 즐기는 편이라 차만큼은 사치를 했다.

  다섯 번째   EF소나타

엄마가 얼마나 차를 좋아하는데 다른 건 몰라도 차가 없다는 건 말이 안 된다며 아이들은 걱정을 했다.

매일 다니던 운동도 그만두고 활동 범위도 좁아지고 인적 교류도 줄어드니 별로 필요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몇 달을 차 없이 지내보니 너무 허전하고 초라하게 느껴졌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도 정류장에서 차를 기다릴 때도 모두가 나만 쳐다보는 것 같았다.

중고차 시장에서 하얀 소나타를 샀다. 비닐도 벗기지 않은 새 차 같은 중고였다.

소나타~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여섯 번째   그랜저

소나타가 나에게, 형편에 딱 맞아 아꼈는데 남편의 지인이 사용하던 그랜저로 바꿀 기회가 있어서 바꾸게 되었다.

그러나 아파트 셔틀버스가 대구 시내 중요한 곳을 다니니 웬만하면 셔틀버스를 이용했다. 

사는 동안 남편이랑 차 때문에 기분 상할 때가 가장 많았다.

남편은 운전을 근본적으로 싫어하고 회사 다닐 때는 기사가 있었으니 운전도 잘하지를 못했다.

대형 사고를 몇 번이나 내고 운전대를 잡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나이 들어서 운전을 하려고 하니 그 불안함이 걱정거리로 변했다. 나 역시 시력이 좋지를 않으니 자신감도 떨어지고, 이제는 걱정거리나 신경 쓰이는 일은 하지 않는 게 좋다는 결론을 내렸다.

필요하면 카카오 택시가 편하니 차를 없애기로 합의하고 32년 희로애락을 함께 한 차들과 아쉬운 이별을 했다.

아들이 어릴 때 내가 자라서 돈을 많이 벌면 엄마가 좋아하는 폭스바겐의 뉴비틀(딱정벌레를 닮은 차)을 사주겠다던 약속을 기다리는 행복도 추억이 되어버렸다. 뉴비틀도 내 꿈과 함께 단종이 되었다니 위로로 삼자.

 

시원섭섭하다는 표현이 딱 어울린다.

차를 너무 좋아하지만 유지비, 주차, 사고에 대한 걱정, 남편과의 차에 대한 갈등 같은 게 없으니 얼마나 홀가분한가.

그런데 가끔 불편할 때가 생긴다.

굽이 있는 구두를 신고 곱게 차려입고 멋을 내고 싶을 때

교통이 불편한 곳의 맛집을 가지 못할 때

아이들이 왔을 때 마중가는 즐거움이 없을 때 등 불편한 점이 있지만 가장 난감할 때는 다른 사람들이 집으로 데리려 오고 데려다 줄 때다.

택시를 타면 된다고 해도 굳이 태워주니 고맙지만 가능한 남의 신세를 지지 않으려는 성격 때문에 편하지 않을 때가 있다.

 

아무리 좋아하고 갖고 싶던 것도 손에서 놓아야 할 때가 있는데 그때가 나이와 때가 아닌가 싶다.

차를 내려놓은 대신 많이 걸을 수 있어 건강에 좋고 남편과 차 때문에 얼굴 붉힐 일 없고 주차 때문에 마음 졸일 필요 없고 사고에 대한 염려 없고 경제적으로 지출 줄이고.....一石二鳥가 아닌 一石多鳥

다음은 무엇을 놓아야 할지 모르지만 또 생기면 미련 없이 놓으련다.

 

뉴비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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