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낯선 길을 헤매는 즐거움

눈님* 2025. 4. 28. 16:10

'낯선 길을 헤매는 즐거움'

14년 전 행시로 썼는 제목이 생각난다.

늦었지만 실천에 옮겨보자.

 

어느 티벗 님의 포스팅으로 알게 된 능수도화가 늘어진 도진리 무릉도원

어릴 때 고향에서 보고 자란 늘어진 수양버들의 기억 때문인지 꽃도 휘휘 늘어진 능수벚꽃, 능수매화가 더 멋져 보였다.

도화꽃이 아름다운데 늘어진 멋진 자태를 보는 순간 여기는 꼭 가봐야 해, 결심은 섰다.

검색을 해보았다.

누구랑 갈까?

 

무엇을 하든 결이 맞는 사람이 있다.

여행이나 공연 관람, 전시, 게임, 드라이브, 산책, 맛난 음식, 음주, 봉사, 일 등등

동반자와 결이 맞으면 기쁨은 배가 된다.

여행은 아들과 셋째 언니가 결이 맞다. 구경할 곳 상세히 보고 감탄하고 사진 찍으며 여유를 즐긴다. 이왕 왔으니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자는 주의다.

대충대충 할 것 같으면 귀한 시간 내어서 왜 가냐고.

셋째 언니랑 가기로 결정했다. 다행히 남편도 후배랑 약속이 되어서 홀로 남겨두는 부담에서 자유롭다.

 

1) 606번 대구 시내버스~~ 고령 시외버스터미널~~ 고령농어촌버스~~ 능수도화 마을

2) 서부 시외버스 정류장~~ 고령 시외버스터미널~~ 고령농어촌버스~~ 능수도화 마을

검색으로 대충 알고 도전해 보는 첫출발, 2) 번을 택했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당당하게 행동하는 동생을 보는 언니는 나만 믿고 있는 눈치다. 

고령군은 고등학교 절친이 쌍림면에 살았고, 남편의 고향이 다산이라는 것 외에는 아는 게 거의 없다.

무엇이든 모르면 물으면 된다는 확고한 신념에 약간 들뜬 기분.

 

도착해서 본 고령군은 생각보다 훨씬 협소했다. 자신만만하던 기운은 없어지고...... 낯설기만 하다.

매표창구에서는 도진마을을 모른다고 하니 난감~~ 능수도화마을도 모른다고요?

몇 사람을 통해 알았는데 우곡면이라 했다. 창구 직원에게 우곡면이라고 하니 자기도 검색으로 도진리를 알았다며 친절을 베푼다.

생각보다 많이 알려지지 않은 모양이다. 인터넷에 능수도화마을이 올라오니 갑자기 유명한 곳이 되었는 것 같다고 한다.

대부분 승용차로 다니지 우리처럼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으니 창구에서는 모르는 게 당연한지도 모른다.

 

1시간 30분을 기다려야 한다. 점심을 먹고 가는 게 맞을 것 같은데 터미널에는 허름한 식당이 하나 보이는데 가고 싶지가 않다. 

간단히 먹고 나가서 맛있는 것 먹자.

입구에 테이블 2개가 있는 작은 카페에서 컵라면을 주문했다. 김치까지 주는데 언니는 너무 맛있다며 좋아한다. 밖에서 이렇게 먹는 건 처음이라며 신기해하는 모습이 내일모레 팔순이 될 사람인지 믿기지 않는다.

여기까지는 그런대로 낯선 길을 잘 왔는 것 같다.

 

버스에는 7명이 탔는데 50대 정도로 보이는 부부가 능수도화마을로 간다는 걸 알았다. 방송에 내릴 곳을 안내를 하는데 마을 이름이 낯설고 잘 들리지를 않았다. 젊은 부부가 내리면 따라 내릴 요량으로 긴장을 늦추었다.

방송에 도진이란 소리가 들리고 할머니 한분이 내릴 준비를 하고 계시는데 젊은 부부는 전혀 내릴 생각을 않는다.

행아, 여기서 내려야 될 것 같은데. 당황하니 할머니도 여기가 도진이다, 내리라는 독촉에 급하게 내렸다.

