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이번 추석에는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일찍 내려가서 함께 해요.
딸은 지금껏 명절이면 시댁 우선에 무언의 반항심이 조금씩 표출되는 것 같다.
제사를 모시는 집은 예전대로 시댁에서 차례를 모시고 친정으로 가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편리함에 따라 움직이는 게 요즘 추세라고 한다.
만들기를 좋아하는 손녀랑 함께 전을 빗고 부치자고 했는데 시간이 맞지를 않아 미리 해버렸다.
고기 소를 넣은 깻잎과 고추전은 딸이 손녀처럼 어렸을 때 고사리 손으로 함께 만들었다.
연근에 밀가루를 살짝 묻혀달라고 했더니 수분이 느껴지면 계속 밀가루를 묻혀서 구멍이 없어져 눈물이 나도록 웃었다.
오징어 튀김을 할 때도 밀가루를 계속 묻혀 통통해졌다. 물기가 있으면 엄마에게 기름이 틜까 봐 그랬단다.
감동받고 소나기 뽀뽀를 해주었다.
그 추억이 아름다워 손녀랑 옛날 얘기 하며 하기로 했는데 시간이 맞지를 않아서 추억 만들기는 실패로 돌아갔다.
갈비찜, 잡채, 묵, 해파리냉채는 쉬웠는데 전은 시간이 많이 소요됐다.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한다는 전어회와 모둠회는 주문으로.
서울에서 대구까지 8시간 30분이나 걸려서 피곤할 텐데......
사위와 딸의 눈치를 살폈다.
혹여나 시어머님이 서운해하시면 어떡하나 걱정이었다. 그런데 이틀 전부터 집에 모시고 당일에는 삼 형제 가족 모여 뷔페로 외식을 했는데 의외로 어른, 아이들, 손 아래 동서 모두 만족했다고 한다.
다행이다.
마음 놓고 즐길 수 있었다.
"원이도 엄마랑 노는 게 제일 좋지, 할머니도 엄마랑 놀고 싶어." 이제는 말뜻을 잘 알아들으니 혼자서 잘 놀아주어서 시간이 알찼다.
모두 잠이 들었지만 딸과 둘이서 새벽 네시까지 도란도란~~
도심에서 가까운 송해공원과 대구수목원을 들렸다.
송해공원은 하늘이 너무 맑고 아름다워 이곳을 추천한 남편에게 100점에 곱을 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옥연지 못을 배경으로 360도 어느 방향을 봐도 아름다운 예술작품이다.
대구 수목원은 쓰레기 하치장을 개발하여 자연 생태공원으로 만든 곳이다.
예전에는 명절에 영업을 하는 식당이 있을까 염려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젠 그런 걱정은 없다. 집에서 음식을 만들지 않고 아예 맛집을 찾으며 외식으로 즐기는 이들이 많으니 영업을 하는 집도 많아졌기 때문이다.
편백찜과 샤부샤부를 먹었는데 생각보다 만족도가 높았다.
집에서는 미리 재료를 준비하고 힘들게 만들었지만 먹을 때는 다시 데워야 하니 맛은 감소하기 마련이다.
신선한 재료와 즉석에서 조리해서 먹는 게 맛도 좋다.
우리도 이제는 외식과 배달음식으로 대체하자는데 의견 일치를 했다.
대구수목원/열대 식물원
대구수목원/분재원
아들 부부는 이번 추석에 오지 말라고 했다.
며느리가 미국 00 학회에 갔다가 추석 전날 도착은 하지만 피곤하기도 하고 시차 적응으로 매번 고생하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래도 기어이 온다고 하니 기특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다.
일 욕심과 야망이 큰 아이라 웬만하면 건강을 지키도록 시간을 빼앗기지 않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부산, 친정으로 갔다가 대구로 오는 걸로 계획을 세웠단다.
어머니 배고파요!
축 쳐져 있을 줄 알았는데 높은 톤의 에너지가 넘치는 목소리는 여전하다.
갈비찜을 좋아하는 며느리는 맛있게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남편과 아들이랑 셋이서 50도가 되는 중국술을 즐긴 밤
(술이 잘 나오지를 않아 검색을 하니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 손 위치에 맞추고 머리를 툭툭 치면 조금씩 나오다가 말고.. 가짜와 구별하기 위한 조치라지만 성질 급한 사람 숨넘어갈 것 같다며 넋두리)
경상도식 육개장을 준비해 두었는데 외식을 하자고 한다.
언젠가 아들이 한 말이 생각난다.
가끔 만나는데 일하는 엄마보다 함께 노는 시간이 많은 게 가성비가 훨씬 좋으니 먹는 거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생각하니 그 말도 일리가 있었다.
장소와 식당을 정하는 권한은 전적으로 남편에게.
가창 舊길 드라이브~~
빈대떡과 도토리묵이 유명한 집. 동동주, 칼국수, 잔치국수로 한 상 가득 푸짐하다.
오랜 세월의 흔적이 남아있는 고향의 냄새가 짙은 낭만적인 곳.
여기서도 결론은 명절 때에는 외식을 하자는데 만장일치를 보았다.
오랜 관습을 바꾸거나 없애기는 쉽지 않다.
소신껏 행동을 하는 용기 있는 사람도 있기는 하지만 일부의 비난을 받을 각오를 해야 했다.
명절이 있어서 좋다고 하지만 여자들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받았다.
동서 간의 갈등, 부부 싸움, 이혼 등 명절 뒤의 후유증이 만만찮았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자연스럽게 해결이 된 것 같다.
여러 형태의 가족, 명절을 보내는 방식은 다양해졌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따라가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음 명절을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