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보호사의 길

이런 나쁜 아들 OUT!

눈님* 2023. 7. 28. 15:25

오랜만에 아내 노릇 제대로 한 번 할 수 있는 날이라 일찍 일어났다.

서둘러 따뜻한 식사를 챙기고 한가한 시간이다.

잠을 더 잘까? 아니면 컴퓨터를 켤까?

조금은 궁금한 게 있어 컴퓨터를 켰다.

어제 보낸 메일의 수신 확인을 보니 아직 수신을 하지 않았다.

첨부 파일을 사용할 줄 몰라 남에게 부탁해서 보낸 것이라 조금 불안하다.

무슨 일이던 직접 하지 않으면 끝날 때까지 안심하지 못하는 버릇 때문이기도 하지만 오랜 경험으로 완전한 믿음을 갖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나도 직업병을 앓고 있는 것일까?

오랜만의 조용한 아침 컴에 앉아 좋은 생각을 쓰려고 했는데 갑자기 jjs어르신이 생각난다.

이니셜이 나와 똑같다.

 

내가 일을 시작한 지 꼭 15일 만에 어르신과 인연을 맺었다.

175cm 정도의 키에 42Kg, 앞머리는 숱이 하나도 없는 맨머리에 움푹 파인 눈두덩이, 초점 없는 시선과 무표정, 튀어나온 이마,

불규칙적인 걸음걸이, 허름한 옷차림을 보아서는 장시간 방치된 노인이 틀림없어 보였다.

가난과 기아에 허덕이는 아프리카의 뼈만 앙상하게 남은 노인의 모습과 흡사하다.

식사를 드려도 드시지 않고 말도 없이 자꾸만 이곳저곳 바쁘게 드나들기만 하신다.

걱정을 하니 함께 온 며느리가 하는 말이 참 끔찍하다. "잡숫지 않으면 그냥 두세요!"

무언가 일을 저지를 것만 같은 불안함에 바짝 긴장을 하고 목욕탕의 개인 칫솔 도구를 숨겼다.

아무것이나 만지고 사용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일로 어르신과 함께 있는 동안 내내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며느리는 가고 멍하니 혼자 앉아 계시는 모습을 보니 겁도 나기도 했지만 마음이 짠하다.

해골을 연상시키는 머리 부분이 유난히 눈에 들어온다.

검은콩 두유를 하나 드렸더니 허겁지겁 단숨에 드셨다.

 

배가 많이 고프셨던지 저녁은 잘 드셨다.

이곳의 생활에 적응을 하시도록 모두들 세심한 신경을 쓰지만 보통 일이 아니다.

눈에 보이는 음식은 가리지 않고 드시고 잠 오면 자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방향 감각이 전혀 없어 화장실을 모시고 다닌다.

변기 물을 내릴 줄도 모르고 수도꼭지를 열고 잠그기도 되지를 않는다.

양손을 비벼 씻는 것조차도 되지를 않으니......

좋다. 그런 것은 차츰 시간이 가면 익숙해질 테지만 문제는 다른 어르신들께 피해를 주는 게 큰일이다.

불쑥불쑥 문을 열고 다른 방을 기웃거리고 남의 것도 먹는 게 보이면 드셔 버린다.

실내화도 신발장의 신도 남의 것을 마음대로 신어버린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이해를 하겠지만 이곳의 어르신들은 모두가 환자라 그런 것을 이해 못 하시니 자꾸만 고함소리가 들린다.

화장실의 비누 조각도 입에 들어가는 것을 발견하고 제지를 했다니 잠시도 눈을 뗄 수가 없다.

목욕을 거부하셔서 설득하는데 3일이나 걸렸다.

웬만하면 시간이 걸려도 사람의 마음을 열게 하는데 더는 기다릴 수가 없어서 머리를 썼다.

이곳에서 가장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고 제일 어르신이라고 생각하는 KSH 어르신의 도움(이용)을 받기로 했다.

"오늘은 두 어르신 목욕하는 날입니다. 누가 먼저 씻을까요?"

떼쓰는 개구쟁이 어린이들에게 사용하는 심리적인 경쟁심을 이용한 것이다.

어떤 생각들을 하고 계시는지 모르겠다.

"오늘은 KSH 어르신이 양보하시고 뒤에 하세요.  JJS 어르신이 처음 오셨으니까 먼저 씻어 드릴게요."

"자 어르신 먼저 씻으러 갑시다, " 손을 잡으니  엉겁결에 벌떡 일어나셔서 발걸음이 바쁘다.

"앗 싸! 성공이닷."

 

공포의 어둠이 밀려온다.

오늘 밤은 또 어떻게 지낼까?

하루 밤도 10여 차례 방 밖으로 나오셔서 이곳저곳을 중얼거리며 다니셔서 다른 어르신들의 수면을 방해하고 놀라는 일이 허다하다.

다행히 슬리퍼를 신었을 때는 소리라도 들리지만 맨발로 나오시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어둠 속에 앙상하게 마른 키 큰 물체가 알 수 없는 주문 같은 걸 응얼거리며 서성이는 걸 발견했을 때는 누구나 비명을 지른다.

하는 수 없이 방문을 닫기로 하였다.

