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벌초 유감

눈님* 2022. 9. 4. 00:52

올해는 추석이 이르다.

9월 10일이니 이번 주말이 벌초의 최적기다.

추석과 벌초는 뗄 수 없다.

더위는 물러났지만 초유의 강력한 태풍이 오고 있다니 어느 날을 잡아야 심한 비바람을 피할 수 있을까 고민 중인 것 같다.

지역마다 다르고 태풍의 방향이나 세력도 변화를 일으키며 올라오니 기상청에서도 정확하게 맞출 수 없나 보다.

우리는 벌초 날짜를 일요일에서 토요일로 하루를 앞당겼다.

해마다 겪는 일이지만 참가하는 사람은 80세를 전후한 노인들이다.

젊은 사람들은 대부분 도시로 나갔고 벌초에 관심도 없고 시간이나 거리상 불편하니 참여를 하지 않는다.

불참하는 이유를 들어보면 이해도 간다.

그들 입장에서는 조상에 대한 감사나 기리는 마음이 부모 세대보다 덜하다.

급변해 가는 사회생활에 마음의 여유가 없고 얼굴도 모르는 먼 조상을 위해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형식적인 일은 과감히 거리를 두려 한다.

 

우리는 4형제지만 두 분은 서울에 계시고 대구 형님은 몸이 편찮아 우리 혼자만 참여하게 되었다.

벌초에 참여자는 집안마다 숫자가 다르고 아예 오지 않는 집도 있으니 불만도 많다.

연세가 많아서 벌초 장비를 짊어지고 비탈진 산을 오르는 게 위험하고 우리 세대가 지나면 어차피 성묘 문화도 바뀔 테니 대행업체에 맡기자고 해도 가장 연세가 많은 어르신이 반대를 하신다.

조상의 묘를 남에게 맡긴다는 자체가 싫으신 거다.

불참자는 돈을 거두자고 해도 반대를 하신다.

남편은 일에 서툴고 참석해도 별 도움이 되지 않으니 대행업체에 맡기자는데 내가 제일 찬성이다.

 

아들의 전화가 왔다.

태풍이 위험하니 벌초 가시면 안 된다. 산도 위험하고 노인들이 시골길 운전하는 것도 위험하다.

내일 확인 전화한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나도 덩달아 아들 말에 찬성하며 벌초 취소해야 하고 가지 말라고 했다.

"도시락도 난 모른다!"

해마다 가기 싫어하는 남편 달래서 가게 하는데 처음으로 반대를 했다.

 

밖의 날씨를 계속 살폈다.

어둠을 가르는 바람이 제법 분다.

비는 내일 아침 8시부터 온다는 일기예보다.

잠시 자리를 비우던 남편이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사 왔다.

내일 이거 가져가면 된다.

마지막 50% 세일 가격에 샀다며 으스대는데......

 

새벽 3시 40분

두 시간 동안 여러 생각으로 잠이 들지 않아서 일어나 버렸다.

물소리 나지 않게 수도꼭지의 조절기를 샤워에서 수직으로 조절하고 도시락을 준비했다.

두 시간 동안 공을 들였더니 뿌듯하다.

홀로 사는 것도 아니면서 날짜 넘긴 도시락을 펼쳐놓는 상상만 해도 고개가 절레절레.

남은 시간 읽던 책을 보기로 했다.

잠은 낮에 자면 된다.

 

7시에 남편이 나서려는데 걸려온 전화, 오촌 아저씨다.

"도시락 가지고 오지 마라, 마치고 사 먹으면 된다."

비가 오니 대충 하고 따뜻한 음식을 드시려는구나.

좋은 생각이긴 한데 그러면 미리 말씀을 핫씨지~

밤 꼴딱 새워서 싼 도시락은!

으휴 나이 들면~~~~~

 

 

베란다 화분에 피어난 버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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