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은 어버이날을 비롯해서 가정의 날이다.
평소 챙기지 못했던 어른이나 돌아가신 부모형제를 다시 그려보기도 한다.
큰언니는 우리에게는 엄마와 같은 존재였다.
언니의 생일이 오월에 있다.
그동안 코로나로 무심했었는데 언니들이랑 묘소에 가보기로 했다.
성주에 있는 선산에 형부와 함께 안식처가 있다.
조카가 운전을 했지만 시골 산의 지형을 찾기가 어려워 그곳에 살고 있는 형부의 여동생과 만나서 함께 가기로 했다.
그 사돈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형부가 워낙 정이 많은 분이라 처가에도 잘하고 많은 처제들, 하나뿐인 여동생도 너무 좋아했다.
사돈이지만 가끔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만 해도 사회생활에 서투른 나의 눈에는 그분이 곱게 보이지 않았다.
새까만 얼굴에 볼 때마다 술기운이 있었고 탁한 목소리에 사돈의 이름을 거침없이 부르는 게 낯설었다.
오늘은 언니들과 조카와 큰언니 앞에서 재롱잔치도 하고 편하게 놀 요량이었다.
그런데 길을 가르쳐 주고 눈치 없이 오랫동안 함께 있으면 어쩌나 혼자 꽁하고 있었다.
수 십 년이 지났지만 멀리 보이는 사돈을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차에서 제일 먼저 뛰어내려 두 손을 잡았다.
"아이고 JS이 아이가!"
사돈은 여전하시다.
"맞아요!"
나만 공손해졌다.
너무 좋아하던 형부를 만나는 것 같았다.
생김새 하나하나가 어쩌면 형부를 이렇게 쏙 닮았을까.
여장부같이 시원시원한 소리나 행동에 내가 살짝 반할 것 같다.
나만 늙어졌지 80세가 훨씬 넘은 사돈은 허리만 굽어졌을 뿐 예전이나 별로 변하지를 않은 것 같다.
"언니는 천사였다."
"집안이고 동네서 소문났다."
"오빠가 나를 혼내면 항상 내편을 들어줬다."
"오빠가 바람을 피웠을 때 오빠와 언니 몰래 여우 같은 X을 찾아가서 난리를 쳤는데 그 여자가 오빠에게 일러서 많이 맞았다 아이가."
여기서 모두 빵 터졌다.
걸쭉한 입담이 얼마나 구수하고 재미나는지 사돈의 입만 바라봤다.
말 잘하는 넷째 언니와 둘이서 찰떡같이 맞장구를 치며 큰언니 얘기로 끝이 없다.
셋째 언니와 나는 기분이 좋아서 술을 몇 잔이나 먹었더니 나른해지고 끼어들고 싶었다. 숨 쉴 사이 없이 이어지는 얘기에 오른손 번쩍 들고 '스톱!"
"고백할 게 있어요."
"옛날에는 사돈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나이가 지긋해지고 술을 배우고 나니 세상이나 사람 보는 눈이 달라졌어요."
"지금 뵈니 꼭 형부를 만나는 것 같고 너무 멋있고 좋아요."
"하이고, JS이 HS이 MS이 나는 다 좋아한다."
여전히 사돈 이름 막 부르며 예를 갖추지 않는 사돈이 전혀 이상하지 않고 친숙하게 느껴진다.
착하고 선한 사람이라고 얼굴에 쓰인 사돈의 사위도 함께 했다.
장모의 비서 같기도 하고 아들 같기도 하다.
우리에게 줄 참외를 사서 차에 싣고 왔다.
(시중에서 파는 참외는 가짜 성주 참외가 많다고 한다)
시골 인심 야박해졌다고 하지만 아직 정이 남아있음을 본다.
아침에 출발할 때는 준비해 둔 걸 여러 가지 빠뜨려서 다시 집으로 가기도 하며 분위기 이상했다. 예전 같았으면 서로 탓했을 수도 있었는데 이제는 실수나 잘못은 무조건 나이 탓으로 돌리면 된다.
실수가 웃을 일도 아닌데 세 자매는 눈물이 나고 배가 아프도록 웃었다.
화가 날 일도 웃음으로 바꿀 수 있는 지혜가 나이와 비례하는 것 같아 참 다행이다.
엄마나 이모들의 정신없는 오락가락 행동에 화가 날 만도 한데 많이 참아준 조카도 함께 나이가 들어가나 보다.
소중한 시간 볼 수 있을 때 무조건 시간을 내자며 약속하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사진을 한 장도 찍지를 못했다.
사돈과 함께 한 사진을 남겼어야 하는데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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