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어머니~
여자라면 누구나 든든함과 아픔과 그리움의 이름이 아닐까 싶다.
내 나이 예순
엄마 마음에 애잔한 시집간 딸이기도 하였고
이제는 시집간 딸의 친정 엄마가 되었다.
40대 중반에 나를 나으신 어머니는 나에게는 그리움과 아픔의 대상이다.
"너의 어머니는 옛날에도 할머니였는데 지금도 할머니네."
친구들의 눈에 비친 비녀를 곶은 어머니의 머리는 늘 할머니로 보였고 실지로 할머니였다.
주위의 그런 눈길이 싫었다.
중학교 졸업식에는 부끄러워 오시지 말라고 했다.
졸업생 대표로 답사를 하고 연이어 상을 타는 모습을 보셨다면 늦둥이가 얼마나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워 행복해하셨을 텐데 그러한 기쁨의 시간도 빼앗아 버린 철없는 딸이었다.
나이 들어서는 멀리 시집을 온 탓에 자주 뵙지를 못하였다.
올케는 모두가 칭찬하는 효부였고 오빠 조카 언니 형부들이 가까이서 잘 모셨기 때문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명절이나 생신 때 친정을 가면 남편 출근, 아이들 핑계로 하룻밤 자고 오는 게 고작이었다.
나비처럼 왔다가 훨훨 날아가 버린다고 아쉬워하시던 어머니!
저승길 갈 때도 막내 울음소리는 들리고 늘 눈에 밟힌다며 한없는 사랑의 손길로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던 어머니~
90까지 건강하게 장수를 하셨지만 지금도 가물거리는 모습은 언제나 막연한 그리움과 아픔이다.
이제는 내가 친정 엄마가 되었다.
나의 어머니가 그러하셨듯이 시집간 딸아이가 늘 눈에 밟힌다.
가족 간의 무료통화라 시간이 나면 긴 통화를 하지만 옆에 두고 보는 것만 하랴.
올해는 엄마와 함께 김장을 하고 싶다고 했다.
시어른이 연세도 있지만 떨어져 있는 엄마와 김장 핑계로 여러 날 머무를 생각인 것 같다.
반가움에 그러자고 했지만 보통 걱정이 아니다.
아들과 딸과 나누려면 많은 양을 해야 하는데 혼자서 많이 담그는 경험 없이 맛있게 할 수 있을지 흠흠......
김장 김치는 알맞은 간과 젓갈 그리고 정성이 최고이렸다.
밤잠을 설치며 소금 간에 신경을 썼다.
찹쌀 풀에 맛있는 육수, 멸치젓, 생새우는 갈고 고춧가루 마늘 생강, [깨, 청각, 갓, 실파, 미나리, 무 채]
바로 먹을 김치는 굴을 넣고 익혀 먹을 김치에는 싱싱한 생조기와 갈치를 넣었다.
작년에는 너무 싱거워 젓갈을 위에 덧 뿌리기를 했다.
담을 때에 섬섬하게 맛있으면 김장 김치는 싱겁다는 경험을 했기 때문에 조금 짜고 매운맛을 더했다.
그런데 세상에 이렇게 맛이 있을 수가~~~ 믿기지를 않는다.
맛을 본 이웃들의 감탄사도 연발이다.
몸은 지쳐 눈을 뜨기도 힘들었지만 기쁨은 말할 수가 없다.
맛있다는 남편의 칭찬에 김치 담는 부담은 말끔히 가시고 자신감 백배.
사실은 딸이 오기 전에 미리 만들었다.
오랜만에 만나 그냥 편히 얘기하며 놀고 싶었기 때문이다.
김치 맛을 본 딸의 칭찬이 끊이지 않는다.
"우와! 역시 엄마는 무엇이든 마음만 먹으면 정말 잘해요. 헤헤헤"
물김치와 무말랭이도 함께 만들었다.
"엄마 표 맛 김치로 팔면 대박 나겠어요." 연이은 딸의 칭찬에 입술이 귀에 걸려버렸다.
차곡차곡 담아서 주는 마음
친정 엄마의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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