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D (52세)
우리 요양원에서 최연소자다.
훤칠한 키에 남자다운 외모를 갖춘 멋진 남성이다.
연로한 어르신들과는 달리 교통사고를 당해 왼쪽 편마비가 생겼고 뇌에도 장애가 생긴 장해 1등급 환자다.
처음 요양원에 들어섰을 때 뚫어져라 쳐다보는 눈빛이 섬뜩해서 친구에게 물었다.
나이도 젊어 보이는 데 어째서 이런 곳에 오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걱정할 것 없다. "
"매일 하는 소리는 '밥 많이 달라.'는 것 외는 별로 생각이 없는 환자다."라고 했다.
이동은 휠체어로 하고 오른손으로 서툴게 식사를 할 수 있지만 소변은 받아내어야 하고
체격이 커서 보호사들이 관리하기가 힘에 부친다는 것이다.
모두에게 가장 힘든 환자지만 특히 체격이 작은 나에게는 상당한 부담이 된다.
그도 역시 작은 나를 우습게 보는 것 같다.
처음에는 이곳 생활에 심한 거부감과 욕도 했는데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고 귀띔해 줬다.
아직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적개심을 갖고 힘들게 하지만 간호 선생님은 무서워한다고 했다.
아직 젊은 나이에 저렇게 온몸을 남에게 의지하며 살아야 하니 얼마나 속이 탈까 충분이 이해가 간다.
부딪쳐 보는 거지 뭐!
일단 진심으로 사람을 대하자는 나의 다짐을 실천에 옮겼다.
시간이 걸릴 뿐이지 언젠가 대화가 되고 마음의 안정을 찾고 지금의 삶을 받아들이는 날이 오겠지 희망을 가져본다.
알고 보니 변비가 심하다.
대변을 볼 때는 임산부가 출산하듯이 요란스럽다.
10~12일에 변을 본다고 하니 그럴 수밖에.
일단 식단부터 신경을 쓰기로 했다. 섬유질이 많이 함유된 야채를 넉넉히 섭취하도록 주방에 부탁을 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물을 마시게 하고 밥과 찬의 비율에 신경 쓰며 꾸준히 야채 섭취를 늘렸다. 누워있는 시간을 줄이고 휠체어를 태워 이동을 많이 늘였다. 이제는 4~7일 정도로 간격이 줄어들었다.
2~3일 간격으로 변을 보는 날까지 신경을 써야 된다.
사소한 실수를 거듭하며 보조를 맞추어 가던 중 어느 날 무엇이 불만인지 기저귀를 빼어버려서 옷은 물론 몸과 에어 침대까지 소변으로 얼룩진 일이 벌어졌다.
왜 그랬느냐고 물었더니 자기가 그러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새로 커버를 갈고 옷을 입히려다 오늘은 거짓말을 한 벌로서 간식을 주지 않겠다고 했더니 욕을 한다.
처음 들어보는 욕에 너무 불쾌하고 감정이 흔들렸다.
선생님은 거짓말과 욕하는 것을 가장 싫어하는데 욕을 한 벌로서 옷도 바로 갈아입혀주지 않겠다고 맞섰더니 고함을 지르다 이내 조용해졌다. 지금까지 가여운 마음에 하자는 대로 해주었더니 다른 선생님보다 얕보는 게 틀림없었다.
일단 옷과 커버는 갈아주었지만 채찍과 당근을 함께 쓰기로 했다.
삶은 계란과 요구르트가 간식으로 나왔지만 주지를 않았다.
괴성을 질렀지만 눈길도 주지 않고 무관심했더니 아예 포기를 했는지 말이 없다.
(이렇게 협박하고 차별하는 것도 학대일 수 있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이틀을 담담하게 무관심했더니 조금씩 눈치를 보는 것이다.
그런데 또 옷과 이불을 젖게 되어 왜 벨을 누르지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억울해하는 눈치다.
"HD 씨!
우리는 지금 소통이 전혀 되지를 않는 것 같아요."
메모지와 연필을 주었더니 '아줌마'라 적었다.
"아줌마! 불렀는데 오지 않았다는 말인가요?"
"으으응(맞아요)"
"아, 그랬군요. 그렇다면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다음부터는 벨을 누르면 빨리 달려올게요. 벨! 아셨지요?"
오늘은 목욕을 시키는 날
세 사람이 힘을 합쳐도 환자의 체중 때문에 힘이 드는데 오늘은 둘이서 하게 되었다.
땀이 방울져 흘러 눈을 가린다.
HD 씨는 아는지 모르는지 무거운 몸을 그냥 축 늘어뜨리고 있다.
오른쪽 발에 힘을 주고 오른쪽 손으로 안전봉을 꽉 잡아야 해요!
잘못하면 휠체어에서 미끄러져요!
간식 시간이 되어 침대를 올리는데 왜 그렇게 무겁고 뻣뻣한지.
지친 표정으로 식판을 내려놓는 팔에는 힘이 풀려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으으~소리를 내면서 한 팔로 내 팔을 쓸어주고 반대편 팔도 쓸어주는 게 아닌가.
너무 놀라운 광경에 "HD 씨 지금 내 팔 아프다고 쓰다듬어 주는 겁니까?"
"으으으 고(마워)"
얼굴에는 지금껏 보지 못한 웃음을 웃고 있었다.
"어머나 세상에~ HD 씨와 이제 소통이 되나 봐요. 다행이다. 정말 고마워요"
"소통의 기념으로 하이 파이브 한 번 해요."
짝!
한번 더
짝!
삼 세 번~
짝!
아~ 정말 눈이 뜨끔해진다.
노란 장미를 한 다발받았을 때의 기분이 이럴 것 같다.
오후 내내 저녁까지 HD 씨는 한 번의 실수도 하지 않고 부지런히 벨을 눌렀고 나는 눈썹이 휘날리도록 달려갔다.
그럴 때마다 소통이 된 즐거움으로 두 손으로 짝!
파이팅을 외쳤고 나의 환자는 즐거워했다.
나는 보람의 열매를 따서 작은 행복의 바구니에 담은 눈부신 날이었다.
아름다운 통찰
아프다 목이 메던 시간도 잠깐이다
름름한 마음으로 세상을 다시 보니
다정히 웃어주는 천사가 눈에 섧다
운무에 가린 세상 손 잡은 그대와 나
통하는 길을 찾아 오늘도 헤매지만
찰나의 순간마다 시련은 계속된다
2012.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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