발자국 소리가 나면 먼저 일어나 문을 열지 못하도록 밖에서 문을 잡고 있다.

문을 열려고 하시는 어르신과 문을 사이에 두고 힘겨루기가 시작된다.

미처 듣지 못하고 문이 열렸을 때는 몸으로 제지를 한다.

다행히 너무 약해서 몸으로 막을 수 있지만 제대로 체중이 늘면 도저히 감당이 되지를 않을 것 같다.

너무 야위어 밥을 많이 드리고 있는데 어떡해야 하나?

 

아기에게 말을 이해시키듯, 행동을 가르치듯 처음부터 하나하나 가르치기로 마음먹었다.

어설프게 알고 나쁜 습관화되어 있는 것보다 백지상태에서 올바른 생활습관을 인지시키는 게 차라리 낫다는 생각이 든다.

아기를 키울 때의 정성과 애정으로 보살피니 변화되는 모습이 눈에 띈다.

난폭하게 행동하면 어쩌나 염려하던 처음보다는 훨씬 온화하고 여린 성격이다.

식사량을 늘렸더니 이제는 체중이 48Kg이다.

표정이 없던 얼굴에 웃음도 찾았다.

"이빨이 보이도록 활짝 웃어보세요~이번에는 소리 내어 웃어보세요~"

요구하면 어허~이빨만 드러내는 입 모양이 어설프지만 기분은 매우 좋아 보인다.

텃밭이나 화단에 소변을 몰래 보시는데 소변은 화장실에서 보셔야 된다고 하면 "거름 되라고." 짧게 답하신다.

처음으로 자신의 분명한 의사를 표시하는 놀라운 변화도 보인다.

어찌 되었던 우리들의 애를 태우고 많이 힘이 들게도 하셨지만 엉뚱한 행동으로 웃음도 많이 주셨다.

지금도 보호의 눈을 잠시도 떼기는 힘들지만 이만하면 충분한 보람이 있다.

 

그런데 어쩌면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갑자기 아들이 나타나 아버지를 모시고 가야 된다는 것이다.

두 달도 채 되지를 않았다.

집으로 모시고 간다면 얼마나 다행이고 기쁜 마음으로 편하게 보내드리련만.

멀리멀리 한적한 외곽의 규모가 큰 곳으로 모신다는 것이다.

말이 모신다는 것이지 찾아가기도 불편한 곳으로 유배를 보내는 것 같다.

힘들게 적응해서 이제는 편안히 지내시려는데 또 낯선 곳에 가셔서 얼마나 놀라고 적응에 힘이 드실까?

식사량도 여기처럼 풍족하게 드릴까?

밖으로 거동도 못하시고 정해진 공간 안에서 얼마나 답답하실까?

규모가 크다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고 오히려 엄격한 규칙 때문에 최소한의 욕구를 더 구속한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방은행의 모 출장소 소장이란 직책을 가진 아들의 행동이 너무나 괘씸하다.

정확한 출장소 이름을 밝히고 싶지만 밝히지 않는 것은 그도 자라는 아이의 아버지일 것이기 때문이다.

완전 노숙자 같은 부모를 이곳에 맡겨서 복잡한 장기요양등급까지 취득하고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놓았는데 감사는커녕 이런 행동은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은 도저히 이해가 가지를 않는다.

보호사들이 쏟았던 정성과 애정은 당연하니 생각지도 않지만 장기요양 환자를 받지 못한 직접적인 피해를 요양원 측은 받으니 난감하다.

이 것 저 것 다 제쳐 두고라도 낯선 곳에 가서 새로이 적응하시려면 힘이 들 것이라는 아버지의 생각은 안중에도 없는 것 같다.

진심으로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이 눈곱만치라도 있으면 좋아진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지를 않나.

등급 받는 날 외에는 정식으로 한 번도 찾아뵙는 일도 관심도 없었다.

설사 지난날 아버지의 살아온 과정이 자식에게 떳떳하지 못했을는지는 모르겠다. 현재의 부모 모습이 부끄러워 남에게 숨기고 싶고 자라는 내 자식에게 보이고 싶지 않을지라도 내 부모임에는 틀림없다.

능력이 되면서 정신없는 부모를 내팽개치듯 하는 행동을 나는 도저히 볼 수가 없다.

 

아들의 허우대는 멀쩡하다.

차에서 내리기는 했으나 들어오지도 않고 아내만 들여보낸다.

"아유, 미안해요. 그동안 고마웠어요. 남편이 하도 졸라서 모시고 가야 돼요. 아버님 가요."

짧은 몇 마디 남기고 도망가듯 서둘러 요양원을 빠져나갔다.

허탈하다.

이른 새벽 일어나셔서 이곳저곳 다니시고 tv를 켜라고 조르시고 주방을 기웃거려 늘 음식물 보관에 신경을 쓰게 하셨지만 가끔은 남들 모르게 과자나 요구르트 바나나를 살짝 드리기도 했다.

그곳에서는 어떻게 할까?

부디 큰 사고 없이 가르쳐드린 대로 잘하셔야 할 텐데.

사고를 치고 말썽을 부려 힘이 들어도 그곳의 보호사들이 사랑으로 보살펴드리게 기도하는 수밖에 내가 할 일이 없고 그냥 안타깝기만 하다.

 

2012.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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