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시들은 꽃

눈님* 2025. 3. 19. 12:33

하루 사이에 단풍나무에 연록의 잎이 소복하다.

그저께만 해도 뾰족이 내민 싹이 귀여워 한참을 보았는데.

이제 다투어 베란다의 화분들이 기지개를 켜고 봄햇살에 키재기를 할 것이다.

천천히 물을 마시며 화분들과 아침 인사를 나누는데 옆에 제라늄에 눈길이 멈춘다.

 

생활 속에서 꽃은 늘 가까이 있었다.

어린 시절에는 소주병에 들꽃을 소복하게 꽂아서 집안 곳곳에 있던 기억이 난다. 아버지의 취미셨다.

학창 시절에 가장 기억에 남는 꽃은 코스모스였다.

봉오리가 맺힌 목련 가지를 꺾어 식탁을 장식하던 행복한 주부생활

추운 겨울, 생화가 귀하던 시절에는 안개꽃과 말린 장미를 구석진 곳에 걸어 두기도 했다.

지금은 겨울에도 많은 종류의 꽃을 볼 수 있는데 올해는 실내에 난 외에는 아무런 꽃화분을 들여놓지 않았다.

 

햇볕 잘 드는 베란다의 제라늄에 꽃이 피었다.

작년 봄에 처음으로 제라늄을 키우기 시작했는데 한겨울에 꽃이 피다니 반가웠다.

지난해 관상용으로 남겨 둔 보라색 가지, 붉은 고추와 파프리카, 치커리에만 애정을 쏟았는데 연분홍색의 귀한 꽃이 계속 피어나 베란다는 또 다른 생동감이 흐른다. 잎을 살짝 젖히면 아주 작은 송알송알 꽃봉오리들이 숨어있다. 

식물은 변함이 없는데 내 마음만 변한 것 같다.

마른 잎이나 시들은 꽃은 바로 정리를 하는 성격인데 제라늄 꽃은 그대로 두었다. 의외로 편하다. 틀림없이 불편하고 눈에 거슬리는 게 정상인데........

 

마른 꽃 걸린 창가에 앉아 외로움을 마셔요~~'그 겨울의 찻집' 노래를 생각하며 남겨둔 시들은 꽃.

시들은 꽃을 보니 별별 생각이 꼬리를 문다.

사람이나 꽃의 일생이 기간만 다를 뿐 흡사한 것 같다.

사회 구성원을 이루는 수많은 사람들이 떠오른다.  

꽃의 모양, 색의 농도, 크기, 역할, 수명도 다르다.

사람이나 꽃도 수명을 다하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게 태어남에 대한 예의일 것 같다.

 

후~~ 불면 날아갈 것 같은 홀씨를 발견했다.  갈색 씨방 안의 씨앗이 완전히 여물면 어디든 날아갈 준비를 위해 하얀 깃털에 영양을 공급하고 몸집을 키우나 보다.

종족 번식은 그들의 의무며 본능일 것이다.

인간은?

어디서 무엇을 하던 자기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산다면 족하지 않을까, 눈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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