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힘으로 산다던 우리의 부모님 세대
하얀 쌀밥이 부의 잣대가 되기도 했던 그 시절
큰 밥그릇에 수북하게 담은 밥은 힘의 근원이었고 마음마저 여유로워지던 순수의 시절
아버지나 손님이 남긴 흰쌀밥은 어린 나의 몫이었다.
거친 보리쌀이 많이 섞인 밥보다 흰쌀밥이 너무 부드럽고 맛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시절,
아버지나 집에 오신 손님들은 밥을 조금 남기는 걸 미덕이라 생각하셨다.
지금은 남기는 게 실례가 되고 남은 밥은 그대로 음식물 쓰레기로 폐기 처분된다.
흰쌀보다 보리쌀의 값이 비싸고 흰쌀밥보다 보리밥이 특별식의 대우를 받으니 세상만사 시간과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하니 한순간의 일들로 목맬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든다.
어느 날부터 남편은 탄수화물 섭취에 예민해졌다.
tv나 카톡, 유튜브 등 곳곳에 건강 관련 정보가 넘쳐나니 모두가 반 의사가 되어 건강지킴이로 변한 것 같다.
다른 건 남편 스스로 알아서 하면 좋은 일이지만 음식에 관한 정보는 주부들을 많이 힘들게 한다.
식자우환(識字憂患)이다.
예전부터 간 맞춤에 늘 신경전을 벌이다 이젠 어느 정도 타협이 되었는데 탄수화물이란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건강에 신경을 쓰는 건 좋은데 너무 집착하는 것도 병이라는 생각이 들고 음식을 만드는 아내 입장에서는 짜증도 난다.
일 년에 한두 번, 가끔 일어나는 일이면 참지만 하루 세끼 식사를 하는데 그때마다 같은 말이 반복되니 참을 수가 없다.
특별한 지병이 있어서 음식 조절이 필요한 사람은 철저히 지켜야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편식하지 말고 골고루 맛있게 잘 먹는 게 건강에 좋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내가 교육받을 때와 지금은 다소 다르다는 걸 알고 나름대로 건강 생각하며 균형을 이루고 골고루 섭취하려고 많은 신경을 쓰지만 무심한 남편을 잘 모르나 보다. (육체노동이 다반사일 경우의 단순한 영양분 비율과 다양한 직업 분포의 세분화된 영양분 비율)
하루 한두 끼는 밥으로 해결하니까 특히 밥에 신경을 많이 쓴다.
쌀, 현미쌀, 검정쌀, 귀리, 검정콩, 흰콩, 렌틸콩, 여러 가지 잡곡을 혼합한 혼합미등 열 가지가 넘는 것 같다.
(두부가 준비되어 있을 때는 콩의 비율을 줄인다.)
주부로서 하루 일과 중에 제일 비중을 많이 차지하는 것이 식사 준비하는 것이다.
남편은 키에 비해서 여윈 편이다.
배가 나오면 절대 안 되며 몸이 가벼워 좋다고 하지만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싫다.
체중이 많이 나갈 때보다 20Kg이나 줄었으니 인상이 달라져 버렸다.
너무 여위면 면역력이 없어진다며 때마다 밥의 양을 조금 늘이라고 해도 그럴 때면 꼭 한 숟갈 덜어내어 버린다.
탄수화물 많이 먹으면 배만 나온다고.
설 준비로 '새싹'을 박스로 샀다.
느끼한 음식에 샐러드용으로 필요하지만 육식을 좋아하는 며느리는 야채를 잘 먹기 때문이기도 하다.
양이 풍족해 회는 없지만 김가루 많이 넣고 맛있는 초장으로 간단 비빔밥을 하기 위해서 하얀 쌀밥을 했다.
밥솥 뚜껑을 여는 순간 저절로 눈이 감긴다.
아, 구수한 쌀밥 맛!
"빨리 와보세요."
"무슨 일인데?"
주걱으로 떤 밥이 남편 입에 닿자마자
"와 맛있다."
큼지막한 비빔밥 그릇에 평소처럼 밥을 푸니
조금 더, 또 조금 더~
ㅎㅎㅎ
탄수화물이 싫은 게 아니라 잡곡밥이 맛이 없었네.
있는 잡곡은 조금씩 먹고 다음에는 쌀밥만 먹어요.
우리가 얼마나 살지는 모르지만 먹고 싶은 대로 먹자며 의기투합한 날.
오랜만에 쌀밥 먹고 설음식 준비에 올인~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할머니 집은 자연적이네요! (0) | 2022.02.10 |
---|---|
설날 (2) | 2022.02.05 |
반가운 전화 (2) | 2022.01.24 |
아내 말이라도 잘 들어주니 데리고 살지 (1) | 2022.01.21 |
꽃 화분 (2) | 2022.01.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