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한국은 보석같은 나라

눈님* 2022. 3. 6. 19:19

미국 여류 소설가 펄 벅은 장편소설'살아있는 갈대'에서 한국을 '고상한 사람들이 사는 보석 같은 나라'로 표현했다.

1960년 펄 벅은 소설을 구상하기 위해서 한국을 찾았다.

여사는 늦가을 군용 지프를 타고 경주를 향해 달렸다.. 노랗게 물든 들판에는 농부들이 추수하느라 바쁜 일손을 놀리고 있었다. 경주 안강 부근을 지날 무렵 볏가리를 가득 실은 소달구지가 보였다.

그 옆에는 지게에 볏짐을 짊어진 농부가 소와 함께 걸어가고 있었다. 신기해서 차에서 내려 카메라에 담으며 통역에게 물었다.

"아니 저 농부는 왜 힘들게 볏단을 지고 갑니까, 달구지에 싣고 가면 되잖아요.?"

"소가 너무 힘들까 봐 농부가 짐을 나누어 지고 가는 것입니다."

여사는 그때의 충격을 글로 옮겼다.

이제 한국의 나머지 다른 것은 더 보지 않아도 알겠다.

내 조국 미국이라면 저렇게 힘들게 짐을 지지 않고 온 가족이 달구지 위에 올라타고 채찍질하면서 노래 부르며 갔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 농부는 짐승과도 짐을 나누어 지고 한 식구처럼 살아가지 않는가?

 

구한말 개화기 때 한 선교사가 자동차를 몰고 시골길을 가고 있었다.

그는 커다란 짐을 머리에 이고 가는 할머니를 보고 차에 태워드렸다. 뒷자리에 앉은 할머니는 짐을 머리게 계속 이고 있었다. 

"할머니, 이제 짐을 내려놓으시지요."

선교사의 말에 순박한 웃음을 지으며 "아이고 늙은이를 태워주는 것만도 고마운데 염치없이 짐까지 태워달라고 할 수 있겠소."

선한 우리의 모습이다.

 

늦가을 감나무 꼭대기에 새들의 먹이로 몇 개 남긴 까치밥

뜨거운 개숫물을 마당에 버릴 때도 "워이 워이" 외쳤다. 뜨거운 물에 벌레들이 다칠까 봐 어서 피하라는 소리다.

콩을 심을 때도 세 알씩 심었다.

한 알은 땅 속에 있는 벌레의 몫, 하나는 새와 짐승의 몫, 마지막 하나는 사람의 몫

들녘에서 음식을 먹을 때에도 "고수레" 하면서 풀벌레들에게 음식을 던져주었다.

봄에 먼 길을 떠날 때에는 오합혜와 십합혜, 두 종류의 짚신을 봇짐에 넣고 다녔다.

십합혜는 씨줄 열 개로 촘촘하게 짠 짚신이고 오합혜는 다섯 개의 씨줄로 엉성하게 짠 짚신이다.

마을길을 걸을 때는 십합혜를 신고 산길이 나오면 오합혜를 신었다고 한다. 봄철에 벌레들이 알을 까고 나오는데 벌레들이 깔려 죽지 않도록 듬성듬성 엮은 짚신을 신은 것이다.

여인들은 3 덕(三德)이라고 해서 식구 수에 3명의 몫을 더해 밥을 짓는 것을 부덕(婦德)이라 여겼다. 걸인이나 가난한 이웃이 먹을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다.

 

우리 민족의 가슴에는 이런 선한 피가 흐른다.

어려운 환경과 배움이 짧아도 고마움과 미안함을 알았다.

사람은 물론 작은 벌레 하나에도 나눔과 생명의 귀중함을 몸소 실천했다. 

지금 우리는 

물질은 풍부하고 경제적으로는 과분할 정도로 부유해졌다.

학력은 높고 얇은 지식도 넘쳐나서 너도 나도 박사다.

그런데 행복하다는 사람이 의외로 적다.

마음은 가난하고 성격은 난폭해지고 이기심으로 불타 배려심도 없다.

공동체 의식도 사라져 가고 철저히 개인주의로 무장한 우리는 대화법을 모른다.

한 사람의 삐뚤어진 생각으로 돌이킬 수 없는 역사의 죄인이 되어버린 방화범

이런 괴물은 사회 어느 곳에나 존재한다고 생각하니 두렵다.

지금까지 개인도 국가도 앞만 보고 달려왔다.

짧은 기간 많은 걸 이룬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지만 잃은 것도 너무 많다.

앞만 보지 말고 이제는 옆도 뒤도 돌아보며 개인이 행복함을 느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가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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