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람을 한 번 신뢰를 하고 호감을 갖게 되면 오래간다.
물론 그 마음이 변할 수도 있지만 크게 상식을 벗어나던지 나에게 고의적인 해를 끼치지 않으면 신의를 지킨다.
주위를 살펴보니 지금까지 연락을 주고받고 만나는 사람들 대부분이 30~50년의 연륜이 쌓인 사람들이다.
유일하게 7년 사귄 띠동갑 아우가 있다.
오는 사람 안 막고 가는 사람 잡지 않는다고 말은 하면서도 사람에 대한 욕심이 유독 많았다. 스스로 다가가기도 하고 오는 사람에게는 친절했다.
좋은 사람이 주위에 많다는 걸 뿌듯하게 생각하고 돈에 버금가는 자산, 행복의 조건에 큰 비중을 차지했다.
한번 맺어진 인연은 죽음이 오거나 외국처럼 아주 멀리 이사를 하지 않으면 일생을 함께 할 줄 알았다. 그러나 세월과 함께 자의 반 타의 반 헤어지고 남은 사람은 극소수다.
35년 전 남편 모임에서 부부동반 1박 2일로 백암 온천에 가기로 했다.
남편들의 직업이 제각각 달라서 일요일로 정했다. 가장 많은 사람이 갈 수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성실한 교인 한 분이 빠지게 되었다.
출발하기 전에 그분이 오셨다.
양손에는 큼직한 봉지에 간식거리를 잔뜩 갖고 오셔서 하시는 말씀
"사모님들 모시고 처음 단체로 놀려가는데 함께 가지를 못해서 미안합니다."
유심히 보았다.
보통 키에 깡말라서 얼굴의 볼이 쏙 들어가고 눈은 퀭했지만 웃고 있었다.
외모와 상관없이 참 괜찮은 분이다!
그 당시에는 모임 회비의 사용이 지금처럼 구체적으로 명시되지를 않고 즉석에서 결정하였다.
여행을 가던지 큰 금액의 지출이 필요할 때는 참석자와 비참석자 간에 입장 차이가 있어서 얼굴을 붉히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런데 이 분은 회비를 따지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함께 가지를 못해서 미안해하는 모습은 너무 멋졌다.
왜소한 체구가 커 보였다.
그의 부인한테서 전화가 왔다.
남편이 개간한 체험농장 개소식에 참석해 달라고.
오미크론 방역에 따라 사람 모임 제한으로 299명 초청을 했는데 주차 문제가 있으니 카풀을 부탁했다.
14년 여전 남편이 고향의 오지에 땅을 개간한다고 못마땅해하던 부인의 목소리가 밝고 톤이 높았다. 농장 개소식도 생소하지만 그렇게 많은 사람을 초대를 했다고?
지인들과 연락해서 차량 2대로 나눠 타고 찾아갔다.
동네에서 좁은 길로 한참을 들어가니 안내판이 나왔다.
'감골(감동) 체험학습농장'
행사 내용
1) 1일 힐링팜스테이 체험/교육농장 개장
2) 홍의 장군서당(석문산성) 개관
3)'왕벚꽃길 조성 유래' 현판식
매화꽃과 다양한 유실수의 꽃이 진 자리에 녹음이 무성하다.
삼면이 산으로 둘러 쳐진 골짜기, 농장의 입구에서 조금 들어간 공지에 단상이 마련되고 화환이 자리를 빛냈다.
대구 시장을 비롯한 각계의 인사들, 마을 주민이나 친지들로 꽉 찼다.
꽤 긴 시간 행사가 끝나고 모 대학교수의 '만남' 독창이 있었고 대구에서 색소폰의 일인자라는 ooo의 '인연'에 이어서
'아름다운 강산' 앙코르 독주가 흥겨웠다.
오랜만에 맑은 곳에서 성실하게 살아온 한 남자의 삶을 엿보며 박수를 쳤고 함께 노래하며 색소폰 연주에 어깨를 들썩이는 좋은 감정에 푹 빠지는 행운을 얻었다.
35년 전 처음 본 멋진 그분은 금융기관에 근무를 하셨다. 고향의 땅이 외지인에 팔리는 게 싫어서 대출을 받아 그 땅을 샀다. 어려움 속에서도 초등학교 모교에 장학금을 수여하고 졸업생 전원에게 선물을 하는 정성을 보였다.
고향을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야간 대학원을 다니고 박사 학위를 받았다. 퇴직 후에는 전문대학 겸임교수를 하면서도 사회 곳곳에 봉사 활동을 했다. 종교 활동도 성실히 하셔서 순복음 교회 장로의 최고 직책을 얻게 되었다.
바쁜 생활을 하면서도 시간이 나면 농장에서 흙과 땀으로 범벅이 된 몸으로 땅을 고르고 나무를 심었다.
부인도 못마땅해했지만 주위에서도 왜 저렇게 고생스럽게 사느냐고 답답해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흔들림 없이 뚜벅뚜벅 자신의 길을 걸었다.
70의 중반~
시골의 가난한 남자아이의 성실함, 진정성, 부지런함, 이타심, 순수함의 굳은 의지가 이룬 결과다.
그런 사람의 몸에서는 아름다운 향기가 난다.
'일하는 농부가 앉아있는 신사보다 귀하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며 경작지 않는 자는 소유를 말라'
이런 글귀가 적혀있는데 이건 좀 다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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