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시간 있어?
특별히 약속된 일이 없다기에 점심 약속을 했다.
실버체조 지도사 강습을 함께 하는 이웃이다.
서로 인사할 때 생일을 기억해 뒀다.
남의 기념일이나 특별한 날을 잘 외우지 않는데 이 친구는 기억에 남는다. 같은 아파트, 동갑이기도 하지만 내 생일과 연관하면 바로 알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봄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교육원을 함께 다니다 보니 서로의 생활을 조금씩은 알 수 있다.
가족관계에서 관심과 애정도가 낮은 걸 느낄 수가 있었다. 노파심에서 생일은 어떻게 보낼 건지, 마음이 쓰였다.
자기는 생일을 잊고 지났는데 어떻게 기억했냐며 미안해하면서도 상상이상 기뻐했다.
자녀들은 아무리 바빠도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연세 많은 부모 생일 챙기는 건 연례행사로 생각한다.
그런 자녀들의 사랑으로 노후의 슴슴한 삶도 나름 의미를 두며 사는 재미가 있다.
자녀가 아니더라도 누가 챙겨주면 고맙지만 전혀 생각지도 않았을 때는 더 고마울 것 같다.
다음 날 만났을 때, 어젯밤에 너무 좋아서 잠을 설쳤다는 말로 나에게 마음을 전했다.
가족 단톡방에 'KBS 이사 선임 처분 효력 정지 가처분 탄원서'의 링크가 올라왔다.
서명 받기에 대한 아들의 간단한 설명에 "걱정 마라, 일당백이다. 엄마의 열정을 보여줄게!"
역시 울 엄마 쵝오!
다음 날, 카톡으로 친구나 지인들에게 링크를 보냈다.
연세가 있을 분께는 따로 전화를 드렸다.
형님, 건강은요? 서명 받기 알바 좀 해주세요. 알바비는 많이 드릴게요.~~~ 알았어, 걱정 마.
뭔지 몰라서 보이스피싱인 줄 알고 지웠다~~~ 다시 보낼게요.~~~ 됐다 그만.ㅠㅠ
남편에게도 부탁해 줘~~ 싫어요. 나만 서명할게요. 이유 묻고 진영 따지고 머리 아프게 해요.ㅠㅠ
너네 가족에게만 해라, 괜히 남에게 부탁하지 말고~~~ 아니다, 우리 가족은 벌써 다 했고 직장에 나가서 많은 사람에게 할끼다.
링크 봤나? 아들 부탁이다.~~~ 가만있어 봐라, 내가 100명은 서명받아줄게.
이번 일로 사람들의 성격이나 나와의 친밀도를 가늠하게 되는 것 같은 느낌.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니 어떤 일에 임하는 태도도 다르겠지만 나와 비교를 해보게 된다.
지금은 열정이 식었지만 어떤 일에 관여를 하면 이해관계없이 적극적인 성격이다.
남편에게 서운한 사람 얘길 했더니, 사람들 귀찮은 것 싫어하고 남의 일에 별로 관심도 없다. 본인은 하겠지만 남편에게는 말하기 곤란할 거다.
듣고 보니 그런 것 같아서 서운한 마음 접고 몇몇 사람들에게 보낸 링크도 삭제를 했다.
조금이라도 부담 주는 일은 하지 말자.
남편에게도 선하게 말해줘서 내가 반성했다며 고마움 표했다.
그래도 기쁜 일도 있다.
생일을 챙겨줬던 친구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100명은 할 수 있다고 호탕하게 큰소리치던 일을 생각하니 웃음이 난다.
작은 일에도 보은(報恩)의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이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