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보호사의 길 34

生과 死의 갈림길에서

동혁아~ 동혁아~ 오늘 밤도 어둠 속에 목이 쉰 애절한 부름은 계속된다. 누구인지도 모를 이름을 계속 부르고 계신다. 지금 89세가 된 uh(여) 어르신이다. 연세로 보아서 아들이거나 아니면 손자일 것 같다는 추측만 하고 있다. 처음 요양원에서 뵈었을 때는 참으로 다정하고 친절한 분이셨다. 한쪽 다리가 많이 불편하셔서 앉아서 이동을 하시지만 언제나 웃는 모습에 조금의 도움에도 "선생님 고맙습니다."를 잊지 않으셨다. 소량이지만 맛있게 잘 드시고 아는 것도 많아 남자 어르신들에게 인기도 독차지였다. 어느 날 갑자기 고열과 기침이 계속되고 응급처치를 하였지만 폐렴으로 진행되었다. 가족과의 연락도 잘 닿지를 않아 걱정이 많았지만 겨우 연락이 되어 병원에 입원하셨다. 많이 악화되어 3일을 넘기기 힘들 것이라는 ..

고마워요/변화의 자유

KKH 어르신(97세) 요양원에서 가장 연세가 많은 분이다. 97세인데도 허리가 꼿꼿하고 정신도 맑은 편이다. 지팡이를 짚고 매일 테라스를 산책하시며 햇살을 쬔다. 틀니로 소량이지만 식사도 잘 하시고 대소변도 정상이다. 단지 기저귀를 사용할 뿐이다. 기저귀를 갈고 난 후 팔다리를 잠시 주물러드리면 "고마워요" 꼭 기분 좋은 인사를 하신다. 귀가 잘 들리지 않는 불편함이 있으나 휴대폰으로 자녀들과의 대화는 된다는 것이다. 침상 머리맡에 휴대폰을 줄로 묶어 놓고 매일 충전을 해달라고 하신다. 기다리는 것은 예순이 넘은 막내딸, 칠순이 넘은 아들의 목소리다. 하루는 늦은 시간 잠자리를 보러갔더니 기분이 많이 좋으신 듯 "선생님 내가 시 한 수 읊어볼게요." 하신다. 특별한 기대 없이 네, 읇어보세요, 했더니 ..

방황은 끝났다

방황은 끝났다. 11년 6개월의 긴 방황의 터널, 마침내 밝은 햇살이 비친다. 얼굴에서 전신으로 마음까지 따뜻이 전해온다. 욕심쟁이처럼 모든 걸 가득 안고 가정이란 울타리 속에서 안주했던 시절. 사랑과 부러움과 시샘의 대상이었지만 행복했다. 어느 한순간도 잊고 싶지도, 잃고 싶지도 않은 머무르고 싶었던 시간들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몰아친 폭풍!! 중심을 잡으려 부단히 노력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나를 행복하게 했던 모든 것들이 나에게서 멀어져만 갔다. 재물도 중요하지만 사람에 대한 욕심이 많았던 탓에 좋은 사람이 주위에 많았지만 하나 둘 멀어지고 스스로 밀쳐내기도 했다. 구차함보다 외로움을 택했고 외로움은 우울함을 가져오고 49년 형성되어 온 인성마저 조금씩 훼손되어 갔다. 슬펐다. 아들 딸 서울로..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걸까? 가끔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주위에는 대부분 칠순을 넘긴 사람들이다. 노후를 몸과 마음, 시간을 한가롭게 보내는 사람, 아직도 열정적으로 자기 계발을 하며 촌음도 아끼며 바쁘게 사는 사람들이 있다. 전자는 대체로 정적이거나 지난 세월 질풍노도의 삶을 살았거나 조금은 게으른 사람인 것 같고 후자는 활동적이며 부지런하고 자기가 특별히 잘하고 빠질 수 있는 무언가 있는 사람인 것 같다. 나는 전자에 속하는데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한 성격이라 지금껏 잘 살아왔는 것 같다. JS이는 후자에 속하는 친구 카톡방에 코로나에 걸렸다는 소식이 올라왔다. 코로나 팬데믹 초창기에는 그의 정체를 잘 모르니 두려웠지만 이제는 독감 정도로 생각하니 괜찮다는 위로 전화를 했다. 너무 바쁘게 생활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