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오늘은 자부가 되어서 하루 저녁 즐기세요."
"자부가 무슨 뜻?"
"자유부인요."
집에 혼자 한번 있어봤으면 좋겠다고 했던 하소연에 대한 딸의 반응이다.
남편은 서울서 동기들 만나서 부여로 놀러 간다며 새벽부터 나갔다.
아이들은 바쁘니 만나지 않고 바로 오겠다고 했는데.
처음부터 그럴 요량이었다면 나도 뭔가 거창한 계획을 세웠을 텐데. 하다못해 낮술 아닌 밤술이 나았을 테고.
그래도 좋아!
조금 남은 호박죽으로 저녁을 때우고 심심하면 군것질을 했다.
밤에라도 통화 가능한 사람들에게 전화를 해서 수다를 떨까, 잠시 생각으로 그쳤다.
나 홀로 이런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데.
컴퓨터도 켜지 않았다. 책상 앞에 앉으면 시간 소비가 너무 많아.
운동하고 차 마시고 그냥 어슬렁거려도 좋다.
자기 전 현관문 다시 점검하고 중문까지 잠갔다. 앞뒤 베란다 꼭꼭 잠그고 방문까지 안에서 잠갔다.
현관에는 남자 신발도 두 켤레 두었다.
평소에는 신경 쓰지 않던 일이다.
다른 날보다 훨씬 일찍 잠자리에 들고 다음 날 아침엔 일찍 일어났다.
오늘은 무엇을 할까, 눈을 감고 침대에 누워 거북목 방지를 위한 목운동을 하며 생각을 정리해 본다.
깨알같이 목록을 적었다.
할 일이 많거나, 즐겁게 일하고 싶을 때 하는 버릇이다.
오늘은 둘 다 해당된다.
일을 하나 끝낼 때마다 동그라미 치는 게 너무 재미있다.
어린이들이 착한 일 했을 때 포도송이에 색칠하는 기분도 이와 같을 것 같다.
화분 손질, 대청소, 앞머리 염색, 빨래, 바지단 올리기, 모임 장부 정리, 밑반찬 만들기, 잔반처리, 쓰레기 분리 정리~~
끝이 없다.
머리 관리부터 하나하나 하면서 동그라미를 치고 배가 고프면 군것질, 남은 밥과 잔반처리를 했다.
시간이 너무 빠르게 간다. 마지막 순서, 밑반찬 만들기는 힘들 것 같다.
바지단 올리고 다림질로 마무리를 하는데 현관문 여는 소리~
혼자 있는 시간 갖기를 원했지만 막상 있어보니 생각보다 특별하지는 않다.
하루가 아닌 여러 날이었으면 어땠을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점은 일어났을 때 잠옷 입은 채로 있어도 괜찮은 것, 정식으로 세끼 식사하지 않고 내가 먹고 싶을 때 먹고 싶은 것 먹는 것, 큰 소리로 노래를 불러도 신경 쓰이지 않는 것뿐이다.
무서움에 문단속을 꼼꼼히 해야 하고 불규칙적인 식사와 편식을 하는 단점이 있다.
남편 덕분에 잘 먹는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 나 혼자 있는 날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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