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안방 문을 여니 짙은 향기가 코 끝에 닿는다.
지난밤 거실 가득히 채워졌던 향기가 돌파구를 찾은 듯 나를 반긴다.
거실과 주방 곳곳에 그 고운 향기를 나르며 밤을 새웠구나.
초여름 베란다에서 가지마다 샛별 같은 꽃을 피워 밤이면 황홀경에 젖게 하더니~~
꽃이 진 뒤 가지를 자르지 않고 그냥 두었더니 잔 가지 사이에서 또 작은 무리의 꽃들이 피었다.
요즘은 꽃들도 언제 피어야 될지 정신이 없을 것 같다.
피는 장소와 환경에 따라 온도 습도가 다르니 계절이 무색하다.
그래도 시도 때도 없이 피고 지니 난 즐겁다.
부겐베리아도 베란다에서 세 번째 꽃이 피고 있다.
밤이면 찾아오는 꽃향기를 맡기 위해 베란다로 향한 거실 문을 여니 한기가 들어온다.
상쾌함과 꽃향기가 겨울임을 잊게 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남편은 춥다며 문을 닫으라고 한다.
흠~~
생각과 느낌이 다름을 인정하자.
딸과 대화할 때 자주 하는 말인데 밀착 동거하는 남편을 이해하는데 실천하는 중이다.
밤중에 베란다 불을 켜고 혼자 야래향의 꽃을 보며 이렇게 작은 몸에서 어떻게 짙고 고운 향기를 뿜느냐며 대화하는 것도 괜찮다.
야밤에 잠도 자지 않고 저게 뭐 하는 짓이냐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이러는 내가 좋다.
가끔
아주 가끔,
남편이 멋있을 때가 있다.
야래향 화분을 통째로 들어 거실로 옮겨놓았다.
"이렇게 무거운 걸 혼자서 왜 그랬어요, 다치면 어떡할라고, 함께 하면 되는데."
잔소리를 해댔다.
수고했어요, 고마워요 이러면 될 텐데.....
이젠 밤중에 혼자 베란다에서 응얼거리며 주문 같은 걸 외울 필요도 없다.
식물이나 무생물들과 대화하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눈에는 무서울 수도 있겠다.
실내가 따뜻하니 꽃이 빨리 질 텐데.
걱정은 미루고 짧은 행복을 즐기자.