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행시

행주산성 행주대첩

눈님* 2010. 8. 17. 15:30

행주산성에서

글/눈님

 

행주치마 아낙네들 알뜰살뜰 고운모습

주저없는 용감함은 한국여인 감춰진멋 

산천초목 유린하는 왜놈들의 무력침략

성난백성 착한백성 불의에는 용서없다

행주산성 토담쌓듯 지혜모은 권율장군

주섬주섬 담은돌은 행주대첩 초석되고

대대손손 후손들의 자주국방 귀감되어

 첩첩산중 외세야욕 뿌리뽑을 완전통일 

 

 

 

권율장군 동상 

 

토성 가는 길 

 

 

 

 

 

 

 

남쪽으로 흐르는 한강 

 

 고성(古城) 에 피어난 버섯

 

 

 

 

행주대첩 전승 이끈 오산 독산성 복원된다
<최진연의 우리 터, 우리 혼>임진왜란 명장, 권율장군 혼 서린 호국유적
최진연 기자 (2009.07.24 10:31:39)
 
 
수원에서 1번 국도를 따라 오산 방향으로 가다가 병점 지하차도를 지나면서 마주보이는 높은 봉우리가 독산성이다. 산 정상에 테를 두른 듯 석축으로 쌓은 독산성은 역사상 숱한 시대를 거치면서 중요한 군사요충지 역할을 했다.

◇ 독산성 모형도

특히 임진왜란 당시 전라도 관찰사 겸 순변사였던 권율장군이 2만 여명의 근왕병을 이끌고 산성에 주둔하면서 한양으로 진격하는 외적의 진로를 차단한 산성으로 유명하다.

독산성 전투 승전은 40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생생하다. 북진하던 왜군 수만 명이 산성 아래서 장기간 포위한 체 우리 군이 투항하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군사들은 독산성을 사수하기로 굳게 다짐하면서 군사를 보내 적을 위협하고 진지도 불태웠지만, 적은 물러서지 않았다.

◇ 쌀로 말을 씻는 장면의 그림

시간이 장기간 지나자 우리군은 식량과 식수까지 고갈 됐다. 더 이상 항전은 불가능했다. 군사들의 사기도 떨어지면서 성이 함락위기에 놓이자 지략가인 권율 장군은 기습공격을 위한 작전에 착수했다.

위기를 느낀 권율은 계책을 세웠다. 당시 독산성은 잡목이 없는 벌거숭이 산등성이었다.
성 밖에서도 내부를 훤히 볼 수 있을 정도였다. 권율장군은 산성에 물과 식량이 풍부한 것처럼 위장 전술을 쓰기로 했다.

부하에게 적들의 관찰이 쉬운 장소에 말을 세우게 하고, 흰쌀로 말에게 목욕시키는 장면을 연출했다. 멀리서 이 장면을 목격한 왜장은 성안에 식량과 물이 충분한 것으로 착각해 산성 함락을 포기하고 퇴각하는 왜군을 기습공격 해 수만 명을 살육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산성이다.

◇ 독산성의 서문

미사일이 태평양을 넘나드는 요즘 시대에 웃음거리 지략이지만...
이 말을 씻은 높은 곳이 현재 세마대(洗馬坮)이다.

독산성은 임진왜란 중이던 1594년 선조 27년, 인근 백성들의 혼연일치로 4일 만에 성벽을 보수 정비했다. 그리고 이듬해 다시 여장과 포루. 총안을 축조하면서 항전에 대비했던 호국유정이다.

◇ 이승만 대통령 친필인 세마대 현판

그 후 공신 변이중에게 화포를 만들도록 해 행주산성싸움에서 까지 대승을 거두었다. 민,관,군의 유비무환 정신이 풍전등화 같았던 나라를 지켰다. 독산성 전투의 승리는 곧 행주대첩의 승리로 이어졌다. 독산성의 함락은 결국 나라전체의 위기로 간다는 것을 권율장군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임진왜란 후 조정에서는 산성 정상에 세마대를 장엄하게 세우고 병기창을 두어 무기를 쌓아두고 군사들에게 무예연습을 시켰다. 하지만 독산성은 식수가 늘 부족했다. 군사들의 장기 주둔이 어려워지고, 산성 수호기능마저 잃으면서 역사의 현장 독산성은 폐성되고 말았다.

조선후기 정조는 1792년에 부친인 사도세자의 묘를 독성산 서족 4km 거리의 화산으로 옮겼다. 수원화성을 축조하면서 이곳에 세마대를 증수하고 성벽도 새로 고쳤지만 한일합방 후 일본인들이 과거 아픈 역사의 보복차원에서 독산성 세마대의 누각과 무기창고를 부셔버렸다. 그 후 1957년 8월 15일 이승만 대통령이 세마대 옛터에 다시 누각을 복원하고 현판 액을 달았다.

독산성의 초기축성 세력이 누구인지 기록은 없다. 다만 백제 때 토성과 목책으로 기반을 다진 것으로 추정 할 뿐이다.

◇ 독산성의 북문

통일신라. 고려를 거쳐 조선시대까지 활용됐으며 현재의 성벽은 조선 정조 때 개축됐다. 성의 둘레는 3.2km. 성벽은 온전하며 외벽만 석축. 내벽은 흙으로 쌓았다. 성벽높이는 2~4m이며. 5개의 성문과, 치성 7곳이 설치됐다. 북쪽에는 곳곳에 건물자리와 여러 층의 석단이 현재 남아 있다.

◇ 독산산성의 남쪽 치성

오산시는 2015년까지 독산성 성곽과 행궁을 복원하고, 남은 유산을 정비해 산성의 본래 모습을 되찾을 계획이다. [데일리안 경기=최진연 기자]

지정 : 사적140호
위치 : 경기도 오산시 지곳동
 
 
 
 
 

대한민국이 자랑스러운 것은
나라는 작아도 얼마나 문화 유산이 많은 지
큰 자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미국 역사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지요.
그렇기에 문화 유산은 잘 보존하는 것이 당연하지요.

한국이 더 빨리 성숙한 국민과 나라가 되려면
미국 및 선진 국가에 의지하지 말고
자주 국방을 할 수 있는 강인한 선조들의 정신을 본 받아야하지요.

문화유산이 얼마나 소중한지 일반 사람들이 느끼기 시작한 것은 오래되지 않아요.
아마도 생과 사를 가르는 아픈 역사, 가난을 물리치는게 급했던거지요.
선조들의 지혜와 멋을 아는 문화민족의 후예라는게 뿌듯~

말로만 자주 국방을 외칠게 아니고 국력이 뒷바침이 되고
정신적으로 자주성을 가져야 하는데 그렇지를 못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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