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보호사의 길 34

생활의 발견

"어머나!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셨어요?" "어호호호~" 오늘은 남자 어르신 목욕하시는 날 일주일 중에 가장 긴장되는 날이다. 부축만으로 걸을 수 있다면 무슨 걱정이랴. 기골장대한 체격의 편마비 상태인 어르신, 편마비에 코 줄을 하신 어르신, 와상 상태의 어르신 등 목욕을 마치고 나면 겨울철 김장을 끝낸 후의 기분과 거의 같다. 그런데 오늘은 최신 목욕의자를 사용하는 날이라 기대가 크다. 간단한 조작과 설명을 들은 후 실행에 옮겼다. 숙달이 되지 않은 탓에 100% 편리함을 활용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아 계속 웃음이 난다. 좋은 점은 1. 침대에서 바로 이동을 할 수가 있다. 2. 비스듬히 누울 수가 있어 머리를 뒤로 감길 수가 있다. 3. 의자 한 복판에 둥글게 구멍이 있어 씻기 힘든 부분을 ..

마음을 읽는 눈

8월은 2층에서 근무하는 달이다. 매일 인사차 보는 얼굴이지만 한 달 만에 직접 모시게 되니 또 다른 설렘이 있어 좋다. 5~6월 모실 때 소홀했던 부분, 실수했던 일들이 좋은 경험이 되리라. 2층은 휠체어를 타고 기저귀 착용에 완전 식사도움을 드려야 되는 분들이 주로 계시는 곳이라 잔손이 많이 간다. 유일하게 ㅂ00 어르신만 예외다. 어둔하지만 조금만 도움을 드리면 대부분 혼자서 화장실, 식사, 이동을 하신다. 그런데 오늘은 점심을 드시지 않겠다고 하신다. 이유를 물어도 대꾸도 않으신다. "어르신 날씨도 더운데 식사를 거르시면 건강에 나빠요 입맛이 없어도 조금이라도 드셔요." 꼼짝도 않으신다. "어르신 요즘은 시대가 많이 변했어요. 집에서 어른을 모시고 살아도 며느리나 딸이라도 억지로 식사드리지 않아요..

예쁜 주름

푹푹 찌는 날씨에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송알송알 맺힌다. 청소를 할 때는 땀방울이 눈꼬리를 타고 눈으로 들어가 따갑기도 하다. 땀이 잘 나지를 않는 체질이라 피부가 곱지 않았는데 땀을 많이 흘려 노폐물이 빠져나오면 늦게나마 피부가 고와질지도 모르겠다는 희망을 가져보면 조금은 참을만하다. tv에서는 전력수급이 원활하지 않다고 연일 떠들어 댄다. 전력 비상은 부정한 탐관오리들의 일차적인 책임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정부의 관리감독도 문제고 원자력발전에만 치우친 정책도 생각해보아야 할 시점인 것 같다. 정부는 대규모 정전 사태를 방지하기 위한 계획을 발표하고 온 국민이 동참하기를 호소하고 절약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여기에 맞춰 우리도 원가절감이란 타당한 이유가 맞물려 초절전에 들어갔지만 어르신들의 건강을 생각해..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서

장마라고는 하지만 여느 해처럼 남북을 오르락내리락 하는 게 아니고 중부 쪽에 집중적 호우를 가져오고 남부는 연일 폭염과 열대야에 시달린다. 오늘은 쉬는 날이라 오전에 수면을 취하고 오후에 오랜만에 컴퓨터를 켰다. 메일을 체크하고 블로그를 열었다. 예전에 가끔씩 썼던 글들을 보니 새로운 감동으로 다가온다. 처음 요양원에서 보호사 일을 하게 되었을 때의 벅찬 감동과 순수했던 열정들을 어설픈 글로 적어놓았던 게 새삼 보석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내가 알지 못했고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사회의 한 모퉁이의 아린 삶이 예순을 넘은 나에게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해 준 것이다. 되돌아보면 알게 모르게 잘못도 저지르고 실수도 많았지만 나름대로 정직과 성실함으로 최선을 다했으니 후회는 말자고 하면서도 아쉬움은 남아있..

구속의 자유

새벽 잠시 눈을 붙였다가 청소차의 소리에 잠이 깼다. 다시 잠이 들면 깊이 빠질 것 같아 창문으로 보이는 희미한 가로등 불에 눈을 맞추고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갑자기 중학교 때 읽었던 암굴 왕이 생각난다. 서점을 하셨던 큰아주버님의 좋은 책 추천으로 30대 중반에 다시 읽게 되었다. 그때는 제목이 몬테크리스토 백작 이였다. 원문을 번역한 500 여 쪽으로 기억하며 어렴풋하던 암굴왕의 내용들을 다시 조각 맞추듯 정리를 할 수가 있었다. 주인공의 억울함에 분노하고 목숨을 건 탈출에 함께 마음 조이고 통쾌한 활약상에 환호를 왜치며 밤을 꼬빡 새웠다. 주인공 당데스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14년 동안이나 마르세이유 앞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이프 섬'의 지하 감옥에서 유배 생활을 하다가 탈출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사회 부적격자?

