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 좋아하면 이마 벗어진다는데."
"그래도 가자"
SB 씨는 새로 개통된 대경선을 타보자고 벌써 몇 번이나 조르는 중이다.
미지근한 나의 태도에도 아랑곳없다.
지난번에 맛있다던 국수도 먹고 바로 근처가 대구역이니 괜찮잖아. 이젠 국수까지 들먹인다.
국수?
처음 맛이 괜찮았던 음식점은 다시 한번 더 확인하는 버릇이 있다.
대구 전철에는 1호선 2호선 3호선이 있는데 경산에서 구미까지 운행하는 대경선이 개통되었다.
경상북도 일부와 대구광역시, 철도망 구축과 환승 시스템이 더 편리해졌다.
가끔 전철을 이용해 보면 속도, 청결, 냉난방, 편리한 환승, 모든 게 만족스럽다.
세계 제일이라고 하니 흐뭇, 국뽕에 빠지는 나, 누가 뭐래도 어쩔 수 없다.
서민들의 만족도는 높은데 만성적자의 원인인 무임승차, 환승 제도, 저렴한 요금은 또 다른 사회문제다.
대구역 서울 방면 타는 곳에서 80m 떨어진 곳에 대경선 타는 곳이 따로 있다.
추운 날이라 한가할 줄 알았는데 좌석 수보다 섰는 사람 수가 훨씬 더 많다. 다리가 약한 SB 씨 재빨리 움직여서 혼자라도 자리를 잡은 게 다행이다.
처음 개통이라 재미로 타는 한가한 노년들이 많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젊은 층부터 다양한 연령층이 탔다. 대구 먼 외곽지에서 버스, 전철을 타고 와서 대경선으로 구미로 바로 가니 시간, 돈 절약을 할 수 있어서 정말 좋다는 아주머니와 잠시 대화.
안전하게 몸을 유지하고 서서 가는 건 전혀 문제가 아니다. 삭막한 겨울 풍경, 휙휙 지나가버리고 멍하니 보내는 아까운 시간... 이게 뭐 하는 짓인지 참.
"괜찮나?"
"체력단련하잖아."
처음 와 본 구미, 驛舍에서 내려다본 시가지
구 대구역, 롯데 백화점이 들어서지 않고 근처 개발이 되기 전 모습과 비슷한 느낌이다.
계획된 일도 없지만 그냥 되돌아가긴 뭣해서 대로변을 따라 한 바퀴 돌았는데 골목 안쪽에 보이는 빈집들이 눈에 띈다.
빛바랜 담벼락 위에 마른 잡풀들이 바람결에 날리니 갑자기 '황성 옛 터' 노래가 입안에서 맴돈다.
황성 옛 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
폐허에 서른 회포를 말하여 주노라
;
성은 허물어져 빈터인데 방초만 푸르러
한 때 구미공단이 활성화되었을 때는 매력적인 도시였는데 공장들은 수도권으로 외국으로 가버리니 쇠퇴해 가는 모습이 눈에 띈다.
역사 앞의 백다방에서 쌍화차 한 잔, 해 짧은 겨울, 어둠은 벌써 내렸고 대경선 출발지여서 앉아왔다.
1호선에서 집으로 오는 버스 환승을 위해 반월당에 내렸는데 복권을 사자고 한다. 이것도 취미 없지만 좋은 꿈을 꾸거나 특별할 때 천 원짜리 하나씩 살 때가 있었다. 오늘이 특별한 날?
사는 게 힘이 드는지 행운을 바라는 사람이 많다.
로또를 사려는 긴 줄, 기다리고 싶지 않은데 한쪽 창구는 한산하다. 즉석 긁기 복권 판매 창구라는데 아무려면 어때, 재민데.
두 장 샀다. 한 장씩 나누면서 당첨되면 무조건 반띵!
옆의 학생들이 가르쳐 주는 대로 조금 긁었는데, "당첨됐어요." 학생들이 먼저 알아차렸다.
진짜 만 원짜리 당첨, SB 씨는 꽝~~
이런 일 처음! 둘이 안고 좋아하는데 SB 씨, 다시 만 원어치 바꾸자고 한다.
안돼! 이렇게 좋은 기분 유지하려면 돈으로 바꿔야 해. 냉정하게 돈으로 바꿨다. 2천 원 투자해서 금세 1만 원이 되었는데 이런 횡재가 어디 있어.
이 돈으로 생맥주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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