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애인 데려왔어요

눈님* 2024. 2. 28. 18:34

밤이 늦었지만 커피 한잔을 준비했다.

신협 선거 후 우울한 기분에서 탈피하는 데는 커피가 좋을 것 같았다.

띠리릭~

"애인 데려왔어요."

남편이다.

늦은 시간에 무슨 일?

당황해서 나가보니 남편 뒤에 낮 익은 여자 얼굴이 웃고 있다.

시력에 문제가 있는지 정확히 25년이 지났지만 전혀 변하지 않은 모습이다. 

반가움에 힘껏 껴안았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를 않는다.

 

K.T.S

10년간 볼링을 함께 친 사이다.

나이는 5살 아래.

창단 멤버는 아니고 조금 늦게 들어왔지만 잘 웃고 친화력이 좋아서 빨리 팀에 적응했다.

부지런해서 음식점에 가면 재빠르게 수저를 준비하고 서빙도 잘하니 회원들에게 귀여움을 받았다.

총무를 시켰더니 몸 사리지 않고 헌신적으로 잘했다.

솜씨가 좋아서 옷도 잘 만들었는데 홈웨어로 만들어준 까만 블망 치마와 셔츠는 지금도 갖고 있다. 세월의 흔적은 조금 있지만 조끼 하나 걸치고 입으면 날씬하고 여성스러움이 돋보여 없애지 못하고 아끼고 있다.

화장법도 많이 알아 남에게도 어울리는 화장을 해주는 걸 좋아했다.

당시 멤버 중 나이는 가장 젊었지만 볼링은 잘하지를 못해서 단체전에는 민폐를 끼치는 수준이었다.

그럴 때면 민망해서 어설프게 웃던 모습이 선하다.

 

작년 여름에 다른 지인을 통해 '이혼' 소식을 들었을 때,

 '잘했다'는 말이 바로 나왔다.

남편에 대해서 조금 알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는 풍요로웠지만 신랑 말만 나오면 입을 삐쭉거리던 게 늘 마음에 걸렸다.

함께 밥이라도 먹자고 했는데 계속 미뤄지고 있었다.

개인적인 일이 있긴 했어도 좋았던 사람들을 챙기지 못하고 무심하게 보낸 세월이 너무 길었어.ㅠㅠ

그녀는 몇 달 전부터 가톨릭 신자가 되었고 신협 선거에 나온 후보 부인과 친구이기도 하다. 

선거 끝나고 뒤풀이에 남편과 함께 있었는데 예전부터 잘 아는 사이니 모셔다드린다고 왔다는 것이다.

 

세월이 무심히 가는 듯하지만 아니듯이 사람들도 세월과 함께 많은 변화를 겪게 된다. 어떤 결과를 얻더라도 과정은 힘들었을 것이다. 

다행히 웃음은 잃지 않았고 아직도 고운 얼굴을 유지하고 있는 걸 보니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둘이 만나면 서로 할 얘기가 너무 많을 것이다.

'애인 데리고 왔다' 던 남편의 말에 우리 사이가 함축되어 있다.

기댈 등이 필요하다면 내어줄 마음의 준비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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