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서프라이즈!

눈님* 2021. 2. 1. 00:06

띵똥~~

택배 주문한 것도 없는데 누구지?

할아버지 할머니이~

이게 누구야, 어찌 된 일이야, 우리 원이 아니야!

세상에 하나뿐인 손녀 뒤로 딸과 사위가 함박웃음으로 "서프라이즈!"를 외친다.

양력으로 2월 1일이 남편 생일이지만 5인 이상 모임 금지가 실시되고 있고 혹여 남에게 폐를 끼칠까 걱정되어서 올해는 그냥 보내기로 했다.

너무 반가워 손녀를 안고 둥가 둥가 춤을 추었다.

그런데 어떻게 모두 입이 그렇게 무겁냐고 했더니 혹여 내려간다고 하면 엄마 음식 만드느라 신경 쓸까 봐 그랬다고 한다.

"우리 나리는 비밀 잘 지켜줄 거지?"  "그럼요. 제 몸무게가 10이라면 입 무게가 9니까요. 헤헤헤~~"

초등학생일 때 딸과의 대화가 생각나서 빙긋 웃었다.

1박의 짧은 만남에 배달음식 시켜 먹고 함께 얘기하고 노는 게 훨씬 가성비가 좋단다.

그건 딸의 마음이고 부모 마음이 어디 그러냐.

다행히 어제 장을 보아둔 게 이것저것 있어서 준비하려고 했더니 모두 만류다.

남편까지 나선다. 옛날에는 먹는 게 부족해서 특별한 날이나 가족이 모이면 음식으로 마음을 표현했지만 지금은 넘쳐나는 게 음식인데 뭘 꼭 그러냐고 시켜 먹는다에 힘을 보탠다.

 

서울에는 막창이나 곱창이 흔하지 않아서 대구에 오면 막창이 제일 먹고 싶다는 사위.

여자가 시집에 가면 편하지 않듯이 남자가 처가에 가면 반대 입장이 아닐까 마음이 쓰인다.

곱창 골목에 가면 흙가마로 애벌구이를 해서 탁자에서 다시 구워 먹는 맛있고 깨끗한 집이 떠올랐다.

코로나 19 수칙에 5인 이상 모임은 금지인데 집에서는 어쩔 수 없지만 식당은 곤란한데 어떡하냐고 여러 가지 웃기는 대안을 생각했다. 시차를 두고 따로따로 들어가서 아는 체할 수도 있지만 만약에 역추적을 해서 한 가족인 걸 알면 얼마나 창피할까.

여의치 않아 곱창 먹을 때는 술도 함께 먹어야 하는데 술 먹을 수 있는 사람 손들어보세요.

남편이 제일 먼저 손을 들고 이어서 사위~ 사방을 둘러보던 딸도 손을 들었다.

조용한 분위기도 잠깐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저 혼자 집에 있겠어요? " 손녀는 조금 반짝 젖은 듯한 눈으로 분명하게 반대를 했다.  "아니, 아니야. 어떻게 우리 원이를 혼자 두고 가겠어. 그냥 재미로 말했는데 미안해!'

어린아이들에게 상처 주는 질문이나 상황을 만들지 않아야 한다는 걸 깜빡 잊을 정도로 들뜬 분위기였다.

치킨 두 종류와 막, 곱창을 시켰는데 생각보다 막, 곱창의 만족도가 높았다.

사위는 기분이 좋아 언제든지 곱창 드시고 싶으면 전화 주세요. 배달시켜 드릴게요.

좋아.

손녀가 준비해 온 고깔모자를 썼다. 난생처음 이런 모자를 써본다며 좋아했고 주인공인 남편도 특별히 큰 모자를 쓰고 만족스러운 표정이다.

준비해 온 케이크에 불을 붙이고 사랑하는 "우리 아빠, 할아버지, 아버님, 남편 " 생일 축하합니다. 떼창을 했다.

남편과 나는 막걸리 사위와 딸은 소맥 손녀는 생수로 진심으로 축배를 들었다.

금연, 절주, 운동 등에 관한 건강, 폭등한 부동산 문제, 코로나19에 대한 사회 변화와 앞으로의 문제 등 끝없이 얘기를 하다 보니 새벽 3시가 되었다.

초저녁잠이 많은 사위가 이렇게 밤늦도록 함께 얘기하며 놀기는 처음이다.

기뻤다.

나이가 들어도 꼰대 소리 듣지 않고 젊은 사람과 소통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또 했다.

내일은 모두 늦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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