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운전면허증 반납

눈님* 2023. 12. 29. 02:13

운전면허증 갱신, 반납?
한 달을 고민하다가 마음을 굳혔다.
주민센터에 반납하고 나오는데 몸의 일부, 
아니 마음이 더 허전한 느낌이다.
정적인 스타일인데 운전은 진심으로 즐겼다.

1987년 하루도 빠짐없이 자동차 연습장을 드나든 결과 1회에 면허증을 땄다.
아이보리색의 르망, 내부 시트까지 같은 계열의 색이니 화안하고 장난감처럼 예뻤다.
매일 반짝반짝 닦고 하루에도 몇 번씩 드나들며 바라만 봐도 좋았다.
"신발을 벗고 타야 되겠네, " 
친구들은 탈 때마다 미안하고 고마워서 던지는 말이 그냥 좋았다.
차 사랑은 계속되었고 여러 번 차량 교체를 하면서 한 발짝도 떨어질 수 없는 몸의 일부가 되었다.
아무리 화가 나도 운전석에 앉으면 마음이 편하고 음악을 들으며 드라이브를 하면 기분전환이 된다. 

왕초보시절 아들딸을 태우고 운전을 하다가 사거리 신호등에서 주황색 신호에 정지를 했다.
뒤따라 오던 버스 기사님이 차에서 내려오셔서 고함을 질렀다. 겁이 나서 창문을 열지 않았고 어린 딸은 너무 무서워 차라리 차가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비 오는 날, 깜깜한 밤 운전에 중앙선을 침범해서 달렸는 아찔한 기억
시내 한복판 사거리 교차로에서 파란불에 진입했는데 정체되어 빠져나가지 못한 상태인데  신호위반으로 딱지 끊겨 억울해 서 울었던 일
선팅이 짙다고 걸렸던 일 (안전띠도 꼭 하고 운전 규칙 잘 지키는데 선팅은 생각도 못 했다며 주절주절... 주의로 선처 받음)
외곽지에서 멀리 돌아가기 싫어서 불법 뉴턴하다 걸렸던 일
(고의로 위반한 게 부끄러워 말 한마디 못하고 바로 면허증 내밀었다)

좋았던 기억도 많다.
복잡한 곳에서 뉴턴을 잘 못하니 다른 차가 후진을 해서 공간을 확보해 주시던 매너남, 
어린 딸은 저런 사람에게 시집갈 거라고 했다.
눈 내린 빙판길에서 360도 돌아 미끄러져 넋을 잃었다. 이 때문에 주위 차들이 놀랐을 텐데 한 분이 차에 오셔서 빙판길 위험 가르쳐 주시며 화가 아닌 위로를 해주시던 매너남
서울 가는 길에 타이어 펑크, 고속도로교통경찰, 안전지대로 차를 세우게 하고 지나가는 서비스 차량을 세워서 바퀴 교체 및 안전점검까지 해주셨다.
고마움에 작은 봉투를 드렸는데 끝까지 사양하시고 안전하게 진입까지 도와주셨다. 

'민중의 지팡이'를 만난 기쁨에 여행 내내 즐거웠다.
경찰서 게시판에 고마운 마음 전했다.
제일 놀랐던 일은 고속도로에서 일어난 사고다.
부산 친정 다녀오는 밤길에 뒤차에 밀려 낭떠러지로 떨어졌다. 1차로 전나무를 넘어 뜨리고 아래쪽에 우거져 있는 탱자나무 덤불에 차가 얹혔다.
가해자는 운전미숙인 젊은 아이들이었고 다친 곳이 없어 천만다행, 차는 폐차했다. 

나의 愛馬와 반평생을 함께 하는 동안 희로애락의 순간들이 너무 많았고 행복했다.
시력에 자신이 없고 자주 사용할 일이 없다며 차를 없애고 나니 가끔은 불편했다.
자율주행이 고도화되고 안전해지면 그때 다시 하면 된다며 운전을 좋아하는 엄마를 딸은 위로했다.
그때는 내 나이가?
다닐 곳은?
면허증 반납하지 말고 갱신하라며 화를 내고 설득을 하는 남편,

고집쟁이 나
날짜는 재깍재깍 다가오고~~ 
꼭 필요하지 않은 모든 것들, 하나하나 내려놓는 용기가 필요한 나이다.
그러나 머리와 가슴은 일치하지 않는다.
오늘 저녁 위로주 한잔 해야 되지 않나요?

 

 

반납하기 전 미련 때문에 찍어 둔 마지막 면허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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