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한 생선, 육류보다 더 맛있는 것 같다.
손질과 냄새, 조리가 조금 귀찮기는 하지만 식단에 빠질 수 없다.
어두육미~
머리 부분이 맛있다는 속설을 100% 믿는 것은 아니지만 생선 머리와 바로 아랫부분은 남편 몫이다.
언뜻 보면 남편을 많이 생각해서라고 할 수도 있는데 전혀 아니다.
생선 눈이 눈에 좋다는 말을 믿는지 귀찮다는 말 한번 하지 않고 머리 부분, 특히 양눈을 챙기는 남편이다.
내가 생선, 특히 제주 낚시 갈치의 위쪽 부위를 먹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다.
첫아이를 낳고 돌이 되기도 전에 서울로 발령이 났고 서울살이 3~4년 후 대구로 다시 왔을 때 일 년 한옥살이를 했다.
큰댁이 근처고 한옥도 큰댁 소유였는데 형님이 허리를 다쳐서 꼼짝을 못 하니 도움을 청해서 잠시 거주할 때다.
기역 자 모양의 전통 한옥이 주방과 화장실이 불편하긴 해도 다락방도 있고 대문 위의 작은 옥상으로 가는 길 따라 노란 호박꽃이 예쁘고 꽃이 진 자리엔 호박이 조롱조롱 달리는 것도 재미있었다. 조카가 셋이나 되니 우리 아이들을 예뻐해 주는 것도 좋았고 두 집 살림을 잘한다고 모두들 칭찬을 해주니 젊은 기분에 신이 났다.
시할아버지, 시어머니, 형님 부부, 조카 셋, 시누이, 우리 가족 넷, 합이 12명의 대가족이다. 조카 둘이는 도시락까지 준비해야 했다.
또 있다.
학교 앞 서점을 두 곳 운영했는데 한 곳은 문구류까지 판매를 했고 등하교 시에는 서점도 봐야 하는 상황이다.
여러 권의 책값 계산도 빛의 속도로 해버리고 학생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니 아주버님은 너무 좋아하신다. 조금 철없고 쇼핑만 즐기고 살림은 잘하지 못할 줄 알았는데 사실이 아님을 아신 것 같다. 지치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거뜬히 1년을 견뎌낸 덕으로 지금껏 인정받으며 살고 있다.
세상 모든 게 만족할 수는 없는 게 자연의 이치.
대가족의 생활, 칭찬과 자부심에 뿌듯함도 있었지만 엉뚱한 곳에서 문제가 생겼다.
지금은 주택가 골목길이나 마당은 대부분 포장이 되어있지만 당시에는 대로변이나 특별한 소방도로가 아니면 포장이 되지 않은 흙길이었다. 여름철 장맛비에 마당은 늘 물에 젖어있었다. 지렁이가 숨을 쉬러 땅 위로 나와 기어 다니고 어떤 놈은 밟혀서 죽어 널브러진 것도 있다.
밟지 않으려고 눈을 크게 뜨고 발걸음을 조심하는 게 습관이 되었다.
아이들에게도 밟지 않도록 조심시키고. 너무 겁을 내니 시골서 자란 남편은 지렁이를 손으로 잡으려는 동작으로 놀리기까지 할 때도 있다.
주절주절 계속 장맛비가 내리고 바람이 부니 타일 계단에도 비가 뿌린다.
부엌으로 가기 위해 마루로 나와 신을 신으려는데 바로 아래 계단까지 비에 젖었고 제법 큼직한 지렁이가 몸길이를 늘였다 줄였다 하며 기고 있는 게 아닌가.
너무나 놀라고 겁이 났지만 집에는 나 혼자, 도움을 받을 사람도 없었다. 저러다 더 위로 올라오면 어쩌나.
방에서 난 작은 문을 통해 부엌으로 가서 소금을 가져와 눈을 감고 지렁이 쪽을 향해 뿌렸다.
한쪽 눈만 실눈으로 뜨고 지렁이를 보았는데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온몸을 뒤틀면서 발버둥 치는 모양, 지금까지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그 후로는 비 오는 날 장화를 신고 걷고 싶을 때도 있지만 지렁이 때문에 삼간다.
민물낚시와 바다낚시의 미끼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지만 작은 생선이나 지렁이를 미끼로 사용한다는 소리를 듣고는 머리 부분이나 윗토막은 못 먹는다.
강산이 몇 번이나 바뀌고 나이도 많이 먹었으면 벗어날 만도 한데 전혀 그러지를 못한다.
요즘 나라를 소용돌이로 몰고 가는 누구를 보면 악령 같은 트라우마가 다시 떠오른다.
죽을 거면서 발버둥 치는 지렁이의 모양이다.
죽을 때까지 소름 돋는 지렁이에 대한 트라우마를 갖고 살 것 같다.

지렁이로 인한 사연 몇 개만 남기자.
*남편에게 다른 취미생활은 무엇이든 해도 좋지만 낚시만은 절대 안 된다.
*딸이 1학년 때 비 오는 날 학교에 데려다 주려 가는 길.
손가락 굵기의 대형 지렁이 출몰,
딸을 혼자 가라 하고 재빨리 돌아서는데 딸은 빗속을 울면서 뛰어가며 '엄마 나 살려!'
*2층 거실, 대형화분 물받이에 물과 함께 큰 지렁이가 함께 있는 걸 발견.
앞집 도우미 아줌마께 부탁해서 치움. 가을에 단감을 따서 제일 먼저 아줌마 드림.
*2층 거실 바닥에 죽어있는 지렁이 발견
아이들에게 밟지 않도록 주의를 주고 신문지를 깔아서 길을 만들고 저녁까지 기다려서 남편이 정리.
*정원을 가꾸고 잔디를 깎는 일은 나의 몫.
가끔 잔디 속에서 꿈틀거리는 지렁이에 놀라서 펄쩍 뛰다가 잔디가위는 날리고 다리를 삐끄덕거리기 일쑤, 큰 가위에 다치지 않은 게 천만다행. 어쩌다 잔디 가위에 두 동강이 나서 펄떡 뛰는 걸 봤을 때는 온몸에 소름이 쫙, 남편에게 화풀이다.
"잔디 좀 깎으라"
대답은 한결같다. "길면 보기 좋은데 뭘 자꾸 깎느냐"
애가 타도록 사랑하는 어린 딸을 혼자 보내는 나를 보면 지렁이를 얼마나 싫어하는지 알 수 있고, 지금은 징그러운 지렁이의 트라우마에 혐오감을 더한 더 지독한 트라우마에 시달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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