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나의 며느리

눈님* 2024. 7. 11. 00:00

너무 소중하고 예뻐서 글로 쓰고 싶어도 자제를 했다.

언젠가 내가 홀연히 이 세상을 떠나도 남아 있을 이 공간에 남기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주 만나지 못하고 통화도 잘 못해서 나의 마음을 완전히 전할 수가 없었다.

짧은 눈빛만으로도 마음 전달이 가능하지만 그것으로는 뭔가 부족함을 느낀다.

지금이야 바쁘지만 나의 나이쯤 되면 시간의 여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잊었던 오래된 사진첩을 보면 흐뭇해지는 것처럼 아이들도 그러기를 바라면서.

 

'학력 좋고 똑똑하고 착한 아이가 좋다'는 바람이 있었다.

학력 짧음에 대한 아쉬움이 늘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몇 가지나 장점을 더 가졌으니 며느리 복은 터졌는 거다.

더구나 내가 갖지 못한 욕심나는 점들을 갖고 있으니 다음 생에 태어나면 저렇게 살아봐야지 벼르기까지 한다.

상냥하고 부지런하고 도전의식과 책임감 강하고 에너지가 넘쳐 함께 있으면 주위 사람도 기를 받게 된다.

성깔과 카리스마도 있는 것 같은데 험한 세상 살아가려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피아노 중급의 고비를 넘지 못하고 그만둔 걸 많이 후회했는데 며느리는 피아노를 잘 친다.

내가 막글로 긁적이는 일상을 적는데 비해, 논리 정연한 사설이나 칼럼을 신문에 게재하기도 한다. 시간이 난다면 드라마 작가에 도전하고 싶다는 욕심도 낸다.

나는 힘들고 어려운 일은 피하는 스타일인데 극복하고 노력해서 성취하는 끈기도 놀랍다.

운동 신경도 발달해서 수영, 발레, 서핑등 다양하게 즐기지만 아이스하키는 우리나라 최초 국대가 될 뻔했다고 한다. 좌충우돌 도전기도 재미있는데 생략하기로 하고, 지금도 아무리 바빠도 운동은 빠뜨리지 않는다.

이쯤이면 며느리는 취미와 재능 부자다.

"오빠는 먹는 것도 예쁘게 먹어요"(식탁 예절)

"제가 아는 남자들 중에 마음씨가 제일 착해요"

"어머니 잘 키워주셔서 고맙습니다."

말까지 예쁘게 하니 천 냥 빚이 있어도 염려 없고 말로써 먹고살아도 될 것 같다.

 

며느리가 방학을 이용해서 2주간 독일, 세미나에 간다고 한다.

혼자가 아니고 제자 십여 명과 함께. 

제자들에게 견문을 넓혀주기 위해서 숫자를 많이 늘였다고 한다.

들으니 가슴이 저린다.

"세계 어떤 곳이라도 기회가 있으면 가고 싶지만 독일은 가고 싶지 않은 유일한 국가다"라고 말했던 걸 기억하기 때문이다.

늦게 진로를 바꿔서 수학하고 연구한 곳이 미국, 영국, 독일이었다.

유독 독일의 대학에서 연구할 때 차별을 많이 받았다는 것. 동양인의 작은 눈과 키, 갈색 피부를 가진 여자아이라고 얼마나 서러움을 당했길래 가슴에 맺혔을까? 

남북, 동서 분단의 동병상련과 검소, 성실, 합리적인 사고 등의 국민성을 가진 독일을 좋아했는데 실망이 컸다.

 

작은 아이는 그들의 인종차별에 굴하지 않고 노력한 결과 당당히 카이스트에 스카우트되었다.

알찬 강의를 준비하고 인재교육과 후배 양성에 열정적이다.

새벽까지 연구실에서 보내기 일쑤고 논문 욕심도 대단하고 국내외 세미나 참석도 열심이다.

낯선 독일, 비 내래는 어두운 밤, 캐리어 하나 끌고 도착한 그곳, 눈물을 삼키던 그곳을 방문하게 되니 만감이 교차할 것이다.

금의환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서러움을 주던 교수는 타계하셨다고 한다.

살아계셔서 멋지게 성장한 아이의 정중한 인사를 받았다면 어떤 심정이었을까?

작은 꼬맹이는 '우아한 복수'를 할 수도 있었을 테고.

'우아한 복수'라는 말은 내 며느리를 힘들게 했던 그들에게 내 나름의 소심한 복수심에서 지어낸 말이다. 

바꾸어 생각해 보면 감사할 일이기도 하다.

그런 수난이 있었기에 더 노력하고 단단해졌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작은 체구에서 넘쳐나는 성장 스토리를 보면 대견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그렇게 쉼 없는 열정적인 도전은 죽어도 못 한다고 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느슨하게 살아온 나, 한번 태어난 인생 반밖에 살지 못하고 가는 것 아닌가 의구심이 들 때는 더더욱 그렇다.

며느리의 역할 욕심은 절대 내지 않으려고 한다.

힘들게 공부한 그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도록 응원해 주는 시어머니가 되련다.

건강히 잘 다녀오기를 비는 마음에서 적어보는 응원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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