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큰형부

눈님* 2012. 4. 25. 22:29

셋 째 언니의 전화를 받았다.

간암으로 고생하시던 큰 형부가 새벽에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잠시 눈을 감았다.

예정 된 일이긴 했지만 그냥 멍하다.

부모님 세대는 가고 이제 동기간의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연령이다.

2년 전 오빠를 보내고 순서대로 죽음이란 피할 수 없는 길을 가야하는가 보다.

 

큰 형부

15녀의 우리 집안에 큰 형부의 존재란 남달랐다.

막내의 눈으로 보았을 때는 아버지 같기도 하고 때로는 오빠 같기도 했다.

훤칠한 키에 호남형의 남자 중의 남자였다.

아버지, 오빠보다 형부랑 어디를 가면 어깨가 으쓱하고 세상의 무엇도 두려운 게 없을 정도로 든든하고 믿음직스러웠다.

보리밥 먹던 시절 언니집에 가면 하얀 쌀밥을 먹을 수 있었다. 위에 언니랑 쌀밥이 좋아서 자주 가기도 했고 가끔은 며칠씩 머물러도 전혀 눈치 주는 일도 없었다. 

우리 처제는 걸어가는 뒷모습만 보아도 예쁘다며 얼마나 예뻐해주셨는지 모른다.

언니 모르게 용돈도 두둑이 주시고......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이였던가?

바로 위의 언니랑 둘이 집에 있는데 멋진 헌병복 차림의 군인이 찾아왔다.

모자가 반짝반짝 바지 주름은 칼처럼 서있고 구두도 번쩍번쩍!

"언니 집에 있어요?"

"옴마야! 어른이 우리보고 '하소' 한다. 그자?"

ㅎㅎㅎ

처음 형부와 나눈 대화였다.

 

"아이구마, 문지방에 얼굴만 내 밀고 웃던 모습이 쥐처럼 작았는데 언제 이렇게 커버렸나?

"형부!

처제보고 말 놓으면 우리도 말 놓을 거예욧!

그럼 누가 손해예요?ㅎㅎㅎ "

"아이쿠 죄 송! ㅋㅋㅋ"

 

세월이 덧없다고 한탄하시던 어르신들의 넋두리를 이해하게 된다.

형부와의 숱한 사연들이 지나간 추억으로 남을 뿐 한 세상 멋있고 당당하게 잘 살고 간 형부는 이 자리에 없다.

병원 입원을 거부하고 집에서 자유롭게 살다 가기를 원하셨다.

원하는 대로 지내다가 짧은 고통만 겪고 담담하게 가셨다.

대를 이을 아들 없이 달랑 딸 하나를 두고.

몸이 좋지 않은 언니만 남기고 훨훨 자유를 찾아 떠나신 거다.

 

늦은 밤 고속도로에는 무엇이 그리도 급한지 차들은 바람처럼 달린다.

나는 규정 속도를 지키며 천천히 운전했다.

형부의 죽음을 확인하는 걸 늦추고 싶었기 때문이었으리라.

하늘에는 초승달이 쏴아 하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편의 뒷모습  (0) 2014.12.03
흔들리는 마음에 위로를 주는 말  (0) 2012.10.04
둘째 언니  (0) 2011.12.07
친정어머니  (0) 2011.12.01
안철수 씨와 함께 하는 세상  (0) 2011.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