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소방훈련

눈님* 2018. 12. 24. 19:22

  

삐이익~터어엉~~~

'아유 깜짝이야! '

"화재 발생! 빨리 대피하십시오."

관리실에서 보내는 방송이 울려 퍼졌다.

"불났대요. 옷 따뜻하게 입고 빨리 나가요! "

 

반세기도 전 중학생 시절 소방훈련  때 들은 이후 처음이다.

그 이후에도 민방위 훈련이나 공습경보에 소등하는 훈련이 있기는 했지만  미리 예고하는 훈련이라 긴장감은 없었다.

오만가지 생각이 순간 떠올랐지만 최대한 빨리 나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두꺼운 바지, 양말, 긴 외투, 지갑만 챙겼다.

약간의 금과 오래된 주화와 돈이 있었지만 생명과는 바꿀 수 없으니 포기하고 남편을 재촉했다.

"저건 훈련 연습이다. 실제 상황이라는 말이 없잖아."

그러고 보니 실제 상황이라는 말이 없긴 하네.

"그래도 빨리 나가요."

급히 서두르다 잊어버린 휴대폰을 챙기고 가장 편한 신발을 신고 나왔다.

엘리베이터는 5층에 멈추어있다.

화재 시에 정전이 되면 엘리베이터 안에서 갇힐 염려가 있어 위험하다니 옥상으로 올라가야 한다.

재빨리 옥상으로 갔으나 거기엔 아무도 없고 찬바람만 쌔앵 하다.

다른 동 옥상에도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뭐야?

아파트 단지 전체를 둘러보니 겨울이긴 하지만 너무 평화로워 보였다.

미세먼지 하나 없는 파란 하늘에 구름 몇 조각 바람 따라 흐르고 순환 도로를 오가는 차들은 제 갈 길로 달린다.

도로변의 요구르트 아주머니는 두꺼운 옷에 방한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여전히 오가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는 모습이 보인다.

아파트 버스도 다음 시간을 기다리며 제 자리에 잘 세워져 있다.

아무런 화재 흔적이 없고 더 놀라운 것은 우리처럼 뛰쳐나온 사람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까마득 아래에는 몇몇 이동하는 사람들만 보일 뿐이지 않은가.

정말 훈련이 맞는가 봐.

다행이긴 하지만 한숨이 나왔다.

현관문을 여는데 스피크 소리가 잠시 나드니 꺼져버렸다.

아마 훈련이 끝났다는 알림이었을 것이다.

 

늦은 아침 준비를 하다가 뛰쳐나갔으니 싱크대 위에 이것저것이 널브러져 있다.

깎다만 사과는 갈변이 시작되었는데 다시 깎는 손이 살짝 떨렸다.

"손이 떨리는 걸 보니 실제든 연습이든 놀라긴 했나 봐요."

"미리 연습이라고 하지 갑자기 화재라고 하니 사람들이 놀래잖아. "

남편은 평소 불성실한 경비실 직원을 원망했다.

"아닌데요. 지금껏 경비실에서 한 일 중에 제일 잘했어요. 사고는 예고 없이 일어나는데 미리 말하면 안 되지요."

"그렇긴 하네."

 

식사를 하면서 안전 불감증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우리 사회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은 예고 없이 우리에게 불행을 불러올 수 있다.

만에 하나 일어날 일에 대비해서 높은 비용을 지불하고 있지만 완전히 안전한 곳은 없다고 본다.

평소 대비하고 준비하는 습관이 우리에겐 너무 모자라는 것 같다. 

연습인 줄 알아도 비상벨이 울리면 뛰어나와야 하는데 아무도 나오는 사람이 없는데 무슨 연습이 되겠나.

사고가 나면 서로 탓하고 책임 소재 미루고 재발 방지를 막겠다며 머리를 조아리지만 어느 정부를 막론하고 달라지는 게 없다.

이젠 정말 달라져야 한다.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대충대충, 설마 그런 일이 나에게, 배고픈 시대의 사고는 버려야 한다.

OECD에 가입된 국가의 경제력, 높은 학력과 세계로 뻗어가는 문화를 갖춘 국민이라면 거기에 합당한 자기 계발과 시민의식을 갖추어야 된다고 본다.

많이 놀라긴 했어도 만약에 불이 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정리하는 계기가 되었다.

빠른 시간, 필요한 물건 준비, 대피 통로 선택은 잘했는데 진짜로 중요한 게 빠졌다.

가스밸브 잠그기 전기 차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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