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낸 사람
정동희
한국 행시문학 회장
반가운 이름이다.
'다음세대'란 닉이 더 익숙하다.
13년 전 헤어졌는데 어떻게 기억을 하고 계셨을까?
행시문학 20년 기념 행시집, 관악 문학, 한행 문학, 쉬운 영어 행시집 4권이 배달되었다.
매일 운동과 약속으로 발발이처럼 나다니다 갑자기 집에 머물던 시절, 친구 소개로 가입한 행시 카페
글 쓰는 일은 별로 좋아하지 않고 잘하지도 못했으니 완전 이방인.
고수들 틈에서 열심히 댓글만 달다가 어느 날 용기를 내었다.
운율을 맞추어 쓰기는 처음이지만 어릴 적 많이 보았던 표어나 포스트 작성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이끌어주신 고마운 분들을 아직도 기억하고 늘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다.
운에 맞는 글자 맞추기에 급급한데 행시 시인 등단을 부추겼다.
행시를 문학계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시기니 무조건 첫발을 내딛는 게 시작이라고.
고사를 했지만 열정적인 다음세대님의 의지를 꺽지를 못하고 행시 문학의 길에 벽돌 하나가 되기로 했다.
2010.04.00 제1기 행시 시인 등단을 하게 되었다.
이때 발간된 책 50부를 3사람에게만 선물했다.
호사다마라~이후 카페에 분란이 일어났다.
박식하고 말발 좋고 배짱 갑인 카페지기 다음세대님과 행시 잘 쓰고 후배 글 하나하나 챙겨주고 카페 활동 열성이지만 행시 시인 등단은 시기 상조고 더 실력을 갖춘 대가들이 많을 때 시인 등단의 첫 문을 열자고 했던 젊은 재미 교포 간에 부딪히는 일이 생기고 말았다. 그 젊은이는 미국에 살면서도 한글을 좋아하고 행시를 진짜 사랑해서 이름도 김삼행으로 개명을 했을 정도다.
두 사람이 헤어질 단계에서, 개인적으로도 젊은 사람 말에 공감이 갔다. 다음 세대님이 젊은 사람을 설득과 이해를 시키고 껴안아야 된다며 화해를 시키려 부단 노력했지만 무산되고 나도 카페 활동을 접어버렸다. 이런 과정에서 다음 세대님과 많은 쪽지를 주고받았는데 단어 하나, 논리적으로 따지는데 당할 재간이 없었다. 이후 다시는 남의 일에 끼어들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음 세대님으로부터 끝까지 화내지 않고 좋은 말을 해주어서 고맙다는 말은 들었다. 언젠가 대구에 오면 막걸리 한 잔 하자며 훈훈하게 마무리로 모든 게 끝났다.
저녁 식사 후 바로 20주년 행시집을 대충 보았다.
새로운 사람이 더 많지만 예전에 함께 활동했던 얼굴들을 보니 반갑다. 나의 얼굴도 한 장 보인다.
당시만 해도 34 34 나 44 44로 운율을 맞추고 띄어 쓰지를 않았는데 지금 행시를 보니 첫머리 운만 맞추고 자유롭게 쓰인 게 많고 더 다양해졌다.
그런데 이런 일이~
나에게 행시 길을 걷는데 제일 많은 사랑과 도움을 주신 어르신이 2년 전에 돌아가셨는 소식이 실려있다.
당시에도 시력이 좋지 않다는 하소연을 하셨지만 건장한 분이셨다.
해박하셔서 역사나 사회 문제 등 깊이가 있는 행시, 감성이 풍부하셔서 서정적인 행시도 정말 잘 쓰셨지만 수필도 잘 쓰셨다.
돌아가시기 사흘 전에 쓰신 행시가 실려있어 옮겨왔다.
틀림없이 좋은 곳 가셨을 거라 믿지만 눈물이 난다.
내 마음의 여백
내려놓고 가야 할 무거운 짐들
마모된 사지관절 행보 어려워도
음악을 들으면 정서는 순화된다
의리와 신뢰로 어렵게 버틴 세월
여윈 꿈속 늘 푸른 숨결 걸으면
백구 나는 해변 해당화 피고 지고
朗山 최 기 상 (193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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