화려한 사진과는 너무 다른 곳, 젊은 부부도 버스도 벌써 가버렸다.

 

길가에 제대로 모양을 갖추지 못한 어린 능수도화가 마지막 힘으로 버티고 있는 걸 보니 이곳이 맞는 것 같기도 한데......

입구로 들어서니 연록의 능수버들이 반긴다. 꽃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멋스러움이다.

곳곳에 능수도화가 초라하게 스러지고 있는 모습이 안타깝다. 날짜를 미룬 탓인데 만개했을 때를 상상하며 내년을 기약한다.

아름드리나무들과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들이 있어서 무릉도원이 아니라도 좋은 곳이다. 

 

잠깐, 고령 가는 버스 시간을 알아봐야 한다. 버스에서 내릴 때 물었어야 하는데 급하게 내리다 놓쳤다.

보건소, 역사관이 이곳에 있긴 한데 휴일이라 사람이 없고 현지인이라야 알 수 있다는데 관광객뿐이다. 뒤편에 있는 노인 쉼터를 겨우 찾았다.

세분의 할머니와 대화를 했지만 소통이 전혀 되질 않는다.

언니랑 정류장에서 무작정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햇볕이 따가워서 그늘로 가고 싶어도 버스가 지나가 버릴까 봐 그럴 수도 없다.

방음벽이 정류장보다 앞으로 돌출이 되어서 나서서 보아야 한다. 전봇대 그늘이 그나마 햇볕을 가려주고 언니라도 기댈 수 있어서 다행이다.

 

사람도, 오고 가는 버스도 전혀 보이 지를 않으니 차츰 불안해지고. 

엄마 하고 싶은 것 다 하라는 효자 조카를 부르면 달려오겠지만 캠핑을 갔다고 하니 난감하다.

택시를 이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찾아보려니 보안경 밖에 없다.

지나가는 차라도 세워볼까?

"행아, 아무도 보거나 듣는 사람 없으니 노래 불러보자. "

"나이가 들면 좋은 차에 언니들 태워서 놀려 다니며 호강시켜 주겠다고 약속했는데 길에서 생고생을 시키네, 이게 뭐람."

 

처음 30분은 초조했는데 시간이 지나니 화가 나지도 않고 언젠가는 버스가 오겠지, 이것도 지나면 추억이 될 거다에 의견 일치.

"역시 여행의 동반자로 우리는 궁합이 맞다 그자."

"어, 저기 젊은 부부가 온다." 반가웠다.

동병상련인가, 그들도 정말 반가워하며 수다가 늘어졌다.

우리가 내린 곳이 능수도화마을이 맞고 그들은 모르고 더 멀리까지 가서 지금껏 걸어왔다고 한다.

바로 그때 버스가 왔고 우리는 두시간 정도를 무작정 기다렸는 것 같다. 터미널에서 다시 606번으로 갈아타고 대구로 오게 되었다.

하루의 소소한 얘기들이 끝이 없이 많지만 줄여야겠다.

 

도움 없이 첫 도전에 실패했지만 얻은 것도 많다.

장소, 교통편 등 충분한 사전 지식

이론과 실기가 다름을 또 한 번 느꼈고

당황하지 말고 정확하게 물어야 원하는 대답을 얻을 수 있다는 것도 새겨야겠다.

하룻밤 지나고 언니에게 수술한 다리 괜찮으냐고 물었더니 더 팔팔해졌다고 한다. 

"생각하면 재미있잖아." 음성도 유쾌하다.

"나도 그래."

"앞으로도 어디던 가자!"

 

 

 

 

 

낯선 길을 헤매는 즐거움

글/눈님

낯 설은 낮달 손짓 무작정 나선 발길

 

선한 눈 솜털 구름 길동무하자 하네

 

길 찾는 이정표는 손으로 가리우고

 

을밋한 시간 잊고 자유를 만끽하자

 

                  헤벌레 양 길가에 늘어선 해바라기                  

 

매미의 짝을 찾는 소리도 앙팡지다

 

는다는 삶의 푸념 콧노래 흥얼대면

 

즐거워 초행 길도 낯설지 아니하다

 

거미줄 미로에서 잠시의 탈출에도

 

움츠린 가슴 열려 내밀고 싶은 두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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