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설날

눈님* 2022. 2. 5. 13:13

설날이 돌아왔지만 오미크론은 극성을 부린다.

백신 접종률이 높고 위험성은 낮지만 가급적 비대면을 권하는 방역당국의 안내다.

국민들은 오래 계속된  방역지침에 피로하고 둔감해졌다. 

특별히 몸을 보호해야 될 사람이 있는 경우 외에는 각자가 알아서 설을 보내는 모습이다. 

우리 집도 평소에 자주 만나지 못하고 남편의 양력과 음력 생일이 겹치는 해이고 설날과도 겹쳐 모두 내려오기로 했다.

이런 경우가 38년 만에 있는 현상이라니 신기하다. 

일생에 2~3번은 돌아오는데 한 번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명절이 오면 구석진 곳 정리하고 유리 닦고 이부자리 준비, 음식 준비는 기본적으로 정해진 일이다.

힘은 들지만 메모지에 깨알같이 적어서 준비를 하고 완성하면 동그라미를 그리는 재미도 있다.

 

아들 부부는 그믐날 내려왔다.

두 사람이 합쳤을 뿐인데 시끌시끌하다.

며느리 특유의 하이톤과 친화력이 금방 분위기가 바뀌었다.

정성 들여 마련한 음식과 술, 준비해 온 케이크로 생일과 설날의 전야제를 치렀다.

설날에는 세배를 받고 세뱃돈을 주었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좋아하는 모습은 그냥 사랑스러운 아이다.

중년에 접어든 그들에게 부모에 대한 작은 추억거리라도 만들어주고 싶고 나이가 들어 자식에게 받기만 하는 것보다 함께 나누는 것이 더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아들은 아버지 생일 선물로 새 휴대폰으로 교체해서 꼼꼼히 설치를 하고 엄마의 휴대폰에 찍은 사진이 PC로 옮겨지지 않는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며느리는 무엇이든 안 되는 것이 있으면 말씀하시라며 애쓰고 있는 남편을 착하다고 격려하며 힘을 보탠다.

끓여둔 미역국은 맛도 보지 못하고 떡국으로 식사를 하고 처가로 출발했다.

 

고속도로는 생각보다 막히지 않았다며 조금 일찍 딸 가족이 왔다.

훌쩍 자란 손녀를 보니 세월 빠름을 또 느낀다.

이곳저곳 다니며 신기한 듯 만져보고 물어보며 사물을 보는 눈이 예전보다 훨씬 예리하고 관심이 많아진 걸 느낄 수 있었다.

이번에는 2박 3일 일정이라니 느긋하다.

한복을 입고 세배하는 손녀의 차림새가 곱다.  

가능하면 세배를 할 때는 받는 사람도 한복을 입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는 전야제였고 오늘은 정식 파티다.

깜깜하게 불을 끄고 케이크의 촛불로 밝혀진 분위기는 따뜻한 정으로 가득하다. 생일 파티에는 역시 어린아이가 있어야 더 화려한 것 같다.

얼굴 마주하면 할 얘기가 많고 많은데 손녀가 가끔 대화의 흐름을 끊었지만 그래도 괜찮다.

이번 설에 특별한 일은 사위와 딸에게 제법 큰 선물을 했다는 것.

마음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던 일을 발표했다.

네 사람 모두의 마음이 다를 것이란 생각이지만 따뜻함은 같을 것이다.

 

다음 날은 포항 바닷가로 드라이브 가기로 결정했다.

너무 잦게 캠핑을 다니는 손녀는 밖으로 나가는 걸 싫어하며 집에서 놀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할머니가 집순인데 우리 원이가 할머니 닳았네. 할머니도 원이랑 집에 있고 싶지만 오늘은 할아버지 생신 때문에 왔으니 할아버지가 원하시는 대로 하는 게 맞지 않겠어?" 겨우 설득했다.

 

국내 최대 체험형 조형물, 포항의 환호공원에 있는 스페이스 워크.

포스코에서 가로 60m  세로 57m  높이 25m 우주 공간을 연상하는 조형물을 건립해서 포항시에 기부

6.5 지진에 대비했고 제한 인원은 250명, 포철에서 생산하는 탄소강과 스테인리스강을 사용

멀리서 바라봐도 호기심과 대단함과 공포심이 함께 떠오르는 설치물은 처음 보는 광경이다.

차가운 날씨에 산바람, 바닷바람이 겹치니 가볍게 입은 옷이 후회가 된다.

몇 백 미터의 긴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도 좋아하는 가족들이 함께 하니 즐겁다.

입장 조건이 까다로운데 신장 110cm 이상이라 손녀는 맞춤으로 통과했는데 애완견 입장 불가 때문에 애완견을 안은 사람들은 구경만 하고 있었다.

첫 코스로 올라가는데 느낌이 심상치 않다. 바람에 구조물의 흔들림이 느껴지지만 절대 안전하리라는 믿음은 포스코를 믿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남편은 포기하고 내려가겠단다.

대략 난감~~

뒤집어지는 청룡열차도 탔는데, 이까짓 것! 더 나이가 들면 아무것도 못한다.

남편에겐 미안하지만 앞으로 전진!

심해진 바람에 몸이 흔들렸지만 멋진 풍경을 놓칠 수 없어 휴대폰에 담고 사위는 전망 좋은 곳곳에서 셀카를 이용했다.

용감한 손녀도 겁난 얼굴이었지만 내가 포스코를 믿듯이 아빠, 엄마를 믿나 보다.

 

근처 바닷가로 갔다.

특이한 게 백사장 위에 수많은 차가 주차가 되어 있고 캠핑카도 곳곳에 보인다.

더 놀라운 건 텐트를 친 곳도 여러 곳 있었는데 바로 옆 얕은 물이 고여있는 곳에 하얀 바다갈매기가 떼를 지어 놀고 있었다. 사람이 옆에 가도 날아가지도 않는다.

바닷가에도 바다 위에도 갈매기의 왈츠는 쉼이 없다.

손녀가 과자를 던져주니 무리를 지어 날아든다.

날렵하고 힘센 갈매기가 냉큼 물고 달아나기를 수 십 번. 여기에도 승자독식이다.

과자는 떨어졌는데 먹지 못한 예쁜 갈매기들이 바로 앞에서 먹이만 애타게 기다리는 게 너무 안쓰럽다.

다음 기회가 있으면 곡식을 가져와서 골고루 먹을 수 있도록 해야겠다.

 

짧은 시간이지만 알차게 보냈다.

간단하게 간식으로 해결하고 식사는 대구에서 알아둔 맛집에서 먹기로 했다.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지는 노을이 너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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