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도토리

눈님* 2018. 10. 15. 23:49

산골짝의 다람쥐 아기 다람쥐

도토리 점심 가지고 소풍을 간다

다람쥐야 다람쥐야 재주나 한번 넘으렴

팔 딱 팔 딱 팔 딱 날도 정말 좋구나

 

고향 집 앞의 개울은 내 유아기 시절의 기억이 가장 깊게 남아 있는 곳이다.

나뭇잎이 물 위에 떠다니기도 하고 짙은 갈색을 띠고  돌 사이에 끼어 있거나 누워있기도 한다.

이름 모를 작은 고기들이 보이기도 하고 돌을 들면 가재가 흙물을 일으키며 재빠르게 숨기도 한다.

크고 작은 개구리들이 갑자기 튀어나와 놀라기도 하지만 운이 좋으면 언니 손에 잡혀 구워 먹으면 맛있는 간식이 되기도 한다.

좋은 기억만 있는 게 아니다.

짧은 다리로 혼자 건너는 일은 생각지도 못한다.

무서워서 언니 손을 잡던지 업혀서 건너기가 다반사다.

어른이 되어서도 가끔 물에 빠지는 무서운 꿈을 꾸기도 하는데 도저히 헤어 나오지 못하는 큰 하천의 빠른 물이었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서 찾아간 그곳은 개울이라기엔 너무 초라했다.

한 발로도 넉넉히 건널 수 있는 물줄기가 아주 작은 도랑이었다.

도랑을 건너서 조금 가면 큰댁의 대문이 있고 좁은 길을 따라 길모퉁이엔 깨감 나무가 있고 작은 동산으로 가는 길가엔 이름 모를 야생화와 풀들이 어우러진다.

5월쯤 감꽃이 떨어지면 깨끗한 것만 주워서 실에 꿰어 목걸이를 만들고 반지도 만들어 나에게 걸어주고 언니도 한껏 멋을 내며 좋아했다.

낮은 동산의 어린 소나무 등걸에 올라타서 흔들면 너무 신이 나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다가  엄마의 부르는 소리가 아득히 들리면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지금도 놀이기구 타기를 좋아하는 건 이때의 추억 때문일 수도 있겠다.

오는 길의 오른쪽 야산에는 조상들의 묘가 군데군데 있는데 언젠가 비가 오는 날 여우가 무덤을 파는 것을 언니랑 본 후로는  비만 오면 무서워하던 기억이 난다. 포수야 저놈 잡아라! 언니가 겁에 질러 내뱉는 소리였다.

조금 멀리 마을에는 저녁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울긋불긋 꽃동네가 '고향의 봄' 가사를 옮겨놓은 것 같은 곳이 내 고향이다.

 

며칠 전 중국의 발전하는 모습을 다큐멘터리로 보았는데 지금껏 생각하던 중국과는 너무 큰 차이에 말을 잊지 못하겠다.

좋지 않은 일이지만 중국인을 비하하고 무시하던 때가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었다.

우리의 서울 같은 도시가 곳곳에 계획대로 만들어지고 서부개발의 신호탄인 고속철도가 끝없이 이어지는 모습.

개발독재의 혜택을 최대한 이용하여 무섭게 뻗어나가는 것도 두려웠지만 끝없이 펼쳐지는 광활한 대륙의 장엄함이 부러웠다.

대부분 그러하겠지만 난 우리나라를 너무 사랑한다.

크루즈 여행하고 골프 치고 호화롭게 외국서 사는 것과 가사도우미를 하면서 우리나라에서 사는 것을 선택하라면 후자를 선택한다.

좁은 나라지만 국민성이 부지런하고 정도 많고 흥도 많아 생동감 넘치는 나라,남의 일에 지나친 관심이 많고 무한 경쟁에 지치고 불만이 많고 크고 작은 사건이 연일 터지고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지만 정작 큰 불의에는 들불처럼 일어나는 용감함과 지혜로움을 가진 국민이 자랑스러운 나라.

작은 동산이 있는 고향의 마을이 예쁘고, 작은 내 체구에도 불만 없고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말에 맞장구를 쳤는데 거대한 중국 대륙의 실상과 허상에 계속 신경이 쓰인다.

30여 년 전 미국 교포가 한국 근무로 2년간 이웃해서 살았는데 남편들은 출근하고 아이들이 학교를 가고 나면 둘이서 드라이브를 하곤 했다.

그녀는 한국의 자연에 푹 빠져있었다.

거대한 미국의 자연 풍경이 멋있긴 하지만 왠지 자신이 너무 초라해 보인다는 것이다.

한국의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는 겹겹의 산들, 구불구불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작은 길들이 너무 정겹고 예쁘단다.

넓은 길보다 좁은 길을 좋아했다. 간혹 오가는 차와 맞닥뜨리면 초보 운전실력에 힘들었지만 연습하는 것도 재미도 있었다.

그때는 괜한 소리라고 생각했는데 요즈음 방송하는 친구 찾아 한국에 온 외국인들에게서도 듣는 말이다.

나라마다 다르겠지만 한국에는 조금만 나가면 산으로 갈 수 있는 게 정말 좋다는 것이다. 

정말이네.

아파트를 나가 큰 도로만 건너면 산으로 오를 수 있는 환경인데 자주 가지를 않는다.

산책로를 비롯해서 자기의 체력에 맞추어 갈 수 있는 곳이 언제든 환영을 하고 있는데도.....

 

지난주 수목원에 들렸다.

그곳에만 머무르지 않고 벗어나서 낮은 산의 오솔길을 걷게 되었다.

넓은 길보다 오솔길을 걸으면 생각이 젊어지는 것 같고 무언가 얘깃거리가 있고 노래가 흥얼거려지고 낭만적인 느낌이 든다.

앗, 도토리다.

몸을 낮추어 주위를 살피니 여기저기 도토리가 보인다.

멀리 가지 말라는 남편의 말도 듣는 둥 마는 둥 길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낙엽을 헤치며 도토리를 찾아 헤맸다.

예전에도 도토리를 줍는 일은 여러 번 있었지만 도토리묵을 만들었거나 유용하게 쓰지 못하고 버렸지만 줍는 재미는 어떤 놀이보다 신선하고 즐거웠다. 

그런데 이번에는 특별한 목적이 있었다.

말을 배우는 손녀가 오면 보여줘야지.

두 손으로 크게 한 움큼이나 되는 양을 주었다.

 

기대와는 달리 손녀와 만나지 못하였고 도토리를 바라보면 후회가 된다.

멧돼지들은 먹이를 찾아 마을이나 가정집으로 출몰해 사람들이 놀라고 추격전이 벌어지는 방송이 나왔다.

산짐승들의 겨울 먹이를 사람들이 가벼운 생각으로 가져온 것도 한몫했는 것 같다.

작은 양이지만 산책 나가면 산에 뿌려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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