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오라는 곳이 있을 때

눈님* 2023. 6. 20. 14:32

오라는 곳은 없어도 갈 곳은 많다.

오라는 곳도 많고 갈 곳도 많다.

오라는 곳도 없고 갈 곳도 없다.

 

누구나 살아오면서 겪어보는 인생주기를 표현했는데 그럴듯하다.

지금 나는 어디쯤일까?

아마도 세 번째를 향해서 가고 있는 시점이지 싶다.

오라는 곳이 있을 때 귀찮아하지 말고 빨리 가자.

 

올케는 세상에서 제일 좋은 사람이라고 늘 생각한다.(개인적인 생각)

팔순을 훨씬 넘겼지만 여행, 종교, 체험관 등을 다니며 행복한 노후를 보내고 계신다.

전화만 하면 부산 놀러 오라고 성화다.

평생 많은 시누이가 귀찮을 만도 한데 돌아가신 큰 언니의 자리를 단단히 메꾸고 친 자매와 다름없다.

 

서울, 부산, 대구에 흩어져 사는 언니들이 큰 조카가 마산에 마련한 세컨드하우스에 모였다.

지난해 가을부터 초대를 했지만 언니들도 연세가 있고 건강이나 거리가 있으니 모두 모이는 게 쉽지는 않았다.

"우리 올케언니가 돌아가시면 누가 이렇게 진심으로 오라고, 간절히 자고 가라고 붙잡고 그러겠냐"

"맞아"

장조카는  엄마가 살아계실 때 4남매가 한 번씩 모일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 필요하고 노후 생활까지 생각해서 마련했다고 한다.

공기 좋고 사철 풍경을 그대로 볼 수 있고 조금 나가면 바다를 접할 수 있는 곳

7채가 이웃하고 있어서 외롭지도 무섭지도 않은 곳

각종 과일나무, 소나무, 사철을 피는 꽃들이 있고 여러 종류의 야채들이 탐스럽게 자라는 곳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마음에 쏙 드는 곳이다.

일주일에 2~3일씩 들리고 형제들과 만남, 처가나 가까운 지인들에게도 필요하면 사용하게 하는 넉넉함을  보인다. 

 

 

나이가 들수록 꽃을 좋아하나 보다.

꽃무늬를 좋아하는 전형적인 할머니들

 

둘째 셋째 언니~언니들의 모습을 남기고 싶다

올케언니와 넷째 언니는 안검하수 수술을 받았다며 피하기만..

 

활짝 웃어보라고 했더니 순둥이 언니는 지금도 말을 잘 듣는 착한 할머니

아버지의 웃음과 똑 닮았다.

 

오늘이 가장 젊은 날!

 

계란판을 태워 모깃불을 만들었는데 너무 매워 테라스로 피신

 

연기를 피해 테라스에 모인 어른들에게 왔던 이질녀(큰 언니)

카메라를 맞추니 갑자기 살이 쪘다며 질겁을 한다.

 

 

막내 조카가 마련해 준 캠핑카 내 가요방

 

그렇게 많던 단지들은 어디로 갔을까?

장독대만 보면 하얀 눈이 소복이 내린 고향을 떠올린다

 

이 차선 도로 건너 집이 있어서 더 안심이 된다.

 

가장 아름다운 풍경은 앞에 펼쳐진 논이다.

초저녁부터 울어대는 개구리 소리는 정말 정겹다.

개구리울음소리가 요란하지만 조카와 질부는 잠이 더 잘 온다고 한다.

 

세대교체가 확실히 이루어짐을 느꼈다.

고모님들 노래 부르기를 좋아한다고 가요방 기기를 마련하던 20대 시절의 장조카,

요리를 배워도, 꽃꽂이를 배워도 우리 고모님들 회갑 때에 하려고요, 하던 큰 질부도 이젠 꽉 찬 중년이 되었다.

아직은 젊다고 생각했던 조카들이 몇 년 지나면 환갑을 맞이할 것이고 줄줄이 뒤를 이을 것이다.

 

피곤한 사람들은 잠자리게 들었고 셋째 언니와 조카들과 다시 자리를 마련했다.

조카들의 어릴 적 추억을 떠올리는데 어른들이 모르는 그들만의 이야기는 너무 재미있었다.

대구 중심가에서 자란 조카가 방학 때 외갓집에 오는 날에는 모두 환호성, 부산 변두리에서 사는 꼬맹이들에게는 우상이었다고 한다.

장조카 다음의 이인자였고 돈 떨어지면 부산에 거주하는 이모부들이나 친인척 한 바퀴 돌면 꽤 많은 돈이 생겼고 모두에게 푸짐한 과자 파티가 벌어졌다고 한다.

동생들 버릇없으면 안 된다며 엄한 어른 노릇을 한 장조카는 칼막 휘둘러~~

할머니 말에 대꾸 많이 한 질녀가 제일 많이 맞았고, 속상하니 별 일 아닌데도 막내 동생을 때리고.

방학이면 외갓집에서 많이 지냈는 이질녀는 맞은 걸 엄마한테 일렀다고 다시 맞고~~

지금은 운동선수 같은 큰 체격을 가졌지만 당시 작은 체구의 막내는 누나한테 많이 맞았다며 누나는 정말 무서웠다고 한다.

지금은 이런 폭력은 상상도 할 수 없지만 그때는 많은 형제나 사촌들 사이에는 통했나 보다.

 

오늘 밤에는 말이 적고 싱긋이 웃기만 하는 막내가 달랐다.

말도 많고 심부름도 제일 잘하며 야참도 해주며 주도권을 잡았다.

큰 덩치에 수줍어하며 하는 말이 감동이다.

 

"우리는  고모님들을 정말 좋아해요, 어머니가 계시지 않아도 우리들이 잘할 겁니다"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님들이 하시던 모습을 보고 자랐기 때문입니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쁜 며느라기  (14) 2023.07.21
비가 올 때는 장화가 최고  (17) 2023.07.13
진밭골/대덕지  (28) 2023.06.14
처방은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  (32) 2023.06.05
황영웅 이야기  (18) 2023.0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