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나, 화 나려고 해요.

눈님* 2023. 2. 21. 18:23

한동안 뜸했던 친구들과 지인들께 전화를 했다.

매일 시간 없다는 핑계로 소원했었다.

통화가 끝난 후 긴 여운이 남는 친구 얘기를 남기고 싶다.

jhs은 오랜 친구다.

고 3 같은 반을 했다.

작은 체구지만 내 눈에는 채시라보다 더 예뻐 보였다.

음악 시간에는 자신 있게 맑은 소리로 한 송이 흰 백합화를 멋지게 불렀다.

영어시간에는 본문 읽어볼 사람~선생님의 소리에 모두 쭈그리고 눈치만 보는데 친구는 손 번쩍 들고 우리가 부끄러울 정도로 유창하게 발음을 했다.

체육시간이면 몸이 유연해서 의자 위에서 허리를 굽히면 쉽게 의자 아래로 손가락이 내려가 박수를 받았다.

졸업이 임박하자 함께 사진을 찍어 보관하기로 하고 헤어지기 싫어서 모임도 만들었다.

 

우리는 실업계 학교니 대학 진학보다는 모두 취직을 했다.

2차 중동 석유 파동으로 경제는 위축되고 취직도 어려웠지만 특별반이었고 모두 성적이 좋았으니 친구들 모두 괜찮은 곳에 쉽게 취직을 해서 다행이었다.

(이때 재미있었는 기억은 취업이 별따기니 학교에서는 고육지책으로 성적순으로 의뢰처가 오는 곳에 보내기로 하고 그곳에 가기 싫으면 다음 의뢰처를 기다리는 방법을 택했다. 성적은 학과 60점/ 주산, 부기, 한자 쓰기, 평소 말하기 등 교양을 합쳐 40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살짝 자랑, 눈님이 1등)

 

학교 모범생이 사회 열등생이라는 말을 깨어버리자고 약속이나 한 듯 우리는 성실했고 능동적이었고 자부심도 대단했다.

시차를 두긴 했지만 내가 가장 먼저 결혼을 했고 서울로 간 친구들은 늦게 결혼을 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모이는 일이 많았는데 이 친구 아이는 불러도 전혀 대답이 없어서 귀에 이상이 있나 의심하게 된 것이다.

모두가 첫 아이니 성장 시기도 잘 모르고 지금처럼 정보나 지식도 없을 때였다.

검사 결과 청력이 완전 제로 상태~

그때부터 친구는 모든 시간과 정성을 아이에게 쏟았다.

온몸으로 언어를 표현하고 피아노, 서예, 그림을 가르치고 청각장애인이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피나는 노력을 했다.

스스로 특수교육을 받고 통신대를 졸업하고 자기 계발에도 게으르지 않았다.

보통 엄마들은 지치고 포기했을 텐데, 대단한 엄마였다.

 

아이의 특수 교육은 지방보다 서울이 잘 되어있다며 남편 근무지도 서울로 옮겼고 서로가 바쁘게 살면서 아이들 혼사 때나 만났다.

그런데 친구의 걱정은 끝이 없었다.

딸은 엄마의 노력에도 자립할 가능성은 희박하고 아들도 나쁜 유전자를 남기지 않겠다며 결혼을 않겠단다. 불혹을 넘긴 남매가 둘이나 집에 있으니 친구의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

그런데 남편까지 쓰러져 누웠단다.

 

가끔 나이가 든 게 싫지만은 않다는 생각을 한다.

늦잠을 자도, 대충 먹어도 그만 어른 간섭이 없어서 좋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것...... 셀 수 없이 많다.

그런데 친구는 하루 세끼 밥 하느라 주방에서 산다고 한다.

평생 해고당할 일 없어서 좋겠네, 농을 했지만 마음 아프다.

너무 힘이 들 때면 가끔

"00 아빠, 나 지금 화나려고 한다! "

경고를 한다고 한다.

얼굴만큼 마음도 말씨도 곱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경고, 예쁘고 슬픈 아내의 처절한 절규를 본다.

 

세계는 지진과 전쟁, 지옥이 따로 없다. 나라 안도 시끄럽고 어렵긴 마찬가지다. 주위의 가까운 이들이나 친인척들이 병원을 수시로 검사와 입원으로 들락날락거리는 일이 잣다. 

이런 때에 특별히 좋은 일은 없어도 걱정 없고 건강하면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사람은 꼭 주위의 어려움을 보면서 자신을 반성하고 마음을 다잡는데 무슨 심보인지 모르겠다.

살면서 재미없고 화가 나면 고운 친구의 말을 떠올리자.

 

산울림님 작품

-모두의 마음에 얼음이 녹고 봄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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