날씨가 흐리다. 회색빛 구름이 잔뜩 인상을 쓰며 여차하면 한줄기 쏟아질 기세다. 그래도 봄꽃들은 나름대로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얼굴로 스스로 피고지고 제 역할에 충실하다. 심술궂은 날씨에도 굴하지 않고 자기 일에 순응하는 순수함이 더 예쁘다. 오늘은 남자 어르신들의 목욕날이다. 이동이 자유스러운 분이면 별 힘 드는 일이 아니지만 몸의 일부가 마비가 되어 이동이 자유스럽지 못한 어르신의 경우는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특히 새로 오신 윤XX 어르신은 좌측이 마비가 된 상태이고 더구나 성격이 까다롭고 눈에 물 한 방울이라도 들어가면 난리가 난다고 한다. 특수 제작된 캡으로 이마를 가리고 해야 된다며 처음 보는 고무 캡을 할머니가 주셨다. 좌측 팔이 마비된 할아버지를 6년이나 수발을 하셨지만 이제는 할머니도 힘..

어르신 저 왔어요~~

수채화 곱게 물든 만산의 진달래꽃 햇살 가득 먹은 빨강 노랑 분홍 색색의 봄꽃들이 요양원 정원에 가득하다. 앙상하던 가지에 물이 오르는가 싶더니 금세 꽃잎을 피워내는 자연의 경이로움, 우리 인간들의 염원이 아닐까 유난히 추웠던 지난겨울 움츠렸던 어르신들의 기나긴 겨울나기가 얼마나 힘드셨을까 바람이 없는 화창한 날 봄맞이를 시켜드려야겠다. 그런데 유채꽃이 화사한 테라스의 한쪽 긴 의자에 옥출어르신이 간호 선생님을 가슴에 안고 토닥토닥 등을 두드리는 모습이 창 너머로 보인다. 인자스러운 우리네 어머니들의 모습이다. 이 어르신은 파킨슨 병을 앓고 계시는데 이동이 둔하고 자유스럽지 못하다. 살이 찌고 굳어져 단단해서 화장실 이용하기도 불편하고 의복교체도 너무 힘이 든다. 배변 실수가 많아 기저귀를 착용하지만 꼭..

얼굴이 반쪽이 되었어요

덥다. 너무 덥다. 방송에서는 매일 폭염 경보가 나오고 최고 기온을 갱신했다고 떠들어 댄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젖었던 몸과 마음을 식히는데 띵똥! BSH 어르신 할머니가 오셨다. 현관 문을 여는 순간 땀 냄새가 왈칵 코로 느켜진다. 얼마 남지를 않은 곱술파마 머리가 땀에 젖어 더욱 적어보인다. 15도 쯤 굽은 등에서 삶의 무게가 너무 무거웠음을 보여준다. 그래도 늘 잃지 않는 환한 웃음이 보기가 좋다. 할아버지의 연세가 83세 할머니가 75세 부모님께서는 나이 차이가 많으면 남편사랑 많이 받는다고 보낸 시집이란다. 사랑을 받기보다 늘 주면서 사신 것 같다. 원호대상자인 할아버지는 평생 가족을 위해 돈 한 번 벌어 본 일이 없었다고 한다. 치매가 와서 혼자 집에 계실 수 없어서 이곳으로 모셔왔다. 할머..

이런 나쁜 아들 OUT!

오랜만에 아내 노릇 제대로 한 번 할 수 있는 날이라 일찍 일어났다. 서둘러 따뜻한 식사를 챙기고 한가한 시간이다. 잠을 더 잘까? 아니면 컴퓨터를 켤까? 조금은 궁금한 게 있어 컴퓨터를 켰다. 어제 보낸 메일의 수신 확인을 보니 아직 수신을 하지 않았다. 첨부 파일을 사용할 줄 몰라 남에게 부탁해서 보낸 것이라 조금 불안하다. 무슨 일이던 직접 하지 않으면 끝날 때까지 안심하지 못하는 버릇 때문이기도 하지만 오랜 경험으로 완전한 믿음을 갖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나도 직업병을 앓고 있는 것일까? 오랜만의 조용한 아침 컴에 앉아 좋은 생각을 쓰려고 했는데 갑자기 jjs어르신이 생각난다. 이니셜이 나와 똑같다. 내가 일을 시작한 지 꼭 15일 만에 어르신과 인연을 맺었다. 175cm 정도의 키에 42Kg..

아름다운 통찰

PHD (52세) 우리 요양원에서 최연소자다. 훤칠한 키에 남자다운 외모를 갖춘 멋진 남성이다. 연로한 어르신들과는 달리 교통사고를 당해 왼쪽 편마비가 생겼고 뇌에도 장애가 생긴 장해 1등급 환자다. 처음 요양원에 들어섰을 때 뚫어져라 쳐다보는 눈빛이 섬뜩해서 친구에게 물었다. 나이도 젊어 보이는 데 어째서 이런 곳에 오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걱정할 것 없다. " "매일 하는 소리는 '밥 많이 달라.'는 것 외는 별로 생각이 없는 환자다."라고 했다. 이동은 휠체어로 하고 오른손으로 서툴게 식사를 할 수 있지만 소변은 받아내어야 하고 체격이 커서 보호사들이 관리하기가 힘에 부친다는 것이다. 모두에게 가장 힘든 환자지만 특히 체격이 작은 나에게는 상당한 부담이 된다. 그도 역시 작은 나를 우습게 보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